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긴긴 겨울, 봄은 어디에 숨어 있을까
꾸준한 리듬으로 우리 마음속 창을 두드리는 작가 한연진의 신작 『숨은 봄』
차갑고 시린 겨울이 유난히 길게 이어지던 어느 날, 작은 새 한 마리가 무리에서 떨어져 홀로 눈밭에 남고 만다. 새는 한참을 헤매다 덩그러니 서 있는 작은 집을 발견하고 창문을 두드린다. 그 집에 살고 있던 아이가 반가이 창을 열어 작은 새를 안으로 들이고, 두 손으로 새를 감싸 호오, 따뜻한 숨을 불어 준다. 희미하지만 분명한 온기가 닿자 작은 새는 마음속까지 말랑해진 기분이 든다. 타닥거리는 벽난로 앞 포근한 양탄자에 앉아, 새는 아이에게 할머니새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높고 높은 곳에 오르면 봄을 만날 수 있다는,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였다. 아이는 망설임 없이 일어나 오랫동안 닫아 두었던 무거운 문을 열어젖힌다. 작은 새와 아이는 춥고 힘겨운 여정 끝에서 마침내 모두가 기다리는 봄을 찾을 수 있을까?
『숨은 봄』은 『눈물문어』 『끼리코』 『옥두두두두』 등의 그림책을 통해 참신하면서도 감각적인 스타일로 주목받고 있는 한연진 작가의 새로운 작품이다. 작가가 그림책 『숨은 봄』 속에 설계해 둔 공간은 멀지만 분명히 가 본 적 있는 듯 가까운, 상서롭고 아름다운 세계이다. 그야말로 끝나지 않을 겨울 같던 시기를 통과하며, 작가 자신이 커다란 용기를 얻었던 작은 경험에서 출발한 이 이야기는, 그 진실한 힘을 동력으로 하여 많은 이들에게 가 닿을 단단한 씨앗 같은 메시지를 품은 한 권의 그림책으로 완성되었다.
숨은 봄, 봄은 고양이의 인사
순록의 용기, 올빼미의 호의, 눈표범의 기다림
높고 높은 곳을 향해 하염없이 걷는 길, 구불구불한 언덕 사이에서 아이와 새는 고양이를 만난다. 봄을 찾으러 가고 있다는 둘의 말에 고양이는 잠시 지난봄의 기억을 떠올리고는 포근한 숨을 아이와 새에게 나눠준다. 동그라미 숲에서는 언 땅을 딛고 선 순록을 만난다. 여태껏 본 적 없는 멋진 뿔을 달고 선 순록은 둘에게 믿어 주는 마음이 담긴 싱그러운 숨을 건넨다. 다음으로 도착한 뾰족 숲에는 부리부리한 눈동자들이 가득하다. 조금 떨리는 마음으로 건넨 인사에 올빼미들은 환대와 호의로 화답한다. 아이와 작은 새의 여정이 한 장면, 한 장면 펼쳐지면서 눈처럼 희던 아이의 외투에는 봄을 기다리는 동물들의 반짝이는 숨들이 담기기 시작한다. 장엄한 자연은 때로 무자비한 듯 보이지만 늘 살아 있는, 작은, 따뜻한 존재들을 품어 기르고 있음을 상징하는 색색의 동그라미, 봄숨이다.
봄을 기다릴 수 있는 힘이 되어 주는 조그만 온기
작은 마음들을 모아서, 봄을 향해 가자
『숨은 봄』은 『눈물문어』에서 읽을 수 있었던 따뜻한 공감의 시선, 『끼리코』에 담겼던 발산하는 이미지 고유의 힘, 『옥두두두두』에서 보여 주었던 한연진 작가만의 개성적인 문법 들이 한 차원 더 성숙해지며 본격적으로 발휘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시원시원한 장면 전환과 디테일한 표현의 아름다움은 절묘한 균형으로 읽는 이의 감상을 풍성하게 돋운다. 자연의 영험한 신비로움을 담은 눈동자들, 뒤편이 비칠 만큼 여리고 깨끗한 숨방울들, 이미지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서사를 읽어 내는 커다란 기쁨을 선사할 그림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