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오해와 단단히 꼬인 실타래.
선택은 매번 어렵고, 복잡한 마음은 누구에게도 보이기 싫다.
잔뜩 부푼 풍선껌처럼 아슬아슬한, 열세 살 동희의 오늘.
어제저녁 하연이에게서 온 문자 하나가 동희의 심장을 들었다 놓았다. 이제 석 달만 있으면 겨울방학인데, 졸업하면 중학교는 다른 동네로 갈 예정인데, 딱 그동안만 아무도 모른 채 지나갔으면 했는데. 그 마음이 그렇게 나쁜 것이었을까, 열세 살 동희는 생각한다.
어김없이 아침은 오고 알람은 울리기 시작했다. 어찌됐건 이제 집을 나서야 한다. 1학년인 동생 동구를 데리고, 버스를 갈아타며 한 시간 넘게 가야 하는 등굣길. 오늘따라 교문이 커다란 입을 벌리고 있는 것 같다. 이제, 가방 끈을 단단히 잡고 그 앞에 선 동희의 오늘이 시작된다.
함께 웃고 떠들며 같은 반지를 나눠 낀다는 것,
그 누구도 나를 혼자 서 있는 아이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 좋았는데.
눈 깜짝할 사이 금 밖으로 밀려나 버렸다.
동희의 엄마와 아빠는 함께 횟집을 운영한다. 아빠는 새벽부터 바다에 나가 거둬 온 것들을 정리하고 가게 문을 연다. 엄마는 이어서 야무진 손으로 횟감을 손질하고 손님을 모은다. 뭐든 정확하고 최선을 다하는 엄마는 동희와 동구에게 언제나 살뜰하다. 여덟 살 동구의 요즘 가장 큰 관심사는 풍선껌 불기이다. 아무리 연습해도 마지막 단계에서 실패한다며 울상이다.
동희와 동구가 다니던 학교가 폐교된 후에 다른 아이들은 모두 옆 마을 학교로 옮겼지만 동희는 멀리 읍내에 있는 학교로 전학을 했다. 쉽지 않은 선택인 걸 알지만 동희는 아는 사람 없는 곳에서 생활해 보고 싶었다. 이 학교로 전학 온 후 동희는 하연이와 가까워지며 이어서 유미, 선영이, 홍아와도 친해졌다. 그런데 어제, 하연이와 둘이서만 나누었던 비밀 이야기를 다른 아이들이 알게 되었다. 갑자기 냉랭한 아이들 앞에서 동희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비밀을 알고 있는 건 하연이뿐인데, 혹시? 근거 없는 의심까지 떠오르니 동희는 스스로가 비겁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오늘은 영어 말하기 대회가 있는 날이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필리핀에서 온 엄마 덕분에 평소에 영어에 자신 있던 동희는 이번 대회에서 꼭 1등을 하고 싶었다. 밋밋하던 연설문에 엄마의 아이디어를 더해 멋지게 완성했던 그날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 마당에, 필리핀의 전설적인 복서 이야기로 시작하는 연설문을 어떻게 발표할 수 있을까. 마이크 앞에 선 동희의 머릿속은 엉망이 되고, 당장이라도 엄마 품에 안겨 엉엉 울고 싶은 마음뿐.
“눈을 감으면 안 돼. 상대를 봐야지.”
흔들리는 샌드백을 따라, 리듬을 타는 연습
작가 임은하는 촘촘하게 진행되는 하루의 타임라인을 바투 쫓으며 열세 살 동희의 심리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어쩌면 어제나 내일과 다를 것 없을 수도 있는 하루이지만, 작가가 성실한 문장으로 인물의 뒤를 묵묵히 따라 밟으며 보여 주는 이야기는 독자를 편안한 방식으로 끌어당긴다. 사건이 진행되면서 드러나는 친구들과 동희의 진짜 속마음, 엉뚱한 계기로 드러나는 사실, 동생 동구를 잃어버리는 뜻밖의 상황을 함께 지켜보며 독자는 진실한 우정과 가족의 모습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가장 마지막에 남는 것은 결국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고자 하는 한 아이의 욕망과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에게 다가오는 매 순간을 성실하게 겪어 나가는 한 아이의 책임감일 것이다. 『동희의 오늘』은 하루라는 무대 위의 여러 등장인물들이 차곡차곡 완성해 가는 하나의 세계를 통과해, 결국 커다란 사랑이 동희와 하루를 감싸는 장면에 모두 함께 도달하게 되는 작품이다. 작가는 이 동화를 통해 인생이라는 각자의 작품 안에서, 매일 스텝을 밟으며 연습하는 세상의 모든 동희, 동구, 하연이와 아이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쌔근쌔근 동구의 숨소리, 아주 가끔 맥스가 짖는 소리,
익숙한 그 소리들이 내 귀에 속삭인다. 오늘도 수고했어, 김동희!
그림을 그린 임나운 화가는 그동안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들』 『산산죽죽』 등의 작품을 통해 독특한 감성을 보여 주었다. 만화를 기반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임나운 화가의 그림은 『동희의 오늘』 속 시간의 흐름과 다정한 감정을 완벽하게 시각화해 주었다. 필름이 돌아가듯 차르르 흐르는 프레임 속 선명한 캐릭터와 감정, 과감한 줌인과 플래시백 등으로 이야기를 더욱 입체감 있게 조명한다.
“동희의 하루를 따라가며 작업을 하다 보니 마치 동희의 언니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롤러코스터 같은 하루를 겪으면서 스스로 단단해지는 동희를 꼭 안아 주고 싶었답니다!”
작업 말미에 밝혀 준 화가의 소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