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달진 전집 여섯번째 권 『한산시』 출간
문학동네에서 출간중인 김달진 전집은 시인이자 한학자이며 승려였던 월하 김달진 선생의 시적 업적과 불교와 한학에의 깊이 있는 학문적 온축을 되새겨보는 자리다. 1997년 6월에 제1권 『김달진 시 전집』을 선보인 후로 산문 전집 『산거일기』와 『손오병서』 『장자』 『고문진보』에 이어, 여섯번째로 『한산시』가 출간되었다.
김달진 선생에 의해 『한산시』 국역본이 처음 간행된 것은 1960년대 초반이었고(법보원, 1964) 이후 1989년 세계사에서 해설이 추가된 해설판 『한산시』가 간행되었다. 이번에 출간된 『한산시』는 최동호 교수(시인, 문학평론가, 고려대학교 국문과 교수)가 주해를 보충하고 판본을 대조하여 펴낸 것이다. 특히 한문본 『한산시』 중 가장 연대가 오래된 곽택지포본(郭宅紙鋪本, 1574년 이전), 이를 바탕으로 간행된 봉은사본(奉恩寺本, 철종 7년, 1856년), 조지훈 소장 목판본 『한산시』를 비롯하여 일본에서 간행된 목판화각본(木版和刻本)의 『당시 1권(唐詩一卷)』에 수록된 판본을 확인 검토하여 펴낸 것으로 『한산시』의 완결판이라 하겠다.
조지훈 선생은 유자의 시를 읽으면 가슴이 답답하지만 『한산시』를 읽으면 이가 시리다고 했다. 불우한 선비를 노래하고, 도교에 흥취를 느끼고, 허식의 불교를 비판하고, 서민의 생활을 노래하고, 한산의 자연을 노래한 『한산시』는 정지용, 조지훈, 김달진, 서정주, 김관식, 이원섭, 황동규, 정현종, 박제천, 이성선, 조정권, 최승호, 황지우 등의 시를 형성하는 정신적 토양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물질의 풍요 속에서 속박당하는 정신의 가치야말로 예나 지금이나 가장 중요한 시적 주제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산시』의 다양한 내용과 깊은 철학성은 현대의 독자들에게도 신선한 감동을 줄 것이다.
한산(寒山), 환상적인 해탈의 세계를 향한 끊이지 않는 노래
『한산시』는 한산자(寒山子)라는 전설적인 은자가 천태산의 나무와 바위에 써놓은 시를 국청사(國淸寺)의 중이 편집했다고 전해지는 시집이다. 한산자의 작(作)이라고 전해오는 약 3백여 수 외에 풍간(豊干)의 작품 2수, 습득(拾得)의 작품 약 50여 수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삼은시집(三隱詩集)』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번에 출간된 『한산시』에는 「한산시」 316수를 포함하여 「풍간시」 2수, 「습득시」 58수가 실려 있다. 『한산시』에는 소수의 칠언시(七言詩)와 삼자시(三字詩)가 포함되어 있지만 오언시(五言詩)가 대부분이며, 시체(詩體)는 악부(樂府)에 가까운 고시(古詩)이며 근체시(近體詩)나 율시(律詩)나 절구(絶句)는 거의 없다. 시의 내용은 꽤 복잡하고 다양하여 여러 가지 제재를 취급하고 있다. 『한산시』의 전형적인 부분인 자연과 함께 있는 즐거움을 노래한 것 외에 세상과 승려에 대한 비판, 불교적인 교훈, 도교에 대한 비판, 여성의 변덕을 노래한 시 등을 통하여, 허망한 삶을 깨치고 진정한 도를 구하라는 주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층층 바위 틈이 내가 사는 곳/다만 새 드나들고 인적은 끊어졌다.
좁은 바위뜰 가에 무엇이 있나/그윽이 돌을 안은 흰구름만 감돌 뿐.
내 여기 깃들인 지 무릇 몇 핸고/봄과 겨울 바뀜을 여러 차례 보았네.
그대 부자들에게 내 한 말 부치나니/헛된 이름이란 진정 헛것뿐이니라. -「한산시 2」
한산자는 영혼의 정화와 해탈을 추상적인 언어에 의존하지 않았다. 대신 해탈 후의 정화된 세계를 지상의 이상경(理想境)의 구체적인 묘사한다. 한산이라는 환상적인 해탈의 세계를 의도적으로 설정하고 여러 각도에서 집요하게 되풀이하여 노래하는 것이다. 조금의 흐트러짐이 없이 자연 그대로 본성 그대로 그다운 삶을 살다가 간 한산의 시 속에는 선(禪)이 있다. 인권환 교수(고려대 국문과)의 말대로 "세속을 여의었으니 마음에 걸림이 없고, 마음에 걸림이 없으니 속세의 부귀야 얼마나 허망할 것인가".
김달진 전집을 펴내며
『시인부락』의 시인이며, 승려이고 한학자였으며 향리의 교사였던 김달진 선생은 평생을 세간에서 멀리 떨어져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하면서 고고한 정신의 세계를 천착하였다. 영원한 세계, 절대적인 세계를 향한 동경과 세속의 명리에 대한 부정은 구도자로서 선생의 인간과 학문을 되새겨보게 만든다. 김달진 선생의 시적 업적과 동양학으로 지칭될 불교와 한학의 섭렵은 80여 년에 걸쳐 축적된 것으로서 오늘의 우리에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하나의 장관으로 비쳐질 것임에 틀림없다. 20세기를 마감하고 새로운 세기를 목도하고 있는 우리에게 선생이 성취한 지혜와 학문은 그 진가를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인문학의 정신이 쇠퇴하고 새로운 과학기술 문명의 탄생이 예고되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깊은 삶의 예지를 머금은 선생의 저작을 하나로 묶어 뜻 있는 독자들에게 제공하여 새로운 인간학의 정립에 기여하고자 한다. 세기말적 해체와 혼돈의 와중에서 우리가 김달진 선생의 저작에서 배울 수 있는 지혜와 슬기는 물질만능과 탐욕의 어둠을 밝혀줄 등불이 될 것임을 확신하는 바이다.
(김달진 전집 편집위원: 김용직 김윤식 김장호 김종길 박경훈 신상철 유종호 정한숙 홍기삼 최동호)
*2001년 8월 6일 발행/ISBN 89-8281-415-9 04810/ 세트 89-8281-060-9
*신국판/472쪽/값 12,000원
*편집담당: 김현정, 장한맘(927-6790, 내선 217, 214)
-가슴이 답답할 때는 선시(禪詩)를 읽으면 가슴이 후련해진다. 시가 탈속하려면 먼저 이런 경지에 거닐어보지 않으면 안 된다. 한산시처럼 이가 시린 시를 읽다가 옹졸한 유자(儒者)의 시를 읽으면 가슴이 답답해진다.(조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