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상섭부터 김애란까지,
거장 황석영과 함께 걷는 한국문학 100년의 숲
1962년 등단, 오십여 년 한결같이 왕성한 창작활동을 해온 거장 황석영이 지난 100년간 발표된 한국 소설문학 작품들 가운데 직접 가려 뽑은 빼어난 단편 101편과 그가 전하는 우리 문학 이야기. 작가 황석영이 온몸으로 겪어낸 시간들을 통과하면서 과거의 작품들은 그만의 시선으로 새롭게 부활했고, 오늘의 작품들은 그 깊이가 달라졌다. 긴 시간 현역작가로 활동해온 그이기에, 그리고 당대와 언제나 함께 호흡해온 그이기에 가능한 ‘황석영의 한국문학 읽기’! 특유의 입담과 깊이 있는 통찰, 과거와 오늘의 작품을 새로 읽는 데 있어 반성을 주저하지 않는 그의 태도는 우리 문학에 다가서기 어려워하는 독자들까지도 작품 곁으로 성큼 이끌어준다.
기존의 국문학사나 세간의 평가에 의한 선입견을 배제하고 현재 독자들에게 어떠한 의미를 던져줄 수 있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 선정된 작품들에는 유명한 작가의 지명도 높은 단편뿐만 아니라 지금은 거의 잊힌 작가의 숨은 단편들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각 권의 말미에는 시대와 작품을 아우르는 문학평론가 신수정의 해설이 덧붙여져 독자들의 이해를 돕도록 했다.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은 우리 시대의 한국문학에 바치는 나의 헌사가 될 것이다. 아직도 나라와 사회의 운명이 평탄치 않아서 서구문학에 견주어 우리 문학의 수준을 감히 타매하는 이도 있고 일본과 중국 문학에 빗대어 비하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선집을 통해서 ‘고통받은 고통의 치유자, 또는 수난당한 수난의 해결자’인 문학의 이름으로 곡절 많은 이 땅의 삶을 담아낸 한국문학의 품격과 위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자부한다. 이 작품과 작가들을 보라. 그들은 하나같이 자기 인생을 문학에 바쳤다. 나는 특히 작고한 선배들의 작품을 다시 읽으면서 자신의 갖가지 영욕의 생활을 원고지에 한 자 한 자 적어나가던 그 숨결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으며, 동시에 우리 근현대문학의 강인한 힘을 새삼 확인했다. 그들은 동구 밖의 돌담이나 정자나무처럼 풍상 속에서 무너지고 꺾이기도 하면서 늘 우리 곁에 있었다. _‘펴내며’ 중에서
나는 이 명쾌한 해설 앞에서 새삼 황석영 선생의 문학적 깊이에 압도당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문학 그 자체로 구성해온 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사실 진술의 진경이라고 할 만하다. _신수정(문학평론가)
*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반항에 있지 않다
저 젊은이들의 나에 대한 사랑에 있다
아니 신용이라고 해도 된다
‘선생님 이야기는 20년 전 이야기이지요’
할 때마다 나는 그들의 나이를 찬찬히
소급해가면서 새로운 여유를 느낀다
새로운 역사라고 해도 좋다
이런 경이는 나를 늙게 하는 동시에 젊게 한다
아니 늙게 하지도 젊게 하지도 않는다
이 다리 밑에서 엇갈리는 기차처럼
늙음과 젊음의 분간이 서지 않는다
다리는 이러한 정지의 증인이다
젊음과 늙음이 엇갈리는 순간
그러한 속력과 속력의 정돈 속에서
다리는 사랑을 배운다
_김수영, 「현대식 교량」 중에서
새로운 세대를 위한 한국문학의 밝은 길잡이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
지난 2012년 작가 인생 50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황석영은 김수영의 시 「현대식 교량」을 낭독했다. 이 낭독은 어쩌면 이후 그의 문학적 향방을 예고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식민지 시대부터 2000년대까지, 101편의 작품을 가려 뽑고 편마다 해설을 덧붙인 그의 작업은 마치 ‘현대식 교량’의 역할을 하겠다는 천명의 증거들처럼 보인다. 역사를 온몸으로 통과해온 자로서 무언가 증언을 할 수만 있다면 그것을 하겠다는 근본적이고도 절박한 욕망으로, 그는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을 2011년 11월부터 2014년 11월까지 꼬박 3년 동안 연재했다. 그리고 이를 전10권의 책으로 묶어내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는 이 해설들을 다시 검토하고 전면적으로 수정했다. 