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최신작
짙게 드리운 운명과 역사의 그림자 속에서
일하고 사랑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 평범한 삶들
그 잊힌 기억과 지워진 세계를 되살린 경이로운 역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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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최신작 『그후의 삶』이 출간되었다. 1948년 잔지바르에서 태어나 이슬람계 아프리카인에 대한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이주한 작가는 1987년 데뷔작인 『떠남의 기억』을 출간한 이래 총 10편의 장편소설을 발표하면서 망명, 정체성, 소속감이라는 주제를 꾸준히 탐구해왔다. 고향과 가족으로부터, 그리고 어쩌면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 떠나간 이들이 정체성에 대한 고민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하고 세상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날카로우면서도 애정어린 시선으로 그리는 작가의 탁월한 재능은 2020년 발표한 최신작 『그후의 삶』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이전의 삶에서 떠나고 도망쳤던 이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이후의 이야기를 그린 이 소설에서 작가는 전쟁과 점령의 여파를 겪어나가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고요한 아름다움을 담아 써내려간다. “사랑의 황홀한 특성을 이토록 압축적으로 담아낸 책을 읽는 것은 평생 매우 드문 일이다”(<타임스>)라는 극찬을 들은 이 작품은 이듬해 오웰상 최종후보와 월터스콧상 후보에 올랐다.
“그 한가운데 혼란과 폐허가 있다 해도
세상은 늘 움직인다.”
탕가니카의 작은 해안 마을. 동아프리카 각지에서 유럽 열강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고, 독일군의 점령에 저항하는 봉기가 일어나고 또 스러지는 가운데 이름 없는 이 작은 마을의 사람들은 하루하루 일상을 살아나간다. 어린 시절 가난한 집에서 가출해 군대에 납치되었던 일리아스는 운좋게 구출되어, 독일인이 운영하는 커피농장에서 자라면서 독일어를 배우고 교육받는다. 성인이 된 일리아스는 고향 근처 해안 마을로 돌아온 뒤 상인의 직원으로 일하는 칼리파와 친구가 되고, 잃어버렸던 여동생 아피야를 찾아 함께 살면서 마을에 정착한다. 아피야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떠난 뒤 홀로 이웃에게 맡겨져 온갖 궂은일을 하며 살아가다, 오빠 일리아스를 만난 뒤 비로소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일 년 후 독일과 영국 사이의 전쟁이 일어나자 일리아스는 어린 동생을 남겨둔 채 독일군에 자발적으로 입대하며 마을을 떠난다. 아피야는 전에 살던 이웃의 집으로 다시 보내져 전보다 더 심하게 학대를 당하다, 오빠의 친구 칼리파의 도움으로 그 집에서 나와 칼리파 부부와 함께 살게 된다.
한편, 함자는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은 이전의 삶에서 도망쳐 충동적으로 독일군에 입대한다. 하지만 폭력에 익숙하고 오직 힘과 거친 성질만을 높이 평가하는 남자들 사이에서 함자는 두렵고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고 방향을 잃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독일인 장교가 그런 함자를 눈여겨보다가 자신의 당번병으로 지목하고, 함자는 그에게서 독일어를 배우는 한편 장교에게 편애를 받는다는 이유로 조롱과 멸시를 당하기도 한다. 그러던 중 전쟁 막바지에 함자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게 되고, 함자를 아끼던 장교 덕에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다. 이제 함자는 약해진 몸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채로 어린 시절을 보낸 해안 마을로 돌아오고, 마을 목공소에서 일자리를 구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기치 못한 운명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과거의 기억을 보존하고 잊지 않으려는
거장의 공감어린 시선
『그후의 삶』의 이야기는 1907년경, 독일이 탄자니아를 포함한 동아프리카 일대를 식민 지배하며 ‘독일령 동아프리카’에서 일어난 저항과 반란을 진압한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을 때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독일 사령부가 “마을을 불태우고 들판을 짓밟고 식량 저장고를 약탈”한 것은 물론 “초토화되고 공포에 질린 풍경을 배경으로, 길가의 교수대에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시신이 매달”리는 일이 여기저기서 일어난다. 독일군 부대인 ‘슈츠트루페’와 그들 못지않게 사납고 무자비한 아프리카인 용병 ‘아스카리’들은 모든 피지배인을 야만인으로 간주해 가혹하고 잔인하게 짓밟는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해안 마을 사람들은 전쟁과 반란이라는 참혹함에서 조금 비켜나 비교적 평온한 일상을 살아가지만, 그들도 식민주의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길에서 납치되어 군대에 강제로 끌려가기도 하고, 독일과 영국의 전쟁으로 항구가 봉쇄되어 하룻밤 사이에 극심한 물자 부족을 겪기도 한다. 독일식 미션스쿨에서 교육받아 독일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일리아스가 “독일인은 명예롭고 교양 있는 사람들이고, 여기에 와서 좋은 일을 많이 했다”고 독일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자 한 마을 사람은 “친구, 놈들이 자네를 먹어치웠군” 하며 이렇게 반박한다.
