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져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헤어짐은 다른 의미의 마주침이다”
애도의 무분별함에서 무성해지는 시의 언어로
강원도 원주 출생으로, 2008년 중앙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한 시인 임경섭의 첫 시집 『죄책감』을 펴낸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초점을 잃지 않고 삶 전체를 향하고 있다”는 평이 주가 되었던 등단 당시의 심사평은 ‘잘 썼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고 있는데 이는 데뷔 이전 오랜 습작의 흔적이 역력하다는 뜻의 반영이기도 할 것이다. 데뷔 이후 오랜 습작의 흔적을 습관처럼 남겨온 그가 근 6년 세월의 결실을 묶어낸 이 시집 속 총 마흔다섯 편의 시들은 삶 속에서 제 부재를 말하는 것들의 공간을 촘촘히 구축해내고 있다. 이 공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향한 집요하고도 끈덕진 시선에서 시작하여, 존재의 웅성거림에 가려진 부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무성해진다.
우리는 계단을 내려갔다
짐을 부리자마자 계단을 내려갔다
눈이 쌓인 만큼 계단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곳이 계단이라 믿으며 계단을 내려갔다
눈이 쌓인 곳으로 소리도 사라졌다
길이 길이었던 곳으로
계단이 계단이었던 곳으로
우리는 내려갔다
내려가도 내리막이었다
멀리서 벼랑을 때려대는 파도는
몇천 년이고 그래왔다는 듯이
파도였다
우리는 계속 계단을 내려갔다
내려가다가 우리는
우리가 길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별 시답잖은 생각을 다
해보기도 하였다
-「죄책감-천부에서」전문
부재하는 것들의 목소리를 듣게 만드는 건 다름 아닌 화자를 짓누르는 ‘죄책감’이다. 이 시집에서 죄책감이라는 단어는 표제작인 마지막 시편의 제목으로 한 번 등장할 뿐이지만, 부재의 흔적이라는 보이지 않는 무게로 마흔다섯 편의 시를 관통하고 있다. 죄책감은 별다를 것 없는 일상 속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와 진정한 애도의 가능성에 대해 묻게 만들며 비존재의 흔적을 찾아 그들에게 자리를 내주는 것으로, 멀어짐을 통한 새로운 마주침으로 나아간다.
없음의 남아 있음
출근길에 생각했다
나는 왜 저 사내가 되지 못할까
선로는 나가지도 들어가지도 못하는 문
그 위에 서서 나는 왜 저 사내가 되지 못할까
생각했다
그러니까 등이 아주 작게 말린
가난한 아비 하나가 선로 위에 누워 있던 거다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외할머니는 그의 등을 긁어주었던 거다
좁게 파인 등골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며
등이 작으면 저 긴 잠 일렁이는 물결에도
별자리들이 출렁이지
출렁이기 마련이지,
혀를 찼던 거다
-「우두커니」부분
시집의 첫번째 시 「우두커니」에서 화자는 출근길 선로에 누워 있는 한 남자를 본다. 그리고 “수십 수백의 출근길을 몇십 분이라도/ 훼방 놓지 못할까”라는 자문을 하는데, 이는 일률적인 방식으로 무분별하게 행해지는 애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자책을 담고 있다. 「몽타주」에서 “우리는 모두가 엄마를 엄마라 부르는 것과/ 사자는 하난데/ 사자를 부르는 이름이 모두 다르다는 게/ 싫”다는 말이나 「무분별한 애도」에서 “왜 우리들의 애도는 부모의 방식으로 돌아와// 결국 그들만의// 기도로 끝이 나는 걸까”로 이어지는 질문도 마찬가지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시는 이 세계를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고 시인이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듯, 화자가 죄책감을 느끼는 공간은 출근길, 친구 장모의 장례식장, 집안, 새로 페인트칠을 한 병원처럼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공간들이다.
