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본 작품에서 주목할 점은 다니구치 작가가 지금까지 그려온 방식과 달리
흐린 먹과 연필, 화이트를 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다니구치 작가의 과거 작품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통틀어도
유사한 것을 찾을 수 없는, 독특하고도 아름다운 세계를 그려냈다.
_「현혹하는 것 제1편 불꽃놀이」에 대하여 중에서
■ 미발표 원고와 일러스트 노트를 최초로 공개한 유고 작품집
2017년 2월, 만화 독자들을 슬프게 한 소식이 있었다.
다양한 작품으로 대체 불가한 만화를 선보였던 거장 다니구치 지로가 별세했다는 소식은 죽음 자체도 안타까웠지만, 더이상 그의 만화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난 그해의 끝자락에 『현혹하는 것(いざなうもの)』이 출간되었다.
이 책에는 총 4편의 작품이 수록되었는데 3편은 작가가 생전에 잡지에 연재했던 단편 만화로, 단행본에 수록한 것은 처음이다. 표제작이자 마지막 수록작 「현혹하는 것」은 일본의 소설가 우치다 햣켄의 『명도(冥途)』라는 작품집에 수록된 「불꽃놀이」를 만화화한 작품. 죽기 전까지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던 작가의 마지막이 된 이 원고는 미완성인 점이 아쉽지만, 콘티에 담긴 연필 스케치와 자필로 쓴 대사는 세상에 하나뿐이기에 더욱 귀중하다. 「현혹하는 것」을 읽고 있으면 원고에서 뿜어져 나오는 작가의 혼신의 힘이 생생하게 전해져 압도당한다. 본래 원고 30매 분량으로 예정했으나, 끝내 완성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래서 원고를 수록하기에 앞서, 작품을 그리게 된 배경과 미완성 원고를 수록하게 된 과정을 설명하여 독자들이 작품을 더욱 깊이 감상할 수 있도록 돕는다.
책 중간에 수록한 「다니구치 지로 일러스트 갤러리」는 작가가 늘 가지고 다니며 마음 가는 대로 그린 약 120점의 그림 중 일부를 소개한다. ‘그리고 싶다’는 작가의 순수한 마음이 배어 있고, 제재와 기법의 한계를 뛰어넘는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작가가 더욱 그리워진다. 만화를 향한 그의 애정과 열망이 살아 숨쉬는 듯하다.
에세이 「프랑스와 나」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예술공로훈장을 수여받을 만큼 이름을 알린 작가가 프랑스와의 인연을 맺은 경험을 담고 있다. 일본을 넘어 세계적으로 이름과 작품을 알린 다니구치 지로. “해보고 싶은 일이 아직 끝도 없다”고 말한 그의 유고 작품집은 만화계에 있어 더없이 귀중한 유산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