“잘 들어, 독일인 남자 한 명이 자네한테 친절하게 대해줬다고 지난 세월 동안 여기에서 일어난 일이 바뀌는 건 아니야.” 마흐무두라는 다른 남자가 일리아스에게 말했다. “이 땅을 차지한 삼십 년 넘는 세월 동안 독일인은 이 나라 전체에 해골과 뼈가 흩뿌려지고 땅이 피로 젖을 만큼 많은 사람을 죽였어. 과장하는 게 아니야.” _본문에서
대륙 전체가 유럽인의 손에 넘어가 원래의 이름을 잃고 ‘영국령 동아프리카, 독일령 동아프리카, 포르투갈령 동아프리카, 벨기에령 콩고’ 등으로 불리고, 그 속에서 누군가는 저항하다 죽어가고 또 누군가는 자발적으로 식민지 본국에 부역하는 것은, 일본 식민 지배의 역사를 경험한 한국 독자로서는 너무도 익숙하고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승자의 관점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을 잊지 않으려는 탄자니아 출신 작가의 시선에서 쓰였기에, 소설의 한 문장 한 문장에 더욱 마음 깊이 동감하게 된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어린 시절을 보낸 도시의 거리를 걸으면서 나는 사물이, 건물이, 사람이 겪은 수모를 보았습니다.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이가 빠진 사람들이 행여 과거의 기억을 잊을까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기억을 보존하고, 거기에 존재하는 것에 대해 쓰고, 사람들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 순간들과 이야기들을 복원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습니다. 우리의 지배자들이 자축하며 우리의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려 했던 폭력과 잔혹성을 써내야만 했습니다.
_노벨문학상 수상 연설 중에서
전쟁과 식민주의 그 이후를 살아가는
평범한 삶들의 특별함
구르나는 『그후의 삶』에서 다른 무엇보다도 기록되지 않은 채 잊힌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아무도 굳이 수를 헤아려보지 않은 죽은 병사들과 짐꾼들, 그저 전쟁중에 벌어진 무작위한 불운에 휘말린 사람들, 그리고 커다란 역사의 격류 속에서도 일하고 또 사랑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과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소중한 가족, 공동체의 이야기가 함자와 아피야, 그리고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칼리파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함자는 이전의 삶에서 도망치며 인생을 되돌릴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만, 결국 몸이 반쯤 망가진 채 빈손으로 원래 있던 곳에 돌아오게 되고, 자신의 처지에 무력함을 느끼며 세상에서 자기 자리를 잃었다고 생각한다. 아피야의 눈에 그런 함자는 “대롱대롱 매달린 사람, 뿌리 뽑힌 사람, 헐렁헐렁 떨어지기 쉬운 사람”으로 보인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아피야는 축복처럼 찾아왔던 오빠마저 삶에서 떠나버린 후 집안에 갇힌 삶에서 오는 좌절감을 견뎌내기 위해 애쓰는 한편 나이를 먹어가며 여성의 격리된 삶에서 따라오는 무한한 분노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칼리파는 두 사람 모두에게 살 곳을 내주고 일종의 가족이 되어주기를 자처하면서, 커다란 역사의 격류 속에서도 애정이 깃든 공간들을 계속 그 자리에 존재하게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렇듯 기록으로 남겨지지 않은 이들의 삶, 지금껏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잊혔던 평범한 삶들에 주목하면서 작가는 식민주의와 전쟁이 이들에게 어떤 상흔을 남겼는지 이야기한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상처를 얻고 트라우마를 겪은 이들이 어떻게 살아남아 자신들의 삶을 되찾았는지, 어떻게 그 모든 일을 통과하면서 자기 자신을, 또 사랑과 신뢰를 잃지 않았는지를 날카로우면서도 공감어린 시선으로 들여다본 것이다. 타협하지 않는 단호함과 깊은 연민이 깃든 마음으로 써내려간 이 특별한 소설은, 우리가 잊히고 지워진 이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지에 대한 지침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식민 지배의 역사를 경험한 아프리카계로서, 떠나온 삶을 절박하게 기억한 망명자로서, 다른 무엇보다 인간의 삶에 대해, 잔혹성과 사랑과 나약함에 대해 진실되게 써야만 한다고 믿는 작가로서 압둘라자크 구르나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인 것이다.