이 대대적인 작업 덕분에 우리는 황석영의 ‘현대식 교량’ 위를 건너다니며 소설 안에 기록된 시대의 풍경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 작업은 그 첫걸음부터 예상을 뛰어넘는다. 우리는 흔히 ‘한국 근현대문학사’를 떠올릴 때 관습적으로 혹은 너무도 자명하다는 듯 그 시작점에 ‘이광수’를 놓는다. 그러나 황석영은 이광수로부터 연원하는 한국 근현대문학사의 출발점을 물리치고 염상섭을 그 시작으로 두었다. 그것은 이광수의 소설 안에 ‘사람’의 세계가 부족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인간과 세계의 실감을 소설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보는 작가는 염상섭의 작품 가운데에서도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단편소설 「전화」를 첫머리에 두면서, 이 작품에 이르러 비로소 구체적인 일상에 대한 집요한 탐구를 통해 모호한 계몽주의를 벗어나 한국 근현대문학의 형상이 갖추어졌다고 설명한다.
또한 이 작업은 지금의 거장 황석영을 있게 한 선배들의 작품과 그들이 살다 간 시대를 다루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가 역사의 현장 어디쯤에선가 한번쯤 어깨를 부딪치고 술잔을 기울인 동료들에 대한 증언이기도 하다. 작품을 해설하는 데 작품의 내용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한 작가의 개인사이다. 그것은 어디에 기록된 무엇이라기보다, 구체적인 관계와 뜨거운 체험 속에서만 형성될 수 있는 ‘기억’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기억의 주체가 사라지면 그 기억들 역시 증발해버리고 만다. 작가의 ‘현대식 교량’에 대한 열망, 그리고 ‘증언’에 대한 책무는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그가 “아, 정말로 이문구를 어찌 다 말할 수 있을까. 옛 벗들의 삶과 작품을 객관적으로 대하려고 애쓰면서도 추억을 자꾸 곱씹게 되는 것은 나도 늙어간다는 것이리라”(『04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폭력의 근대화』, 140쪽)라고 말할 때 우리는 이 목소리의 생생함에 놀라는 한편, 이와 같은 해설을 다른 어느 자리에서도 만나기 어려우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스스로를 “소설가 남편”으로 지칭하며 객관적 서술을 시도하지만 속절없는 회한을 차마 숨길 수 없는 다음과 같은 장면에서는 마음이 젖어들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이가 소설가 남편과 함께 전라도에 내려갔을 때는 1976년 서른두 살이었고 서울로 돌아온 것이 2004년 예순 살이었으니 광주에서 그이는 한평생을 보낸 셈이다. 어떻게 보면 내가 해야 할 일을 떠맡은 셈이었고, 내가 길을 떠나 새로운 것들과 대면하고 세계를 겪어가는 동안 그이는 ‘빈터’에 남아서 사라진 것들을 기억하고 남겨진 이웃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뒷마무리까지 해냈다. 이것이 내가 문학과 인생에서 놓친 부분이며 그이가 채워놓은 부분이다.”(『07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변혁과 미완의 출발』, 95쪽)
선배와 동료 작가들에 대한 증언 이후 작가는 ‘현대식 교량’의 한쪽 끝에서 현대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식민지 시대부터 2000년대까지를 담아낸 전10권 가운데 세 권(8~10권)이 1990년대 이후의 소설들을 담고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수적으로 불균형하다고 말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점이 여타의 선집과 구분되는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시대에 중점을 둘 것. 이러한 이유로 꽉 채우고 끝이 난 ‘100’이 아니라 이를 채우고 다시 시작되는 ‘101’이 된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지속되는 한, 소설 또한 끝나지 않을 것이므로. 1897년에 태어난 작가 염상섭의 「전화」로 시작된 대장정은 1980년에 태어난 작가 김애란의 「서른」으로 끝을 맺는다. 황석영이 이 젊은 작가의 작품에서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어쩌면 시대가 바뀌어도 영원할 작가와 소설의 운명이 아니었을까. “누가 이런 꼴의 지옥을 만들었는가. 작가란 무엇인가. 소설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이러한 정경과 기록은 저 어둡고 캄캄했던 식민지에서부터 시작되어 현재에 닿는 기록이며,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기를 넘어서 다시 시작해야 할 또다른 출발점이다. 한국문학은 그런 생명력을 가진 문학이다. 나는 무엇이 되었든 당대와 현존이 가장 힘이 있다는 사실을 젊은 김애란의 소설에서 재삼 확인한다.”(『10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너에게로 가는 길』 , 388쪽)
