시간은 훌륭한 마감재다.
대단히 진귀한 물건이 아니더라도 일상의 하루하루가 쌓이면
언젠가 보석처럼 빛나기 마련이다.
여기,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평생 살고 있는 부부, 아니 가족이 있습니다. 건물을 짓고 공간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남편 ‘이수영’, 그에 어울리면서도 쓰임도 좋은 소품을 채워넣는 아내 ‘황의정’. 게다가 흔히들 맹인안내견으로 알고 있는 래브라도 리트리버종의 잘생긴 강아지도 한 마리 함께 삽니다. 그 아들 녀석의 이름은 ‘이두식’. 이 책은 모두의 이야기를 담아 황의정이 썼습니다.
그들의 직업은 빈티지 컬렉터. 벌써 수년 전, 홍대 인근 어느 골목 모퉁이에서 ‘엣코너(at corner)’라는 빈티지숍을 열고 이런저런 진귀한 물건들을 팔았던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습니다. ‘엣코너’는 그렇게 지금까지도 이들 부부를 부르는 또다른 이름이 되어 하나의 고유명사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런 소품 가게가 흔치 않았을 시절, 꽤나 주목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조그만 짜이 컵에서부터 장정 네 명이 겨우 들 수 있는 80년대 치과 의자까지. 여러 사람들의 손때가 묻은 다양한 물건들을 발품을 들여 사고, 모으고, 또다시 쓰다듬고 빛을 내게 하여 새로운 주인을 찾아주는 일. 그렇게 해외와 국내를 아우르며 빈티지 소품들을 사 모으던 늘 범상치 않던 이 부부.
그러던 어느 날은 상수동 가게 한 구석에 카페를 열었습니다. 요샛말로 남들 다 하는 그런 카페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두 부부가 자체적으로 독자 개발한 음료 레시피들은 ‘카페 엣코너’가 아니면 그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면서도 정성 또한 가득했습니다. 조금 번거롭고 성가시더라도 한 잔 한 잔 모두 핸드메이드로 뚝딱뚝딱 만들어냈습니다. 카페에서 사용하는 기계를 흔히 갖추어놓고 음료를 쉽게 쉽게 만들어내려고 마음먹었다면 충분히 가능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런 건 이들의 적성에 맞는 일이 아닙니다. 무엇을 하든 ‘손맛’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믿는 이 부부는 고생스러움을 자처하지만 그 누구보다 진심과 정성만큼은 가득합니다. 덕분에 이곳을 거쳐간 손님 한 명, 아르바이트생 한 명, 심지어 마당에서 잠시 쉬었다 가는 동네 강아지들까지 모두가 이 공간과 시간을 흠뻑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이 부부는 틈만 나면 유럽의 다양한 벼룩시장이나 인도 곳곳의 크고 작은 상설 및 특설시장을 찾아다녔습니다. 이렇게 전 세계를 유랑하며 물건들을 수집하고, 진열하고, 판매하는 건 그들에게 일이라기보다는 생활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오래된 자동차 한 대에 커다란 캠핑카를 달팽이처럼 매달고 유럽을 일주하는 것조차도 그들에게는 그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지금처럼 캠핑이 대세 여가생활로 떠오르기 전부터 그들은 캠핑카에 자신들의 몸을 맡기고 그야말로 유목생활을 즐긴 것입니다.
그리고 2014년 현재, 지금은 홀연히 제주도에 가 있습니다. 이 역시 그들 부부다운 용기입니다. 남편의 재주로 그럴듯하게 마당까지 딸린 멋진 독채를 지어놓고 제주를 찾는 사람들에게 대여해주는 렌탈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공간 또한 제주의 흔하디흔한 숙박업소들이 그러하듯 탁 트인 바다가 내다보인다거나 멋진 경치를 가지고 있는 관광명소에 위치한 것이 아닙니다. 제주 시내에서 멀찍이 떨어진, 그러나 공항이 그리 멀지는 않은, 한적한 시골 어느 마을 골목길에 무심한 듯 자리잡고 있습니다. 마당에 풀 한 포기, 부엌에 찻잔 하나, 침실에 취침등 하나, 모든 것들이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디테일을 가득 품고 이 집 안의 곳곳에 살아 있습니다. 그런 소박하면서도 정갈한, 부러 멋내지 않았으되 그 자체로 멋이 나는 자연스러운 집의 모습이 이들 부부를 꼭 닮았습니다.
이 멋진 이야기들이 모여 여기 한 권의 책이 되었습니다. 이 책은 이들 부부의 인생을 통틀어 관통하고 있는 살아 숨쉬는 감성, 그동안 그들의 손을 거쳐갔던 물건들, 그리고 또 함께 인연을 나누었던 사람들에 대한, 그야말로 집대성이자 총망라된 결과물입니다. 그들이 살아온 족적이 모자라지도 과장되지도 않게, 고스란히 들어 있습니다.
홍대 앞이나 상수동에서 가게를 할 때 사들인 물건들, 그리고 그 가게를 찾아왔던 다양한 사람들, 그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들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절로 웃음이 납니다. 어릴 적 영감이 되어주었던 할아버지의 앉은뱅이책상, 해외 플리마켓에서 만났던 친구들과 나누었던 우정, 그리고 그 낯선 길 위에서 만나 인연을 맺은 작은 물건들까지도 이들의 손을 거치면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공간과 물건, 그리고 사람의 힘을 믿는 이 부부의 모습은 가히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이 부부의 일상과 소소한 이야기들을 들여다보는 동시에, 이들이 축적해온 스타일링 팁이나 라이프스타일 노하우도 슬며시 엿볼 수 있습니다. 어떤 물건이 가진 기능적․심미적 아름다움을 넘어, 그것이 놓일 공간과 그 쓰임새에 주목하여 어울림에 맞게 고르는 매치하는 감성도 고스란히 이 책에 담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조금 못나고 투박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정감이 가는 물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런 물건이 갖는 힘은 ‘비싸고 좋은’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이 지내온 ‘시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좋은 물건은 많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품고 있는 물건이야말로 그 어떤 보석보다 가치 있다는 것에 우리는 새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빠르게 지나가는 일상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사는 것은 없는지, 조금 느리지만 여유롭게 그들의 삶의 속도를 찾아 살아가는 이들 부부와 그들의 감성이 가득 담긴 빈티지 물건들을 보면서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찰나가 중요하며, 순간이 아름답다는 것.
그들이 지금 머무르는 ‘엣코너 제주’가 마지막이 아닐 거라 믿습니다. 그들은 또 언젠가 호기심 가득한 새로운 도전을 계속해나갈 것이며, 지금의 이 감성을 영원히 잊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같은 하늘 아래 이런 감성을 잊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것들의 가치를 잊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들 마음 한구석에 묘한 안도감과 온기를 불어넣어준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