김은 이름 모를 이에게 인사를 건네려 한다 크게 두 번 절을 올리려 한다
처음 보자마자 하는 작별 인사
김은 절하려다 말고 머뭇거린다
김은 친구의 장모를 본 적이 없다 김은 오늘 처음 친구의 장모를 보았지만 김은 결코 친구의 장모를 본 적은 없는 것이다
김이 본 것은 친구 장모의 영정뿐이다 사진 한 번 보고 그녀를 만났다고 할 수는 없지 본 적도 없는 이와 하는 작별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러나
처음 본 친구의 장모는 웃고 있다 친구의 처는 울음을 그치지 않지만 친구의 장모는 줄곧 웃고 있다
김은 어지럽다 김은 망설인다
-「김은, 검은」부분
「김은, 검은」에서 화자는 친구 장모의 영정 앞에서 절을 하려다가 머뭇거린다. 친구의 장모를 영정으로만 만났을 뿐 실제로는 본 적이 없으므로, 만난 적이 없는 이와 작별하는 게 가능한지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친구 장모의 이름조차 모르며 금방 그녀를 잊을 것이라는 데에 죄책감을 느낀다. 죄책감이란 자신이 지은 죄나 잘못에 대하여 느끼는 감정이다. 그런데 이 화자가 느끼는 죄책감의 죄(잘못)란 너무 쉽게 ‘부재하는 것’을 ‘잊는다’는 것으로, 죄나 잘못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어색하다. 부재의 흔적에 대한 화자의 죄책감은 “없음의 남아 있음”처럼 가능한 동시에 불가능한 무언가로 남는다.
비존재의 여성적인 목소리들
무분별하고 의례적인 애도의 방식 앞에서 화자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사이에 끼여 들리지 않는 발음”처럼 ‘우두커니’ 있거나, “우리가 아닌 곳에 한참을 서 있”는 것뿐이다. 이렇게 나가지도 오가지도 못하는 문 같은 자리에서 화자는 무력하고도 무거운 ‘서 있음’ 으로 자신의 죄책감을 얹어 멘다.
좋은 건 많은 거라고 형에게 배웠지
엄마의 병이 깊어지자
기타 연습할 시간이 많아져 형은 좋았네
엄마의 부재가 깊어지자
집 곳곳에 공의 검은 그림자처럼 굴러다니는 머리카락들
이게 도대체 사람 사는 집구석이야? 이놈의 여편네는 왜 청소도 안 하고 누워 있는 거지?
엄마가 죽을 병에 걸린 걸 알면서도 형이 지껄이자
아버지의 목소리가 걸어나오네
아버지가 있지도 않은 집안에서
-「클래식」부분
전깃줄 사이로 보이는 낡은 간판이
골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무도 누설하지 못한 골목의 냄새를
오래도록 맡아왔다는 얼굴로
내내 좁은 계절을 기록하면서
여자가 울었다
소문처럼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고 울었다
내 입술은 아무런 질감을 가진 적 없어
나는 끝끝내 여자의 표정을 알지 못했다
-「무성한」부분
그런데 이 자책의 시간 속에 계속해서 어떤 목소리들이 들린다. 그것은 다름 아닌 유령처럼 귀환하는 부재의 여성적 목소리들이다. 「클래식」에서 ‘아버지의 목소리’로 대변되는 것이 죄책감을 일으키는 누군가의 부재라면, 「무성한」에서 ‘소문 속 여자의 울음’ 같은 여성적 목소리는 누군가의 부재를 증명하는 흔적이다. 이광호 평론가의 말처럼 여성으로 대변되는 소리는 부재한 것들의 “상상적 기억의 자리”를 만들며, 이를 통해 ‘쉽게 잊히는 것’들은 ‘무성하게’ 귀환한다.
“문을 열면 밖은 안으로 들어오고 안은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나는 이미 안이기 때문이었다”고 말하던(「후유증」), 검은 그들 중 하나인 대명사로서의 화자는 비존재의 여성적 목소리를 통해 이 시집의 마지막 시 「죄책감―천부에서」“길을 만들”어 간다. 그 길은 눈에 쌓여 보이지 않고 내려가도 계속 내리막이지만, 임경섭 시인은 “보이지 않는 곳이 계단이라 믿”으며 비존재의 목소리에게 자신의 공간을 양보하는 것이다. 멀어지는 것으로 부재의 흔적을 증명하는 이 길에서 비존재는 무성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찾으며 비로소 ‘다른 의미의 마주침’들이 생겨난다.