▶ 추천사
잊힐 운명에 처했으나 지워지기를 거부한 모든 이를 한자리에 모은 강렬한 소설. 가디언
사랑의 황홀한 특성을 이토록 압축적으로 담아낸 책을 읽는 것은 평생 매우 드문 일이다. 『그후의 삶』을 읽는 동안에는 행여 이 매혹적인 마법이 깨질까 두려워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다. 타임스
예상치 못한 전개가 이어지는 이 작품 속에서, 지워진 세계가 매혹적으로 되살아난다. 선데이 타임스
고요한 아름다움과 비극을 담은 『그후의 삶』의 첫 페이지를 읽을 때부터, 스토리텔링 거장의 손안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파이낸셜 타임스
평범한 삶들의 특별함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그린 작품. 이야기는 넋을 잃을 정도로 매혹적이고, 더없이 정교하게 감정적 정밀함을 담아낸 글쓰기는 현대 영문학의 뛰어난 스타일리스트로서 구르나의 자리를 공고히 한다. 유머, 너그러운 마음, 인간 본성에 무한히 존재하는 모순을 바라보는 통찰력 있는 시선을 갖춘 이 작품은 전작들과 마찬가지고 읽고 또 읽어야 마땅하다. 이브닝 스탠더드
신중하고 깔끔한 문장으로 개개인의 폭력과 예상치 못한 친절함을 가까이 들여다본다. 일상적인 삶이 위협을 받는 상황 속에서 안식처를 찾고자 하는 욕구에 대한 흥미로운 탐구. 데일리 텔레그래프
관대하면서도 탐욕스럽고, 하찮으면서도 고결한 인간의 모습을 전부 보여주는 강렬하고 생생한 소설. 비중이 적은 등장인물들까지도 각자 소설 전체를 이끌어갈 수 있을 정도로 풍부하게 그려졌다. 헤럴드
경이로운 작가의 놀라운 소설. 저변 깊숙이 파고드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우리의 인간성과 식민지 유산을 연결짓는다. 필립 샌즈(작가)
가상의 삶들과 역사가 충돌하는 『그후의 삶』을 읽다보면 스토리텔링의 즐거움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문장은 인도양의 물처럼 명료하고 리드미컬하며, 함자와 아피야의 이야기는 식민지시대의 야심에 뒤흔들리는 소박한 삶을, 인내하고 존엄성을 지키고 마음속에 희망을 품은 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용기를 그려낸다. 아미나타 포르나(소설가)
작품 하나하나에서 구르나는 우리를 커다란 역사적 순간들과 파괴적인 사회적 분열 속으로 이끌면서, 가족과 우정과 애정이 깃든 공간들을 비록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그대로 존재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서서히 드러내 보여준다. 마자 멩기스테(소설가)
살아 있는 가장 훌륭한 아프리카 작가. 자일스 포든(소설가)
식민주의의 영향과 대륙 간 문화 간 격차 속에서 난민이 처한 운명을 타협 없이, 연민어린 시선으로 통찰했다.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
압둘라자크 구르나는 진실에 전념하고 단순화를 극도로 배제한다는 점에서 두드러진다. 이로 인해 작가는 타협하지 않는 단호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굽히지 않는 헌신과 깊은 연민이 깃든 마음으로 등장인물 개개인의 운명을 전개해나간다. 그의 소설은 정형화된 서술에서 벗어나, 문화적 다양성을 갖춘 동아프리카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넓혀준다.