■ 차례
펴내며
누구에게나 일생에 절창은 하나씩 있다 _004
최인호, 「타인의 방」 _013
저는 이 집의 주인입니다 _030
박범신, 「토끼와 잠수함」 _035
제발 창문 좀 열자! _058
이외수, 「고수」 _065
불온한 열외 _087
송기원, 「다시 월문리에서」 _093
상처의 아름다움 _121
김성동, 「잔월殘月」 _133
외로움 너머 저편의 그리움 _158
윤후명, 「원숭이는 없다」 _169
탈출할 수 없는 일상 _200
이문열, 「하구河口」 _209
나를 길러준 사라진 것들 _273
이창동, 「소지燒紙」 _283
제의祭儀의 알레고리 _316
김원우, 「소인국小人國」 _323
이빨이라도 아프다가 죽든가 _356
임철우, 「동행」 _361
뭔가,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을 거야 _391
해설 | 신수정(문학평론가)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_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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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유신독재의 종말과 함께 시작된 1980년대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모순적인 시대라고 할 만하다. (…) 한쪽에서는 정치적으로 각성된 민중의 집단적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면, 다른 한쪽에서는 고도자본주의사회의 상품 소비자로 전락한 새로운 형태의 대중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정치적으로는 불같은 ‘야만의 시간’이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켰다면, 경제적으로는 비로소 ‘대중소비사회’가 도래했다고 할까? 이 ‘채찍’과 ‘당근’의 이중적인 통치술에 힘입어 1980년대는 야만적인 폭압과 현란한 소비가 공존하는 특이한 시간대를 형성하게 된다. (…) 우리는 이 ‘채찍의 시간’을 영원히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폭압의 시간 속에 내재되어 있는 ‘당근의 시간’을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어느 순간 안개처럼 우리의 일상을 점령하게 된 대중소비사회의 허황된 환상과 그 위선에 대해 아무런 발언도 할 수 없는 문학이라면 그것 역시 문학이라고 하기 곤란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당대 현실에 발붙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소설은 이 야만의 불꽃이 지나가고 난 다음의 일상을 증언해야만 한다. 일찍이 박경리 선생은 이 사실을 소설 제목을 통해 암시한 바 있다. 시장과 전장. 이 둘은 하나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전장 속의 시장’ 혹은 ‘시장 속의 전장’을 포착하고자 한 소설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_이번에 묶인 작가들은 1954년생인 이창동, 임철우 등을 제외하면, 대개 해방이 되던 1945년부터 남북한 단독정부체제가 수립된 1948년 즈음 출생한 사람들이 많다. 이른바, 해방둥이. 그들은 식민지의 남루한 기억에서 자유롭다. 이 말은 그들이 식민지의 경험과 무관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식민지 시대의 잔재는 현재의 그들을 구속하는 기원으로 여전히 작용하고 있기는 하다. 무엇보다도 사회주의자 아버지의 월북과 그로 인한 가족의 해체를 경험한 몇몇 작가들, 즉 김성동, 김원우, 이문열 등은 어떤 식으로든 아버지의 이념에 대한 자신들 나름의 자의식을 자기 문학의 근저로 활용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윗세대 작가들, 예컨대 이문구(1941), 김원일(1942) 등과 비교하면 이 자의식의 양상이 현저하게 다르게 나타난다. 