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다의 시의적절, 그 다섯번째 이야기!
시인 오은이 매일매일 그러모은
5월의, 5월에 의한, 5월을 위한
단 한 권의 읽을거리
‘시의 적절함으로 시의적절하게’, 시의적절 시리즈 다섯번째 주자는 오은 시인입니다. 누구보다 읽고 쓰는 일에 진심인 시인 오은의 성실함으로 하루하루 달력에 매김하듯 꼭꼭, 서른한 편의 글을 눌러담았습니다. 5월의 녹음만큼이나 흐드러지도록 읽을거리 가득하고요, 시의 씨앗부터 단어라는 잎, 글로 피운 꽃까지 ‘울창한’ 말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말의 맛’ 넘어 ‘시의 맛’으로 향하는 단어의 사거리, 혹은 오거리. 허투루 지날 법한 하루 속에서도 오만 가지 단어를 발견하는 시인 오은의 쓰기 그 ‘참맛’, 『초록을 입고』입니다.
모르는 길에 들어서는 일, 겁과 호기심을 양손에 각각 쥐고 한발 한발 조심스레 내딛는 일, 백지 위에 비뚤배뚤한 나만의 별자리를 만드는 일, 흙 위에 서서 바다를 생각하는 일, 나는 이것을 한다. 이렇게 나는 일평생 나에게 가까워질 것이다. 더 막막해질 수 없을 때까지.
시로 가는 길은 막막하다. 운이 좋으면 그 길 어딘가에서 최초의 장면을, 맨 처음의 단어를 만날 수 있다. 나는 이 마주침의 순간을 결절(結節) 혹은 분기점이라고 부른다. 이제 첫 문장이 쓰일 차례다. 때마침 내일은 어린이날이다. 비눗방울의 날, 바다 거품의 날, 터져도 휩쓸려도 기어이 다시 부풀어오르는 날이다. ─본문 중에서
모든 쓰기는
결국 마음 쓰기다
유난히 푸른 5월, 유독 기념일이 많은 달이기도 합니다. 5월 5일을 맞은 동시와 5월 15일의 카네이션은 물론이고, 5월 11일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이라거나 5월 19일 발명의 날, 5월 20일 세계인의 날, 5월 29일 세계 수달의 날까지…… 달력을 뒤적이는 재미 있음에, 어쩌면 ‘시의적절’의 출발이 매일을 기념일처럼, 기록이라는 기억을 채워나가는 일 아니었겠나 생각해봅니다. 그런가 하면 작년 5월 18일에는 정읍에 있었구나, 4년 전 5월 13일에는 이 글을 발표했구나, 시간을 돌아보며 나의 삶을 돌보는 날도 있지요. ‘다독일 줄 아는’ 시인 오은의 삶 또한 매일의 기억으로 채워져가는 거지요.
권마다 시인마다 조금씩은 다른 쓰기를 선보이는 ‘시의적절’ 시리즈이지만요, 특히 이번 책은 ‘사용법’이라 이름해도 좋을 듯합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속표지가 전채(前菜), 글 한 편은 주요리, 그 뒤에는 ‘오발단(오늘 발견한 단어)’이라는 후식까지. 매일매일 코스 요리로 든든하고요, 그 차림새 물론 진수성찬이지요. 양만 양 아니라 시, 에세이, 동시, 청소년 시, 일기, 농담, 인터뷰, 담소, 시론…… 하루가 다르고 매일이 다채로운 글들이니 물릴 걱정마저 없고요. 특히나 오은 시인이어서 가능한, 밝고 또 맑은 눈으로 발견하는 오늘의 단어들이 일품입니다. ‘일기죽일기죽’ ‘비거스렁이’ ‘대팻집고치기대패’ ‘어질더분하다’ ‘시쁘다’, 몰랐던 단어는 물론 함께 배움이고, 알았던 혹은 안다고 여겼던 단어는 다시 만나 반가웠다가 달리 보니 새롭구나 싶지요. 그런가 하면 열흘마다 모아본 ‘적바림(나중에 참고하기 위하여 글로 간단히 적어둔 기록)’은 글자들의 릴레이로 달려 단어들의 운동장처럼 흥성하고요. 진수성찬이라 했던가요, 이런 융숭함이라면 시의적절 5월은 분명 말들의 잔치고 축제라 하겠습니다.
책을 쓰면서 전채(前菜), 주요리, 후식을 떠올렸습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속표지가 전채, 그날의 글이 주요리, ‘오발단’(오늘 발견한 단어)이 후식이 되었으면 했습니다. 전채와 주요리와 후식이 잘 어울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5월에 유독 많은 기념일이 글에 다가가는 힌트가 되어주기도 했습니다. 어디에 있든 “오늘 하루 잘 살았다!”라고 스스로 말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이는 한 달의 첫날부터 마지막날까지를 슬쩍 건너다보고 슬금슬금 건너가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열흘에 한 번꼴로 ‘적바림’을 적기도 했습니다. 기역에서 히읗까지 산책하는 일이 소화(消化)에 도움이 되었으면 싶었습니다. ─본문 중에서
그래서일까.
내가 5월에 태어난 것은!
새록새록 혹은 초록초록, 움트고 흐드러지는 5월입니다.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대신 ‘초록을 입고 뛰어보자 폴짝’ 해보는 그런 책. 읽는 내내 우리의 5월 또한 초록으로 물들듯 혹은 물오르듯 푸릇해진다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루에 한 번 시를 생각하며 흔흔히 힘입읍시다.”
초록을 입고 말해보자
풀처럼 여리게
나무처럼 단단하게
바다처럼 휘몰아치듯
지구처럼 묵묵하게
열 개의 나이테가 수놓아진
초록을 입고
한바탕 울창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