‘모성적인 것’ 혹은 ‘여성적인 것’을 둘러싼 이 시집의 시적 주체들의 동경과 죄의식은 이런 문맥들과 무관하지 않다. ‘소문의 여자, 누나, 할머니, 엄마, 애인’, 혹은 복수성과 유령으로서의 여성적인 것은 시 쓰기의 동기이자 동력이며, 시적 사건으로서의 내밀한 시간들이다. 저 ‘무성한 여자들’에 대한 깊고 끈질긴 애도로부터 임경섭의 시 쓰기가 ‘시작’되었다면, 무한한 애도로서의 시 쓰기는 최후의 침묵을 향해 다시 시작될 것이다. 애도의 무한함이 여성적인 것들의 무성함을 향할 때, 임경섭의 언어들은 다시 무성해진다.
_이광호 해설, 「무성한 여자들로부터」에서
*
책 속에서
우두커니
출근길에 생각했다
나는 왜 저 사내가 되지 못할까
선로는 나가지도 들어가지도 못하는 문
그 위에 서서 나는 왜 저 사내가 되지 못할까
생각했다
그러니까 등이 아주 작게 말린
가난한 아비 하나가 선로 위에 누워 있던 거다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외할머니는 그의 등을 긁어주었던 거다
좁게 파인 등골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며
등이 작으면 저 긴 잠 일렁이는 물결에도
별자리들이 출렁이지
출렁이기 마련이지,
혀를 찼던 거다
외할머니 연곡 뒷산에 묻고 오던 날
어린 그에게 감을 따주었다는 셋째 외삼촌과
그날 따먹은 건 감이 아니라 밤이었다는 첫째 외삼촌,
그는 그 중간쯤에 서 있는 담이었던 거다
혹은 이듬해 연곡천에서 끓여먹던 개장국 안에
흰둥이의 눈깔이 들어 있었다는 사촌누이와
처음부터 대가리는 넣지도 않았었다는 막내의 실랑이,
그는 그 사이에 끼여 들리지 않는 발음이었던 거다
있거나 말거나 있었거나 없었거나
그러니까 선로 밖으로 휩쓸려나가
처음 보는 동네 정류장에서
노선도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며 생각했다
나는 왜 달려오는 전동차 밑으로 몸을 눕히지 못할까
그리하여 수십 수백의 출근길을 몇십 분이라도
훼방 놓지 못할까
생각했다
척, 한
꼭 자정 넘어서야 애인은
잠도 안 자고
자라지도 않은 발톱을 깎았다
이만큼이 내 어제야
창밖으로
애인의 눈곱만한 시간들이 던져질 때마다
발톱 먹은 쥐가 둔갑해 나타날 거라는
해묵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떠올렸지만
나는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어둠 속에 이미 아버지가 많았다
발톱이 버려질 때마다
쥐보다 내가 더 싫다며
애인은 꼭 비명을 지르고
나는 사랑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는 핀잔이
오늘을 잉태한다고도 믿었지만
한 번도 말하지는 않았다
고백하자면 애인은
발톱 깎는 시늉에 바쁜 날이 잦긴 했었다
창밖으로
시늉을 던지면
그 하얗던 어제가 밤보다 더 까맣게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리던
죄책감
-천부에서
우리는 계단을 내려갔다
짐을 부리자마자 계단을 내려갔다
눈이 쌓인 만큼 계단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곳이 계단이라 믿으며 계단을 내려갔다
눈이 쌓인 곳으로 소리도 사라졌다
길이 길이었던 곳으로
계단이 계단이었던 곳으로
우리는 내려갔다
내려가도 내리막이었다
멀리서 벼랑을 때려대는 파도는
몇천 년이고 그래왔다는 듯이
파도였다
우리는 계속 계단을 내려갔다
내려가다가 우리는
우리가 길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별 시답잖은 생각을 다
해보기도 하였다
*
시인의 말
멀어져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헤어짐은 다른 의미의 마주침이다. 13년을 새로운 당신과 살았다.
첫 시집을 묶고 나서야 모든 말은 오해로 존재한다는 걸 알았다. 13년 동안 당신을 오역했다. 이것이 내 죄책감의 근원이다.
무한의 방향에 서서 나를 바라보는 엄마들이 있다. 꿈이다. 꿈만큼 정직한 해석이 있을까?
지금은 생시이므로, 내 기록이 철저히 오해되길 바란다.
2014년 9월
임경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