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바다에 던져진 쇠사슬의 팽팽한 힘
삶과 죽음의 경계를 보듬는 두 편의 소설
표제작 「부표」는 바다에 띄운 부표를 교체하는 작업과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맞닥뜨린 주인공의 내면을 그린 작품이다. 소설은 인양선 크레인이 낡은 부표를 끌어올리는 현장감 넘치는 장면 묘사로 시작한다. 인양선 크레인이 끌어올린 낡은 부표는 이제 소용이 다해 새 부표로 교체되어야 한다. 주인공인 ‘나’는 얼마 전 아버지의 장례를 치렀고 삼우제를 앞두고 있다. 이후 작품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살아온 삶을 조명한다.
그의 아버지는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이었다. 원양어선을 타기도 하고 화물선을 타기도 했던 그는 “제법 바닷사람 같은 목돈을 가지고” 돌아오곤 했지만 그 돈은 그가 돌봐야 할 가족들을 위해 쓰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가져온 돈을 구경할 수 있었을 뿐 만져볼 수는 없었다. 주인공은 아버지가 남긴 통장을 보며 ‘인생역전’을 꿈꾸었던 그의 덧없었던 삶을 씁쓸하게 되돌아본다.
「부표」는 등부표 교체 작업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 자체가 자아내는 소설적 흥미도 뚜렷하지만, 그 현실적 사건과 아버지의 죽음 사이의 맺어지는 상동성의 측면을 형상화한 점도 작품을 읽는 재미를 한층 북돋는다.
두번째 수록작 「전(傳)」은 일종의 대체역사소설로 볼 수 있다. 작가는 인조반정과 관련된 역사 속 실존 인물들을 허구의 세계로 초대해 그들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이야기를 꾸려간다. 소설은 늦은 밤 심란한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배대유를 비추며 시작한다. “모반의 시대에 목숨을 부지한” 것을 천운으로 여겨야 하는 시대에 대해 그는 허무하고 어지러운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그런 그의 방으로 한 남자가 침입한다. 그 사내는 무명이라는 자로 그를 두 번 살리고 두 번 죽이려 했던, 야릇한 생과 사의 갈림길마다 그의 앞에 서 있던 사내다. 그가 배대유를 찾아온 이유는 졸기(망자에 대한 마지막 평가를 담은 간략한 전기)를 부탁하기 위함이다. 망자는 겸사복 시방. 겸사복은 “본래 왕을 시위하는 무사에게 주어지는 것”이니 그는 반정 와중에 왕을 지키다 죽음을 맞은 것이다. 무명은 겸사복 시방의 졸기를 청하며 문장에 호의를 베풀 것을 주문한다. 이에 배대유는 고민에 빠진다. 이 엄혹한 시대에 이 죽음을 뭐라 일컬을 것인가. 역모든 반정이든 시방이 죽은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데……
이 작품은 생과 사를 가르는 냉혹한 정치 현실과 전쟁과 부패 등으로 고단한 일상을 견뎌야 했던 백성의 삶에 고뇌하는 한 유학자의 내면을 허구적으로 구성함으로써 ‘오지 않은 세계’에 대한 희구와 욕망을 그려낸다. 무명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한 활극을 서술하는 필치가 날카롭고 그와 배대유의 얽히고설킨 인연을 서늘하게 묘파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시리즈
한국 문학의 눈부신 결산
소설집 9종, 앤솔러지 시집 1종 출간
덧붙여 이 책은 경기문화재단 주관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으로, 경기도에 거주하는 문인들에게 창작지원금을 지원, 그들의 작품을 시리즈로 출간하는 기획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올해 출간되는 시리즈는 9명의 소설가들이 참여한 소설집 9권, 13명의 시인들의 신작시를 묶은 앤솔러지 시집 1권으로 구성돼 있다. 온몸으로 건져 올린 발칙하고 싱싱한 언어들, 시대를 감싸 안는 빛나는 감수성이 오늘의 소설, 시의 면면을 보여주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올 한 해 우리 문학의 눈부신 결산 중 하나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