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규 자전적 시 해설서 『詩가 태어나는 자리』출간
1991∼93년 『문예중앙』에 연재되고, 이듬해 책으로 묶였던 황동규 시인의 자전적 시해설서 『나의 시의 빛과 그늘』이 수정·증보작업을 거쳐『詩가 태어나는 자리』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황동규 시인의 시를 이야기할 때 흔히 고도의 지성과 세련된 감수성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그러나 그의 시에는 정제된 언어의 엄격성을 넘어서는 상상력과 정열이 있다. 그의 시를 사랑하는 독자들 가운데 그가 보여주는 저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의 원천을 궁금해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詩가 태어나는 자리』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시인의 삶 전체가 시로 다시 태어나는 숨막히는 장면들을 지켜보는 동안, 독자들은 황동규 시의 풍요로운 내면을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 일반의 경이로운 탄생 과정과 만나게 될 것이다.
시적 경험의 기원
시인 스스로 자신의 시세계 염탐기라고 이름 붙인 『詩가 태어나는 자리』에는 그의 문단 데뷔작인「시월(十月)」에서부터「즐거운 편지」「겨울노래」「어떤 개인 날」「비가」「계엄령 속의 눈」「태평가」「풍장」연작, 그리고 외국 체류시절의 체험이 담긴「브롱스 가는 길」에 이르기까지, 황동규 시사(詩史)의 분수령을 이루는 작품들에 관한 시인 자신의 해설과 분석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되고 있다.
드문 형식의 이런 시적 자서전을 엿보는 일이란 시를 감상하거나 해석하는 것과는 또 다르게, 40년에 걸쳐 시를 써온 한 시인의 정신세계의 폭과 깊이를 가늠해보는 기회기도 하다. 황동규 시인이 대중과 평론가들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오랫동안 사랑과 주목을 받아온 까닭은 무엇보다도 그의 시가 보여주는 한결같은 새로움이다. 그런데 그 새로움은 변신을 위한 변신이 아니기에 진솔하고도 강렬하다. 그는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산다.『詩가 태어나는 자리』에서 독자들은 바로 이러한 삶과 시의 밀착, 시와 삶의 동거(同居) 현장을 엿볼 수 있다.
『詩가 태어나는 자리』는 단순한 자작시 해설서가 아니다. 이미 극서정시 이론을 실험하고 체계화한 바 있는 시인의 시에 대한 생각들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시론집일뿐 아니라, 솔직한 고백들과 거기서 배어 나오는 삶과 세계에 대한 성찰은 눈부시다. 무엇보다도 단단하고 윤기 있는 문장들을 읽는 즐거움이 대단하다. 이제 당신은 시적 경험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황동규 시의 내면을 더욱 풍요롭게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서 시가 생성되는 경이의 순간을 염탐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은 드문 행복에 속한다.
우리 시대의 시인인 황동규의 자신의 시에 관한 산문들은 시가 탄생한 자리에 대한 일종의 내적 진술이다. 시에 대한 방법론적 자의식은 시적 영혼의 고백과 반응하며 이론의 푸석함을 버리고 육성의 습기를 머금게 된다. 거기서 우리는, 한 시인의 실존 속에서 어떻게 시가 솟아나는가를, 나날의 삶 가운데서 문득 시가 맺혀지고 흘러나오는 비밀스러운 과정을 체험할 수 있다. ― 이광호 (문학평론가·서울예대 문창과 교수)
1961년 첫 시집 『어떤 개인 날』을 출간한 이래 『버클리풍의 사랑노래』에 이르기까지, 시인은 사십 년 동안 한눈 팔지 않고 한결같이 시의 길만을 걸어왔다. 그 동안 시인은「즐거운 편지」의 감수성으로 대중들의 기억 속에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기도 했고, 십사 년에 걸친 연작시『풍장』을 통해 우리 시단에 기념비적인 족적을 남기기도 했다. 또 『악어를 조심하라고?』(1986)『몰운대행』(1991) 『미시령 큰바람』(1993) 에 걸친 시집에서 극서정시 이론을 구체화했으며, 가장 최근에는 『버클리풍의 사랑노래』에서 생의 본질적 외로움과 유한성을 극복하고 화해하는 홀로움의 시편들을 이루내기도 했다.
시인의 삶 전체가 시로 다시 태어나는 숨막히는 장면
『詩가 태어나는 자리』에는 바로 이 시편들이 탄생하는 과정의 비밀들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시인은 무엇보다도 시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고집을 지키기 위해, 그간 행간에 묻어두었던 말들, 썼다간 지워버린 이야기들, 미처 문장으로 빚지 못한 사유들이 그의 시편들과 어우러지면서 또 하나의 새로운 글쓰기를 이룩해낸다.
*2001년 5월 9일 발행/ISBN 89-8281-387-X 03810
*신국판/328쪽/8,500원
*편집담당: 김현정, 이수은 (927-6790 내선 217, 213)
삶과 시의 밀착, 시와 삶의 동거(同居) 현장. 시인의 삶 전체가 시로 다시 태어나는 숨막히는 장면. 황동규의 시가 보여주는 한결같은 새로움은 변신을 위한 변신이 아니기에 진솔하고도 강렬하다. 그는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산다.『詩가 태어나는 자리』에는 바로 그 경이로운 순간들이 생생하게 포착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