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글픈 미스터리의 완벽한 배경, 스웨덴의 욀란드 섬
욀란드는 어업과 해운업으로 한때 활기가 넘쳤던 곳이지만 이제는 영락하여 젊은이들이 사라진 섬이다. 매해 2만여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여름과, 사는 사람조차 없어 텅 빈 겨울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스웨덴 본토와는 거리감이 있고 욀란드 다리가 건설되기 전까지 오랫동안 고유의 문화를 유지했으며 이제는 노인들만 남아 있는 곳. 불가사의한 사건이 벌어지기에 훌륭한 배경인 셈이다.
작가 요한 테오린은 어려서부터 매년 여름을 욀란드 섬에서 보냈다. 그의 어머니는 가족 대대로 욀란드에서 살아온 토박이다. 때문에 테오린은 욀란드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을 들으며 자랄 수 있었고, 계절에 따라 욀란드 섬은 어떤 모습이며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 수 있었다. ‘욀란드의 사계’ 시리즈에 담긴 아름다우면서도 적막한 풍광 묘사와 오싹함을 선사하는 전설-미스터리는 이렇게 작가의 경험 속에서 태어났다.
● 외딴섬의 아름다운 풍광 속에 숨겨진 추악한 미스터리
『요정이 부르는 곳』의 주요 무대는 욀란드 섬의 북쪽에 자리한 채석장이다. 트롤과 요정이 전쟁을 벌인 후 핏자국이 땅에 스며들어 붉은 석회석이 생산된다는 전설이 있는 불길한 곳이다. 과거엔 그 독특한 돌 덕분에 성업을 이루었지만 지금은 페쇄되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만 감돌 뿐이다. 이런 곳에도 봄의 기운은 전해진다. 옐로프는 가을과 겨울을 지낸 요양원에서 나왔고 봄기운이 감도는 자기 집 정원에 앉아 아내의 일기장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부활절 연휴를 보내기 위해 내려온 새로운 이웃과 마주친다.
페르는 옐로프의 친구 에른스트의 조카인데, 에른스트의 유산인 채석장 옆 오두막을 물려받았다. 그의 처음 계획은 아이들과 욀란드 섬에서 평화롭게 부활절 휴일을 보내는 것이었지만,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가 끼어들게 되면서 모든 것이 달라진다. 아버지는 스웨덴을 ‘금발 미녀가 유혹하는 천국’으로 만든 포르노계의 거물로, 지난해 뇌졸중을 일으킨 후 총기를 잃었다. 누군가 그런 그의 재산을 빼돌린 것도 모자라 목숨을 노리고 있다. 방화에 이어 뺑소니까지 겪은 페르는 아버지와의 관계를 제대로 마무리 짓기 위해 아버지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벤델라가 있다. 욀란드 출신인 그녀는 섬에 전해 내려오는 요정에 대한 전설을 믿는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 벤델라는 인간들 사이에서 이해받지 못하고 정신병원에 보내질 뻔한 환자를 요정들의 세계로 보내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십 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다시금 요정들이 자신의 고민을 해결해줄 거라 믿고 욀란드 섬으로 돌아온다.
작가 요한 테오린은 이 작품을 통해 세 사람의 과거에 숨겨진 비밀은 물론, 그 비밀들이 얽혔을 때 태어나는 새로운 비극에 대해서 보여준다. 또한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비극을 딛고 일어나는 사람들의 강인함과 희망도 보여준다. 현재를 제대로 살아가고 미래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과거를 제대로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자주 잊는다. 요한 테오린은 복잡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통해 그 ‘삶의 진실’을 역설한다. 옐로프, 페르, 벤델라가 과거를 청산하는 고통의 시간은 담담하게 절제된 표현으로 씌어 더욱 애석하지만, 비로소 과거의 그림자를 떨친 후 새로운 희망으로 가득 찬 미래를 바라보는 모습을 보노라면 깊은 감동이 밀려온다. 새로운 봄을 맞이하여 진정한 출발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희망이 『요정이 부르는 곳』에 담겨 있다.
● 요양원의 할아버지, 탐정이 되다
‘욀란드의 사계’ 시리즈의 주인공인 옐로프는 가을 편 『죽은 자들의 메아리』에서 실종된 손자의 행방을 찾아내고, 겨울 편 『가장 어두운 방』에서는 카트리네의 죽음에 관한 수수께끼를 풀어냈다. 『요정이 부르는 곳』에서는 아내의 일기장에 적힌 ‘트롤’의 정체와 새 이웃들의 과거에 얽힌 비밀을 밝힌다. 그는 혼자서는 걷기도 힘든 노인이지만 페르의 고통스러운 고백에 귀 기울이고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조사한다. 페르의 아버지를 죽이고 싶어하는 사람은 누구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에 관한 대답을 찾아내, 이 시리즈의 명실상부한 탐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옐로프는 사건에 목마른 탐정도 아니고, 직접 범인의 뒤를 쫓는 사냥개 같은 타입도 아니다. 전작 『죽은 자들의 메아리』에서 개인사를 되돌아보며 실종 사건의 수수께끼를 풀었던 것처럼, 옐로프의 무기는 살아온 세월만큼의 지혜와 인내심이다. 그는 거리로 몸을 던져 범인의 뒤를 쫓는 대신 끈기와 눈썰미로 끝끝내 어둠을 밝히는 인물이다.
옐로프의 수사에 스릴은 없지만 그럼에도 소설은 지루할 틈이 없다. 오히려 노인의 집념과 분투에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게 된다. 옐로프는 작가가 자신의 외할아버지를 모델로 만들어낸 인물이다.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삶의 지혜가 풍부한데다 담백한 성정을 가진 이 할아버지 탐정을 작가가 사랑을 담아 창조했듯, 독자들 역시 사랑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