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피카 스쿨
The Topeka School
벤 러너 장편소설 | 강동혁 옮김
문학계가 주목하는 “소설의 미래”
미국의 젊은 소설가들을 사로잡은 작가 벤 러너
❇ 버락 오바마 선정 올해의 책 ❇
❇ 로스앤젤레스 북 어워드 수상 ❇
❇ <뉴욕 타임스><타임><워싱턴 포스트> 올해의 책 TOP 10 ❇
❇ 퓰리처상 최종후보 ❇
❇ 전미비평가협회상 최종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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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애들이 다 그렇지.
버릇이 나빠진 건 그냥 버릇이 나빠진 거지.
페미니스트로 성공하지만
‘남근 선망’을 한다는 야유를 받는 어머니
아내의 성공으로 ‘거세당한 남성’의 기분을
묻는 질문에 난감한 아버지
전국 토론 챔피언이자 미래의 아이비리그 학생이면서
은밀한 일탈과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를 즐기는 아들……
발라버리고 갈라치는 말과 혐오의 시대,
페미니스트 어머니와 ‘남자들’의 목소리 사이에서
소년은 어떻게 어른이 되어가는가?
심리상담가의 소파에 누워 있는
‘특권의 미아들’, 그들은 누구인가?
두 딸아이의 아버지인 애덤은 반의식적으로 놀이터를 훑어본다. 아이들을 괴롭힐 만한 녀석이나 바닥에 깨진 유리가 있는지 확인한다. 놀이터 시설의 높이와 이런저런 추락에 따를 수 있는 부상을 머릿속에 새겨놓은 뒤 잠깐 휴대폰 메시지를 확인한다. 그때 미끄럼틀에서 큰 소리가 들려온다. 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미끄럼틀 위에서 발을 쾅쾅 굴러대며 말한다 “미끄럼틀은 남자용이야, 여자는 미끄럼틀 못 타. 저리 가.” 애덤이 소년에게 다가가 말한다. “여자애들도 미끄럼틀을 타게 해주면 어떨까?” 그러자 그애가 말한다. “안 돼요. 이 여자애들은 멍청해요. 그리고 못생겼어요. 못생기고 멍청한 여자애들은 안 돼요.” 소년의 아버지는 아이를 제지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저 휴대폰 화면만 들여다볼 뿐이다. 머릿속에서 ‘남자들’의 목소리가 말한다. “남자애들이 다 그렇지. 버릇이 나빠진 건 버릇이 나빠진 거지. 딸들에게 그네를 타라고 하렴. 대립을 통해서 얻을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려주렴……”
문학계가 주목하는 “소설의 미래”, 미국의 젊은 작가들을 사로잡은 소설가 벤 러너의 장편소설 『토피카 스쿨』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의 작품이다. 시인이자 소설가 벤 러너는 만 사십 세가 되기 전에 ‘천재 예술가 그랜드슬램’으로 알려진 풀브라이트 장학금, 구겐하임 펠로십, 맥아더 지니어스 펠로십을 모두 수혜하기도 했다. 2019년 10월에 출간된 『토피카 스쿨』은 ‘버락 오바마 선정 올해의 책’, <뉴욕 타임스> <타임> <워싱턴 포스트> ‘올해의 책 TOP 10’을 비롯해 스무 곳이 넘는 언론사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며 그야말로 그해 올해의 책 리스트를 휩쓰는 기염을 토했다. 로스앤젤레스 북 어워드를 수상하고 퓰리처상과 전미비평가협회상 최종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페미니스트 어머니와 ‘남자들’의 목소리 사이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한 소년의 성장기이자 발라버리고 갈라치는 말과 혐오의 시대, 분노로 들끓으며 분열하는 세계, 심리상담가의 소파에 누워 있는 ‘특권의 미아들’에 대한 날카롭고도 탁월한 통찰을 보여주는 전혀 새로운 경지의 메타픽션.