김원우가 회고하는 있는 것처럼, 이 ‘해방둥이’ 작가들은 ‘너무 어린’ 나이에 6·25를 겪고 그들의 아비와 작별하게 되기 때문에 전쟁에 대한 기억뿐만 아니라 아버지와의 유대 경험 자체가 약할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아버지란 어머니의 회고에 의한 왜곡된 기억의 재구성일 뿐이다. 이 경우, 남편의 이념적 선택이 초래한 일상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던 아내들에게 남편과 관련된 어떤 것, 즉 일상을 넘어서는 형이상학적 열정에 대한 미화를 기대하기란 여간 곤란한 것이 아니다. ‘해방둥이’들의 소설이 윗세대 형들의 작품과 달리 이념에 냉소적인 것은 이러한 배경을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자유 대신 어머니의 일상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이 일화를 통해 1945년 해방이 한국 작가들의 심리적인 분기점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해방 전에 태어난 작가들과 해방 후 출생한 작가들 사이에는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건널 수 없는 심연이 존재하는 것 같다.
_이제 1980년대 소설의 두번째 권의 작품들을 대망하며 이 영역을 마무리하도록 하자. 이창동과 임철우는 1954년 동갑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들의 소설은 다음 권에 올 소설들의 속성을 예감하게 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주로 1950년대 전후로 태어난 이 부류의 작가들은 1980년대 문학의 진정한 적자라고 할 만하다. 그들은 이십대 후반, 예민한 지성과 순결한 영혼이 공존하는 시기 ‘5월 광주’를 경험한다. 이 광주에 대한 ‘사랑’과 ‘분노’는 그들을 영원히 광주에 붙들어매도록 만드는 결정적인 상처로 작용한다. 그들의 문학은 결국 ‘광주’를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다가 마침내 그곳으로 수렴되는 절대의 문학에 다름 아니다. (…) 그들은 어느 순간, 혼자 돌아가야 할 먼길의 도정에 나선 자들이다. 그렇게 그들이 걸어온 길이 바로 역사가 되었다. 이제 그 길을 우리가 간다.
_신수정 해설,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06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억압과 욕망』
■ 황석영
1943년 만주 장춘에서 태어나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고교 재학중 단편소설 「입석 부근」으로 『사상계』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1964년 한일회담 반대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서 유치장에 갇히게 되고 그곳에서 만난 일용직 노동자를 따라 전국의 공사판을 떠돈다. 오징어잡이배, 빵공장 등에서 일하며 떠돌다가 승려가 되기 위해 입산, 행자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후 해병대에 입대, 베트남전에 참전했고 이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단편소설 「탑塔」이 197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89년 방북하여 귀국하지 못하고 베를린예술원 초청 작가로 독일에 체류했고, 1993년 귀국 후 방북 사건으로 7년 형을 선고받았으나 1998년 사면 석방되었다. 1989년 베트남전쟁의 본질을 총체적으로 다룬 장편소설 『무기의 그늘』로 만해문학상을, 2000년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변혁을 꿈꾸며 투쟁했던 이들의 삶을 다룬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으로 단재상과 이산문학상을 수상했다. 2001년 ‘황해도 신천 대학살 사건’을 모티프로 한 장편소설 『손님』으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 『객지』 『가객』 『삼포 가는 길』 『한씨연대기』 『무기의 그늘』 『장길산』 『오래된 정원』 『손님』 『모랫말 아이들』 『심청, 연꽃의 길』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등이 있다. 프랑스, 미국, 독일, 이탈리아, 스웨덴 등 세계 각지에서 『오래된 정원』 『객지』 『손님』 『무기의 그늘』 『한씨연대기』 『삼포 가는 길』 등이 번역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