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맨날 기다리기만 하고!
우리 맘은 하나도 몰라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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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순이는 개다. 놀이터에 가만히 앉아 언니를 기다린다.
언니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금순이, 기다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날이 깜깜해져도 언니는 오지 않고 웬 할머니가 불쑥 나타나 알쏭달쏭한 말을 하고 떠난다.
“내일 해가 뜨면 너의 몸이 사람으로 바뀔 거야. 단 하루 동안만이다.”
다음 날, 할머니의 실수로 꼬리는 남고 말았지만 누가 봐도 틀림없이 사람이 된 금순이.
하지만 금순이에게 일어난 진짜 마법은 이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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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는 몰랐다. 금순이의 정체를. 어제까지 개였단 사실을.
사랑이가 금순이를 발견한 건 바로 오늘, 어린이날이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인데도 엄마 아빠는 가게일로 바빴고 사랑인 또 혼자였다.
터덜터덜 놀이터를 지나던 그때, 사랑이 눈에 번쩍 띈 건 맨손으로 땅을 파는 금순이의 멋진 모습!
그런데 함께 놀다 보니 어딘가 좀 수상쩍었다.
자기 나이도 잘 모르고 냄새를 맡고 다니고 개들과 썩 말이 통하고.
아무래도 괜찮다. 같이 있으면 좋으니까. 마음을 알아주니까.
“내가 항상 옆에 있을게! 언니 찾을 때까지 우리 집에서 같이 지내자!”
혼자 기다리는 건 쓸쓸하지만 함께 기다리는 건 꽤 든든하니까.
함께 사는 인간 언니가 “기다려!” 하면 꼼짝없이 기다리기만 했던 금순이와 가게일로 바쁜 엄마 아빠를 매일 기다리는 게 일상인 사랑이. 누군가를, 무언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을 알기 때문일까? 재밌는 놀이를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일까? 놀이터에서 우연히 마주친 둘은 자석처럼 몸과 마음이 찰싹 붙는다. 함께 밥을 먹고, 모래 놀이, 미용실 놀이, 공놀이를 하며 온몸으로 어린이날을 아낌없이 누린다. 친구란 함께 있으면 그늘도 햇볕 바른 곳,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도 설레는 것, 터무니없는 일도 단박에 믿게 되는 것, 모름지기 친구가 기다리는 걸 함께 기다려 주는 것. 금순이와 사랑이는 서로를 통해 미처 몰랐던 세계를 하나하나 알아 나간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금순이네 언니는 금순이를 데리러 오지 않는다. 사랑이는 한참을 기다려도 엄마 아빠가 오지 않는다면 어떨까, 생각하며 금순이에게 약속한다.
“내가 항상 옆에 있을게. 언니 찾을 때까지 우리 집에서 같이 지내자.”
혼자 기다리는 건 쓸쓸하지만 함께 기다리는 건 든든하니까.
진짜 끝내주는 마법은 서로가 서로에게 곁이 되어 주는 것
마음을 말랑말랑 녹여 주는 보드랍고 따듯한 동화
2021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인 『금순이가 기다립니다』는 사계 김장생 신인문학상과 불교신문 신춘문예에 동화로 당선되었던 윤성은 작가의 첫 책이다. 『금순이가 기다립니다』는 제22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공모전 본심에 올랐던 작품으로 “일터에 나간 부모님을 혼자 기다리는 아이와 자신을 버리고 떠난 인간 가족을 기다리는 개 금순이가 진정한 친구가 되는 과정을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그려 냈다.” “개의 입장에서 인간 또한 반려종이라는 귀한 인식을 전해 준다. 서로가 서로에게 반려종이라는 인식은 타자에 대한 배려로 확대되어 결국 우리들 삶을 평화롭게 이끄는 힘이 있다.”는 평을 받았다.
작가는 동물을 소유물이 아닌 감정이 있는 생명체로 봐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혼자 남겨진 개를 어린이날 혼자 놀고 있는 아이와 만나게 해 주었다. 그래서 금순이는 꼬리가 사라지지 않았어도 개였을 때의 한 부분이 남은 것에 오히려 기뻐하고, 개일 때의 본성대로 밥을 먹고 냄새를 맡고 공놀이를 해서 사랑이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한다. 가장 빛나는 장면 중 하나는 낯선 개를 덥석 만지고 싶어 하는 사랑이에게 금순이가 조언을 들려주는 장면이다.
아주머니가 사랑이를 보다 말했어요.
“만지고 싶어? 그럼 살살 만져 봐.”
사랑이가 벌떡 일어나 은동이에게 손을 뻗었어요. 은동이가 움츠리며 꼬리를 안으로 말았어요.
금순이가 말했어요.
“은동이가 사랑이 무섭대.”
사랑이는 곧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어요. 아주머니가 다급히 말했어요.
“너한테만 그러는 거 아니야. 은동이는 낯선 사람을 무서워해.”
“먼저 만져도 되는지 물어봐.”
금순이 말에 사랑이가 소리쳤어요.
“아줌마가 만져 보라고 했단 말이야!”
금순이가 눈썹을 들썩했어요.
“그게 아니고……, 은동이한테 물어봐.”
_본문 중에서
우리의 시야로 들어오기 어려운 부분을 짚어 낸 작가의 시선은 이 책의 독자가 저학년 어린이이기에 더욱 믿음직스럽다. 작가는 개가 사람이 되어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는 것, 관계를 맺을 때 필요한 것은 ‘존중’, 때론 뒤집어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자연스레 들려준다.
친구가 되는 것도 가족이 되는 것도 기다림이 필요해.
서로의 빈곳을 채워 주고, 놀이로 세상을 탐험하고, 함께 기다리는 시간을 통해 금순이와 사랑이는 속마음을 나누고 비밀이 없으면 비밀을 만들어서라도 나누고 싶은 친구 사이로 발전한다. 무엇보다 꾹꾹 눌러 왔던 사랑이의 진짜 마음을 엄마 아빠가 알아주고, 금순이와 사랑이네가 한 가족이 되어 서로에게 익숙해지길 기다리는 마지막 장면은 안도할 수 있는 결말이면서 동시에 낯선 서로에게 다가가기 위해선 시간도 필요하다는 걸 넌지시 일러 주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것이야말로 이 동화를 감싼 진정한 마법이 아닐까.
묵직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사랑스러운 캐릭터들과 개가 사람으로 있을 수 있는 단 하루의 시간제한, 요소요소 불거지는 엉뚱한 재미가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하다. 겉으로 씩씩해 보여도 진짜 마음은 다를 수 있다는 걸 알아채 주길 바라는 아이들을 깊이 공감해 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서두르지 않고 한 장면 한 장면 쌓아 올리며, 재미와 감동 그 어떤 것도 놓치지 않은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기다림의 연속에 살고 있습니다. 어린이의 기다림도 개의 기다림도 슬프지 않고 행복하기를 바랍니다._윤성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