발라버리기_애덤
십대들은 점점 흔해지는 전문 의약품 TV 광고가 끝날 때마다 나오는 경고 문구를 들었다. 약물의 위험성에 관한 정보가 이해하기 어렵게 빠른 속도로 공개되었다. 또 라디오 광고가 끝날 때마다 규칙과 절차 준수 의무 목록을 빠른 속도로 읽어젖히는 것도 들었다. 금융기관과 의료보험회사에서 받는 ‘작은 글씨’에도 조금은 익숙했다. 그 수천 개의 단어로 절대 못할 일이 있다면 바로 그 단어들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이런 식의 공개는 은폐를 위해서 고안된 것으로, 문제의 기관에 이의를 제기할 경우 빠른 토론대회에서 ‘반박을 포기한 주장’으로 취급될 만한 정보를 내놓았다. 정보가 제시된 당시에 반박하지 못했으니 쟁점의 타당성을 인정한 셈이라는 것이다. 반박할 시간이 없었다는 건 변명거리가 못 됐다. 미국인들은 이십사 시간 뉴스와 몰아치는 트윗(트위터는 사람들이 머뭇거리는 동시에 빠르게 말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알고리즘 매매, 스프레드시트, 디도스 공격이 일어나기 전부터 일상적으로 ‘발렸다’. 한편, 미국의 정치인들은 계속해서 자신의 정책과 무관한 가치에 대해서는 천천히, 느리게 이야기했다. _본문 38쪽
1997년 켄자스시티 토피카고등학교 졸업반인 애덤은 전국 토론 대회 챔피언이다. 그를 토론과 연설 일인자로 만들어준 것은 바로 ‘발라버리기’ 기술이다. ‘발라버리기’란 상대편이 제한된 시간 내에 응답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주장과 더 많은 근거를 갖다붙이는 토론 기술을 말했다. 주장과 근거의 질이나 내용은 상관없었다. 더 빠르게, 더 많은 내용을 말하는 것, 그래서 상대가 ‘반박을 포기한 주장’이 더 많이 나오도록 유도하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토론자들은 말을 빠르게 쏟아내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포기했다. 이해하다보면 말이 느려지니까.
애덤은 토론 챔피언인 동시에 모든 과목에서 A를 받는 모범생이고 시를 읽고 쓸 줄 알았으며 어쩌면 아이비리그에 진학하고 나중에는 의회로 진출할지도 몰랐다. 게다가 그는 또래의 마초문화에도 적극적이었다. 규칙적으로 웨이트트레이닝을 했고 운동 후에는 단백질셰이크를 잊지 않았다. 또래 남자아이들과의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에서도 절대 겁먹은 기색을 보이거나 뒤꽁무니를 빼는 법이 없었다. 그는 상대를 훑으며 머릿속으로 상대의 체급을 가늠하고 이런저런 레슬링 기술을 시뮬레이션했다. 언제든 몸싸움을 벌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또한 친구들과의 일탈도 기꺼이 즐겼다. 그 덕에 부모에게는 자랑스러운 아들, 또래 사이에서는 ‘쿨한 친구’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이중 플레이가 언제나 효과적으로 작동하진 않았다. 모든 비뚤어진 욕망과 현실과 상상 속 갈등 상황에서 오는 스트레스, ‘진짜 남자’로 보여야 한다는 중압감, 언제든 침대에 누워 엄마를 찾는 어린애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극심한 편두통을 앓곤 했다.
남자들_제인
전화를 건 ‘남자들’은 내가 여보세요, 라고 말하면 나를 다양한 종류의 쌍년이라고 부르기 위해서 목소리를 귓속말 수준으로 낮추었어. 나는 들리지 않는 척했지. “죄송한데, 크게 말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러면 보통 혼란스러워하면서 뭐든 자기가 했던 말을 조금 더 큰 소리로 되풀이했단다. 나는 그 남자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렸지만 똑같이 공손하게, 이 전화의 성격을 알고 있다는 내색을 전혀 하지 않고 말했지. “죄송하지만 연결 상태가 좋지 않은가봐요. 조금만 더 크게 말해주실 수 있을까요?” 나는 계속해서 그 찌질이한테 목소리를 높여달라고 공손하게 부탁했지. 그는 메시지를 한두 번쯤 되풀이하다 결국 자기가 하는 말을 듣고 너무 당황한 나머지—아니면 그냥 누가 엿들을까봐 걱정했던 걸지도 몰라, 이런 남자 중 옆방에 아내나 딸이 있는 남자가 몇 명이나 됐을지 모르겠구나—목소리가 떨리거나 갈라지곤 했어. 대부분은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지. 수치심이 밀려와서 그랬을 거야. _본문 138쪽
애덤의 엄마 제인은 성공한 페미니스트이자 심리상담가다. 동료들은 그녀의 성공을 두고 ‘남근 선망’이라느니 뒷말을 해댔고 그녀가 하는 말, 행동 하나하나를 ‘남근을 갖기 위한 노력’으로 분석했다. 그리고 집으로 익명의 남자들이 전화를 걸어오기 시작했다. 제인이 전화를 받으면 그들은 거의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온갖 욕설을 퍼부어댔다. 그들은 제인이 그들의 결혼생활을 망친 쌍년이라는 점을, 그녀 같은 쌍년들, 페미나치들이야 말로 요즘 여자들의 문제라는 점을, 쌍년들은 입을 닥쳐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제인은 ‘남자들’의 전화를 처리할 기술을 발명한다. 제인은 전화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척 그들에게 거듭 목소리를 높여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 ‘남자들’은 결국 자신이 내뱉은 말에 너무 부끄럽고 당황한 나머지 전화를 끊어버리곤 했다.
