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가게』로 제13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이나영,
그가 새로이 꿰어 건네는 여섯 개의 빛나는 구슬
이 시대 아이들의 삶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작가 이나영이 신작 『블루마블』을 선보인다. 『시간 가게』를 통해 입시라는 미래의 목표를 위해 ‘지금’을 유예시켜도 되는가라는 중요한 질문을 던졌던 작가다. 그가 새로이 건네는 단편집 『블루마블』 속에는, 불규칙한 디딤돌을 조심스레 밟으며 나아가는 용감한 아이들의 목소리가 담겼다. 차갑고 비틀린 현실의 틈을 감지하는 예리한 시선과 그 속에서 분투하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알아차리는 작가의 감수성은 『블루마블』의 전편을 고요히 압도한다. 그가 이 여섯 편의 작품을 통해 증명해 보이는 것은 광막한 우주를 도는 천체들 사이를 공고히 채우고 있는 인력, 서로를 당기는 힘이다.
목소리를 내는 너와, 너를 읽고 헤아리는 나
외로이 유영하는 아이들의 우주
첫 작품 「블루마블」은 극과 극의 두 친구 혜나와 은서 사이에서 갈등하는 ‘나’의 이야기이다. 주사위를 굴려 돌아가는 게임판 위, ‘나’의 짐작과 너무 다른 혜나와 은서의 진짜 모습은 어지러울 정도로 아찔하다. 불필요한 서술 없이, 육면체의 작은 공간 속에서 펼쳐지는 세 아이의 긴장감 넘치는 심리전은 단편만이 가질 수 있는 묘미를 일깨운다.
반가운 손님을 기다리던 설렘이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을 그린 「노란 포스트잇」은 우리 사회 전체의 상처를 떠올리게도 한다. 나부끼는 노란 종이들의 이미지와 차분히 숨을 고르는 주인공의 모습은 도리어 우리를 다독이는지도 모른다.
「봄날의 외출」 속 주인공은,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재방송처럼 납작한 현실을 자기만의 기쁨으로 채워 나간다. 작가는 시종 경쾌한 문체로 주인공의 편에서 함께한다. 눈물이 쏙 빠지는 닭갈비볶음면의 맛과 흩날리는 봄밤의 꽃잎들, 아빠와 잡은 손을 크게 흔들며 걷는 주인공의 뒷모습이 코끝을 아리게 하는 작품이다.
자신에게 찾아온 사랑의 감정을 힘차게 밀어붙이는 여자아이 연수의 목소리가 담긴 「내 남자의 그녀」에서는 능청스러운 문장과 전복의 재미가 돋보인다. 「검정 가방」의 주인공은 밖으로 끄집어내지 못하는 고통의 기억을 가슴에 묻은 아이다. 거짓 위로나 섣부른 봉합을 하지 않는 작가의 태도가 오히려 독자를 안도하게 한다. 마지막 작품 「어느 날, 고래가」는 엄마의 맹목적인 욕망과, 가눌 길 없는 슬픔과 답답함으로 물들어 버린 아이의 가슴을 푸른 물의 이미지로 그려냈다. 색색의 빛을 품은 밀도 높은 수작들이 한 권을 가득 채웠다.
말갛고 명징한 공감의 힘
섬세한 감각과 대담한 표현력을 모두 가진 화가 유경화의 그림은 이 여섯 개의 구슬에 다양한 질감과 색을 입혔다. 촘촘한 문장 사이에 숨겨진 기쁨들을 낱낱이 끌어올려 보여 주리라 작정한 듯한 『블루마블』 속 그림들은 작품의 중요한 축을 담당한다. 흔하지 않은 색채 구성과, 느림과 빠름을 유려하게 조절하는 그림의 흐름은 독자의 심미안을 두드린다.
“나는 목소리를 잘 내지 못하는 아이였어요. 힘들고 화가 나도 입을 꼭 다물고 속으로만 끙끙댔어요. 하고 싶은 말을 곱씹느라 머리가 터질 것처럼 아프기도 했어요. 어차피 알아듣지 못할 거야 지레짐작하고 포기한 적이 많았지요. 그러다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말이에요. 지금 생각하니까 나는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고 있었더라고요. 햇빛 하나 들지 않던 작은 다락방에서도, 좁은 골목길 구석에서도, 부모님이 일하시던 정신없는 시장통에서도 책을 읽고 책 속 친구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또 내 이야기를 했어요.”_작가의 말 중에서
『블루마블』의 명징한 공감력은 작가가 내면의 목소리를 스스로 알아차렸던 그때의 경험에서 기인하는지도 모른다. 작가는 공감의 순간에 찾아오는 환희를 문학이라는 그릇 안에 담아 아이들에게 건넨다. 동그란 물체의 중심을 이루는 구심력은 자기의 세계를 알아차리는 힘, 그러고 나서 앞으로 나아가는 힘, 옆에서 걷는 친구를 붙잡아 주는 힘이라는 것을, 『블루마블』은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