스웨덴 한림원
▶ 본문에서
군대는 시골로 행군해 들어갔고, 열기가 오르며 태양이 목과 어깨를 옥죄고 얼굴에서 땀이 쏟아져 등으로 흘러내리자 함자는 다시 불안해졌다. 그는 충동적으로 자원했다.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은 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 하지만 그는 자신이 어디에 몸을 판 것인지, 이곳의 요구에 따를 준비가 되어 있는지 몰랐다. 함께 지내기로 한 사람들이 어떤 자들인지 몰랐던 것은 아니다. 아스카리 군대인 슈츠트루페에 대해서, 또한 그들이 보이는 사나움에 관해서는 모두가 알았다. 그들을 이끄는, 마음이 돌덩이 같은 독일 장교들에 대해 모두가 알았다. 함자는 도망치기 위해 그들의 병사가 되기로 했다. 달아오른 한낮에 지쳐서 땀을 흘리며 흙길을 나아가는 동안, 함자는 자신이 저지른 짓 때문에 불안감이 너무도 강렬하게 치솟아 간혹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84쪽
당시 이 세계의 그 지역은 그런 이름으로 불렸다. 세상의 이 지역은 전부 유럽인의 것이었다. 최소한 지도에서는 그랬다. 영국령 동아프리카, 독일령 동아프리카, 포르투갈령 동아프리카, 벨기에령 콩고. 136쪽
전투와 질병, 탈영으로 병사와 짐꾼들을 잃기는 했지만, 슈츠트루페의 장교들은 광기어린 고집과 끈기로 계속 싸웠다. 아스카리는 땅을 황폐하게 했고,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을 수십만 명씩 굶겨 죽였다. 그러면서 자신들로서는 기원조차 알 수 없는 공허한 야망이자 결국 그들을 지배할 목적이었던 명분을 맹목적으로, 살인적으로 끌어안고 계속 분투했다. 짐꾼들은 말라리아와 이질, 탈진으로 여럿씩 죽어나갔다. 아무도 굳이 그 사람들의 숫자를 세지 않았다. 142쪽
이제 아피야는 더이상 소녀가 아니라 키자나, 아가씨였다. 그녀는 여성의 격리된 삶에 따라오는 무한한 분노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 아피야는 마음속에서 뭔가가 쪼그라드는 느낌이 들었다. 계속 꾸지람을 당하기만 기다리는 것처럼 불안해졌다. 이제는 부적절한 일, 그녀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아졌다. 아피야는 인사를 할 때조차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남자의 손을 건드려서는 안 되었다. 상대가 먼저 말을 걸어올 때, 그리고 그 사람이 아는 사람일 때를 제외하면 남자와 말을 해서는 안 되었다. 모르는 사람을 보고 미소 지어서도 안 됐고, 우연히 시선이 마주치지 않도록 눈을 살짝 내리깔고 걸어야 했다. 156~157쪽
함자는 열린 창문 너머로 무화과나무 일부와 선교사의 집 일부를 볼 수 있었다. 대부분의 아침에는 작은 연녹색 왜가리가 꼼짝도 하지 않고 지붕 위에 오랫동안 서 있다가, 함자로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떠나는 모습이 보였다. 왜 그런지는 몰랐지만 꼼짝도 하지 않고 지붕에 서 있는 왜가리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슬픔으로 가득찼다. 너무도 외로워졌다.
188쪽
그는 어둠 속에, 맨바닥에 오랫동안 누워 있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마음이 이 마을에서 보낸 인생 초기와 지금까지 잃은 모든 사람들, 그가 겪어온 치욕을 떠돌아다녔다. 함자는 자기 몫의 치욕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가 인생 초기에 이 마을에서 살며 저지른 최악의 실수는 치욕을 두려워한 결과로 생겨난 것이었다. 그 실수로 함자는 형제와도 같았던 친구와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던 여자를 잃었다. 전쟁은 함자에게서 그런 것들을 샅샅이 앗아갔고, 그에게 아찔한 잔혹성을 보여주며 겸손을 가르쳐주었다. 이런 생각이 함자를 슬픔으로 가득 채웠다. 함자는 그 슬픔이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236~237쪽
짧은 순간, 함자는 얼굴과 눈에 정직함이라는 깨끗한 모습이 어려 있는 자그마한 사람을 보았다. 달리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지만, 자신이 본 모습이 바로 정직함임을 알았다. 그 눈빛을 보자 함자는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스스로가 안쓰럽게 느껴졌고, 사랑 없는 그 자신의 인생 몇 년과 그 사이사이에 경험했던 너무도 짧은 온화한 순간들이 슬프게 느껴졌다. 254쪽
행운은 절대 영원하지 않아. 좋은 순간이 얼마나 오래갈지, 또 언제 올지 항상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니야. 인생은 후회로 가득해. 자네는 좋은 순간들을 인정하고 그에 감사하며 확신을 가지고 행동해야 하네. 운을 시험해봐. 310~31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