어느 날 아들 애덤이 사고로 뇌진탕을 일으킨다. 의식을 잃고 병원 중환자실 침대에 누워 있는 아들을 보며 제인은 기도했다. 하느님께 빌었다. 더 높은 힘을 향해 약속했다. “애덤을 살려주세요, 그애만 무사하다면 다시는 글을 쓰지 않을게요.” 그녀의 머릿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말했다. “당신 남편이 불쌍해, 아들이 불쌍해. 당신이 그런 책을 쓰지만 않았다면 아들은 무사했을 텐데. 아무 일도 없었을 텐데.” 제인은 계속 기도했다. “맞아요, 그 말이 맞아요. 나는 나쁜 아내, 나쁜 엄마, 나쁜 딸이고, 가정파괴범이에요. 그냥 애덤만 괜찮게 해주세요. 그럼 말 잘 들을게요……”
특권의 미아들_조너선
그애들에게는 냉장고 가득 음식이 있고 에어컨과 TV도 있었다. 또한 낙인이나 국가적 폭력으로부터도 자유로웠다. 그 아이들이 고통의 정체를 모른다는 점보다 명백한 사실이 있을까? 그들에게 뭐든 고통이 있다면 그건 바로 고통의 결핍이었다. 너무 편해서, 너무 설탕을 많이 먹어서 생긴 일종의 신경장애, 존재론적 통풍. 그 아이들은 속 빈 강정이었다. 한마디로 그들은 너무 배가 불렀다. 한마디로 그들은 배가 고팠다. _본문 91쪽
신경증적인 부모들이 걱정하는 대로 그런 음악들을 천천히 거꾸로 재생했을 때 정말로 가사에서 사탄의 메시지가 드러난다면 얼마나 쉬웠을까. 아무리 음침하다 해도, 공허함에 대한 분노 대신 거꾸로 녹음해 숨긴 비밀스러운 질서가 있었다면. _본문 89쪽
애덤의 아버지이자 제인의 남편 조너선 역시 심리상담사였다. 그의 환자들은 대개 십대 소년이었는데, 유난히 그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부류가 있었다. 바로 안정적인 가정의 인텔리 중산층 백인 아이들. 누구보다 ‘정상적인’ 환경에서 부족함 없이 자란 아이들. 민주적인 가정에서 부모에게 엉덩이 한 대도 맞아본 적 없이 사랑받으며 자란 아이들. 이런 아이들은 모범적인 학교생활과 탁월한 성적을 보여주다가 보름 사이에 급격히 망가지더니 순식간에 수업을 빼먹기 시작하고 대마초 냄새를 풍기곤 했다. 부모가 대체 왜 그러는지 설명해보라고 하면 입을 꾹 다문 채 자기 방으로 향했다. 그러더니 어디서 슬쩍한 독주를 들이붓고는 부모의 차를 몰고 나가 길거리에 주차된 다른 차를 박아버리고, 판사로부터 소년원에 가든지 정신과 치료를 받으라는 얘기를 듣게 되는 것이었다.
조너선은 멍청하진 않지만 재능이 뛰어나지도 않은 사람, 매일 길에서 마주치는 집합적 얼굴의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대화를 이끌어가는 솜씨가 좋았다. 대화의 물꼬를 트고, 서로의 견해를 나누고, 견해의 차이를 인정하고 상대에게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전할 줄 알았다. 그래서 제인과 달리 동료들은 물론 이웃 사람들과도 잘 지내는 편이었다. 친절한 대화가 남자답지 못한 것으로 여겨지는데도 상관하지 않는 듯했다. 간혹 제인의 성공 때문에 ‘거세당한 남성’의 기분을 물어오는 질문에 난감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아내의 페미니즘과 성공을 지지했다. ‘남자들’의 전화에 제인보다 더 분노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결정적인 방식으로 아내를 배반했다. 아내의 친구와 외도를 저지른 것이다.
“분노에 차 있지만 결국 사랑에 대한 이야기.”
머리 양옆은 바짝 깎고 나머지 머리카락은 포니테일로 당겨 묶은, 미소조차 짓지 않은 이 열일곱 살짜리 소년은 누구일까? 부모의 좌익 성향과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공화당 지지 주의 타협이 재앙에 가까운 헤어스타일로 나타난 것일까? 소년은 엄청난 속도로 거의 자기만 알아듣는 언어를 말한 대가로 딴 메달을 목에 걸고 있다. 이 사진 속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무얼 느끼고 있을까? 무엇이 이 장면으로 이어졌는지부터 이야기해보자. _본문 42쪽
『토피카 스쿨』은 혐오와 분열의 시대, 발라버리고 갈라치는 말들로 가득한 작금의 상황이 어떻게, 왜 일어나게 되었는가에 대한 첨예한 보고다. 작품 속 ‘발라버리기’는 듣는 상대의 반응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방식이며 상대의 입을 다물게 하는 말하기다. 정보는 과다할수록 언어의 기능은 붕괴된다. 언어의 본래 목적인 소통을 저버린 채 오히려 불통을 유도한다. 또한 오직 이기기 위한 방편이며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논리에 따른 말하기 방식이기도 하다. 작가는 한때 미국 정치인 혹은 논객이 자주 쓰던 무기였고 트럼프 시대의 도래와 몰락을 함께했던 ‘발라버리기’가 정치, TV 광고, 온라인, 일상의 대화에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상황을 짚어내고 더불어 미국 백인-남성 정체성의 위기, 레드넥의 출현과 뉴라이트의 부상, 백래시 현상에까지 나아간다.
또한 이 작품은 가족과 사랑, 성장, 희망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애덤의 성장기는 ‘특권의 미아들’의 성장기를 대변한다. 자유주의 세대보다 더 자유로운 세대라는 그들은 민주적인 가정환경과 물질적 풍요 속에서 자랐다. 그러나 수많은 선택지 사이에서 방황하고 배가 부른 동시에 배가 고프다. 그들에게는 고통의 결핍이 고통 그 자체다. 페미니스트 어머니와 ‘남자들’의 목소리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던 아이가 어떤 어른으로 성장할 것인가, “남자애들이 다 그렇지”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잔존하는 세상에서 ‘착한 아들 키우기’는 과연 가능한가, 서로를 발라버리고 서로에게 발리는 말하기의 대안은 존재하는가, 혐오로 들끓으며 분열하는 지금 소통과 화합, 연대를 이룰 방법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에 대해 작가 벤 러너는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제시한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의 메시지를 고민하고 나누는 것이 분노로 가득찬 세계에 종말을 고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오늘날 가장 명석하고 야심차고 혁신적이며 시의적절한 작가의 가장 명석하고 야심차고 혁신적이며 시의적절한 소설”이자 “분노에 차 있지만 결국 사랑에 대한 이야기.”
책 속에서
그는 분노의 물결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끼고 그 느낌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분노가 두려움을 압도해주길 바랐으니까. _본문 14쪽
그들은 아이가 위축되어 자기 방으로,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사라지거나 미아가 되는 상황보다는 대놓고 갈등이 벌어지는 상황을 훨씬 덜 염려했다. 언어가 있는 한 진전은 있으니까. _본문 46쪽
편두통이 그토록 끔찍하게 느껴진 한 가지 이유는 애덤 자신이그 편두통을 일으켰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계속 그러면 편두통이 일어날 거야, 애덤은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 자주 자신에게 경고했다. 두통의 원인이 스트레스라면 모든 강렬한 생각과 잘못된 욕망, 현실의 갈등과 상상 속 갈등이 통증의 형태로 돌아올 터였다. 자신을 진짜 남자로 보이게 해야 한다는 부담, 진짜 남자의 유형에 충실한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는 중압감이—지속적인 웨이트트레이닝과 말로 하는 결투가—결국은 그를 다시 침대에서 엄마를 소리쳐 부르는 어린애로 전락시키고 말 것이다. _본문 48쪽
멀쩡하지 않게 될 때까지 멀쩡하게 지냈던, 안정적인 가정의 인텔리 중산층 백인 아이들. 특권의 미아들. _본문 84쪽
그애들에게는 냉장고 가득 음식이 있고 에어컨과 TV도 있었다. 또한 낙인이나 국가적 폭력으로부터도 자유로웠다. 그 아이들이 고통의 정체를 모른다는 점보다 명백한 사실이 있을까? 그들에게 뭐든 고통이 있다면 그건 바로 고통의 결핍이었다. 너무 편해서, 너무 설탕을 많이 먹어서 생긴 일종의 신경장애, 존재론적 통풍. _본문 91쪽
사실 그 아이들은 속 빈 강정이었다. 고립되고 알맹이 없이 부피만 있는 남자들. 그 아이들이 남자가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그애들은 소년이었다. 영원한 소년, 피터 팬, 남자-아이. _본문 92쪽
한마디로 그들은 너무 배가 불렀다. 한마디로 그들은 배가 고팠다. _본문 92쪽
불신의 심연은, 그 진공 상태는 잡동사니로 채워질 수 없고 폭력은 주기적으로 발생할 거야. _본문 92쪽
“진실의 반대는 거짓이지. 하지만 근본적인 진실의 반대는 다른 형태의 근본적인 진실일 수 있어.” _본문 93쪽
엄마는 터무니없이 성차별주의적인 개소리를 견뎌야만 했어. 한번은 직원회의에서 남녀 임금격차 문제를 제기했는데, 그날 오후 캐플런의 소파에 누웠을 때 그 사람이 나더러 남자보다 돈을 덜 받는다는 사실에 대한 걱정이 남근선망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생각해보라고 부추기더라. 자기한테는 “남근을 갖기 위한 노력”의 증거가 보인다는 거야. 한번은 다른 선임 분석가한테 어째서 박사후 과정에 있는 남자들은 “박사님”이라고 부르면서 여자들은 이름으로 부르느냐고 물어봤어. 그랬더니 다시 그 소파에 누워서 남근선망에 관한 강의를 듣게 됐지. 남근선망이라는 진단에 반대하는 것이 남근선망의 명백한 징후가 되더구나. _본문 120쪽
모든 종류의 명성은 탄생이나 죽음이 그렇듯 모든 관계를 바꿔놓는단다. _본문 140쪽
네 아빠는 아빠가 가족을 지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등의 불안을 네가 느끼는 건 아닌지, 네 아빠의 온화한 성품을 우리 주변의 ‘말버러 남성’ 문화와 대조하기 시작한 건 아닌지 걱정했어. 이런 대조는 내가 우리집 가장이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더 심해졌단다. 나는 유명해졌고 사람들은 네 아빠에게 이런 상황을 어떻게 느끼는지 늘 물어보곤 했어. 이런 상황이 남성성을 약화할 게 뻔하다는 듯이, 아빠에게는 상실이라는 듯이. 나는 네가 내 책과 책에 대한 관심으로 일어나는 일들이 불안정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큰 변화를 야기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생각해. _본문 143쪽
사람들은 어떤 사람에 대해서 “유명해지더니 달라졌다”고 말해. 아니면 달라지지 않았다며 칭찬하지. 하지만 이런 진술의 문제는 모든 종류의 명성과 악명이 그 사람 주변의 모든 것을, 그 사람이 자리잡고 있던 모든 관계를 바꿔놓는다는 데 있어. 그 사람이 무슨 짓을 하든 말이지. _본문 154쪽
그가 시인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시가 주문이기 때문이었다. 폭력을 행사하고 물리치는 주문. 시는 신체를 재우거나 깨울 수 있었고, 눈물이나 다른 형태의 윤활유를 야기하고 몸을 부풀게 하고 잔털이 곤두서게 할 수 있었다. _본문 192쪽
애덤은 이런 상황을 생각했어야 했다. 엄마가 유명인이라는 사실이 남성성을 높여줄까, 아니면 떨어뜨릴까? 본문 201쪽
<프렌즈>에는 레즈비언 결혼식이 나왔으며 <베벌리힐스90210>에서는 수전이 애매하게나마 자신의 낙태 경험을 이야기했다. 베이비붐 세대는 그 부모 세대보다 자유주의적이었고, 애덤의 세대는 조현병적 양상을 보이긴 해도 그들보다 더 자유주의적이라고들 했다. _본문 215쪽
엄마는 늘 오프라 윈프리가 당선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아주 다양한 집단의 사람들에게 누군가 귀기울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해주었다고, 훌륭한 심리치료사처럼 수치심을 주지 않고도 양극화를 극복해냈다고 했다. _본문 216쪽
나는 사람들이 읽는 동작을 취하거나 독서의 정적인 특성을 흉내낼 뿐이라는 의심을 종종 하곤 했다. 대학원 시절 도서관을 거닐 때마다 사람들을 보며 책을 덮고 방금 읽은 게 뭐냐고 물으면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거라고 혼자 생각하곤 했다. 섀도리딩이라고나 할까. 나 자신도 뭔가를 읽을 때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지켜본다는 사실을, 내 몰입 연기를 예민하게 의식했다. _본문 242쪽
도시의 양극성, 한순간 풍성히 반짝이다가 다음 순간 심연이 되는. 그 오만함과 엄숙한 경멸. _본문 269쪽
안에 홀로 남겨진 트라우마는 영구적인 것이 된다. 기차에 탄, 우주 바깥에, 시간 바깥에 있는 아이. _본문 333쪽
본래 의미의 그림자에서 대안적 의미의 희미한 불꽃이 튀었다. 바로 서사였다. 그 힘은 실제적이면서도 무척 약했다. 멀찍한 신호였다. _본문 369쪽
시인으로서, 페미니스트의 원형으로서, 그 유형들의 대안인 예비 아이비리그 대학생으로서 가진 좋은 차이점을 내세우되 그 과정에서 남성성을 잃지 않는 방식으로 상호작용할 방법은 무엇일까? _본문 377쪽
왠지 다른 남자들을 무장해제하는 목소리, 마초의 대본에 따르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는 걸 허용해주는 목소리. _본문 397쪽
이 책에 쏟아진 찬사
소설의 미래. 샐리 루니(소설가)
오늘날 가장 명석하고 야심차고 혁신적이며 시의적절한 작가의 가장 명석하고 야심차고 혁신적이며 시의적절한 소설. 매기 넬슨(소설가)
가슴 뭉클한 걸작. 맥스 포터(소설가)
벤 러너는 소설을 진정 새로운 것으로 만들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레이철 쿠시너(소설가)
용감하고 분노에 차 있지만 결국 사랑에 대한 이야기. 오션 브엉(시인, 소설가)
21세기의 『소리와 분노』. 스타 트리뷴
현대 미국소설의 정점. 뉴욕 타임스 북 리뷰
벤 러너는 오늘날 미국의 가장 유망한 소설가다. 텔레그래프(UK)
오늘날 미국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파악하고 포착하며 질문하는 소설. 론 찰스(비평가)
지은이 벤 러너 Ben Lerner
1979년 미국 캔자스주 토피카 출생. 브라운대학교에서 정치학 학사, 문예창작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11년 『아토차 스테이션을 떠나며』로 데뷔했고, 2014년 『10:04』을 발표했다. 『토피카 스쿨』은 2019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뉴욕 타임스>가 선정한 ‘올해의 책’에 이름을 올렸고 로스앤젤레스 북 어워드(소설 부문)를 수상했으며 2020년 퓰리처상 최종후보에 선정되었다. 풀브라이트 장학금, 구겐하임펠로십, 맥아더펠로십을 수혜했으며, 미국 문학계와 독자의 호평 속에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나가고 있다.
옮긴이 강동혁
서울대학교 영문학과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영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 『올드 스쿨』 『이 소년의 삶』 『그후의 삶』 『밤의 동물원』 『일곱 건의 살인에 대한 간략한 역사 1, 2』 『워터 댄서』 『아이 앰 필그림 1, 2』 『우리가 묻어버린 것들』 『타인의 외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