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와 문자, 책과 글쓰기의 운명에 관한 독특한 소설 『책벌레』(Der Buchtrinker, Albrecht Knaus Verlag, 1994)
대학에서 체계이론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 클라스 후이징은 두 개의 소설과 아홉 개의 양탄자, 이 세 가지 다른 층위로 구성된 소설 『책벌레』에서 책과 독서, 나아가 문자문화에 기반한 인류 문명 전체를 두 세기를 격한 두 독서광의 기이한 운명적 조우 속에 풍성하고 유머러스하게 펼쳐놓았다. 플라톤, 니체, 루소, 칸트, 벤야민, 리히텐베르크, 비트겐슈타인, 롤랑 바르트, 데리다, 카프카, 페터 한트케...... 수많은 철학자와 작가들의 사유가 수시로 도마 위에 올려지지만, 추리적 구성의 긴박한 소설적 호흡과 클라스 후이징의 절묘한 위트 덕분에 현학의 냄새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매문장 허를 찌르는 인식의 상쾌함이 압권이다. 패러디와 패스티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전개되는 이 놀라운 지적 유머는, 독서의 문화사와 문자의 운명이라는, 자칫 무거울 수 있는 테마를 소설의 즐거움 속으로 거의 완벽하게 끌어들인다. 독자들은 무시로 끼어드는 괄호의 예술에 주목해야 하리라. 이 소설에서 괄호는 모든 상투적인 인식들이 뒤집히고 물구나무서는 한바탕 축제의 장이라 할 만하다. 1. 요한 게오르크 티니우스에게선 여느 젖먹이와 다름없는 냄새가 났다. (당신은 이 문장이 무엇을 암시하는지 이해했을 것이다. 혹시 이 은근한 암시를 아직 이해하지 못했는가? ......사람을 잡아먹는 따위의 결말은 아니다. 이 책에서는 피도 거의 볼 수 없다. ...... 요한 게오르크 티니우스에게선 아주 평범한 냄새가 났다. 게다가 그는 한창 피어나는 소녀들을 살해한 것도 아니다. 그가 죽인 건 일흔다섯이나 먹은 노파였다. 그리고 이 나이의 여자들이 어떤 냄새를 풍기는지에 대해선 문학작품을 통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 스스로를 '책벌레'라 자부하는 독자들이라면 후이징이 어떤 작품을 두고 비아냥거리는지 금방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2. 텍스트에서 느끼는 쾌락을 텍스트의 문법적(현상텍스트적) 기능으로 환원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육체의 쾌락을 신체적인 욕구로 환원시킬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우리 신체에서 가장 에로틱한 부분은 옷의 틈새가 드러나는 부분이 아닐까? (텍스트의 즐거움의 고유성이기도 한) 성 도착증의 경우에는 '성감대'(말이 났으니 말인데, 이것은 지독히도 신경을 자극하는 용어다)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 롤랑 바르트의 『텍스트의 즐거움』을 읽었는가? 아마도 『책벌레』는 독서와 문자의 운명을 다룬 가장 풍성하고 유쾌한 소설, 그러면서도 묵직한 예언적 성찰(문명의 몰락)까지 담고 있는 진지한 소설로, 당분간은 그 왼편의 짝을 찾기 힘들 것 같다. 이야기, 사유, 아포리즘, 그 모든 것들이 하나로 엮인 이 소설은 우리를 흠뻑 취하게 만든다. --루어 나흐리히텐 티니우스의 광기에, 그리고 후이징의 화술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현대문학에 중요한 무언가가 빠져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을 읽고 난 후 반드시 후이징의 이름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디 벨트
두 개의 소설, 아홉 개의 양탄자, 그리고 하나의 텍스트
책에 대한 광적인 탐식 끝에 아무런 죄의식 없이 살인을 저지르고 역사의 갈피 속으로 사라져버린 괴테 시대의 목사 게오르크 티니우스.(Johan Georg Tinius 1764. 10.22∼1846. 9. 24 직업:작센 주 포르제나의 목사. 특이할 만한 점:비범할 정도의 기억력. 괴테 시대의 이 남자는 특별한 열정으로 인해 살인자가 된다. 그의 탐욕의 대상은 다름아닌 책. (그는 종이의 냄새만 맡고도 어떤 인쇄소에서 제작된 책인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1813년 살인혐의로 체포되어 성직자의 옷을 벗고 범행에 대한 자백 없이 정황증거만으로 종신형을 언도받은 그는 지금은 모두 잊혀졌지만 다섯 권의 책을 출판한 바 있다). 두 세기를 건너 현대의 책벌레 팔크 라인홀트(허구의 인물)는 슈바빙의 한 고서점에서 그의 생애와 맞닥뜨린다. 그 만남은 라인홀트에게 구텐베르크 시대의 종말과 인류 최후의 책벌레의 운명을 함께 사유하며 살게 만드는 문명사적 사건이었다. 그리하여 1991년 9월 어느 날 책 속으로 삼켜져 하나의 글자, 한 장의 종이가 되어 흩어져버린 라인홀트의 실종과 함께 문명세계는 조용히 몰락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작가 클라스 후이징은 놀라운 박식과 유머로 글자의 운명과 독서의 문화사를 재구성하며 책과 인간의 일 대 일 대면, 그 마성적 유혹의 공간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위장까지도 오래 전에 뇌 속으로 옮겨와버린, 그래서 책을 먹고 마시는 것만이 유일한 생명의 원천이 되어버린 인간 라인홀트. 그를 통해 우리는 독서의 기술과 매혹을 전율의 극한에서 체험하며 "해석될 수 없는 것을 기어코 해석해내고 영원한 어둠 속에서 길을 찾아내는" 느린 독자의 운명, 마지막 문명의 지표로 남아 있을 책의 운명과 마주한다. 『책벌레』는 이렇게 티니우스와 팔크 라인홀트라는 두 주인공의, 다르면서도 같은 두 개의 이야기 사이사이에 「양탄자」라는 또하나의 특별한 장(章)을 만들어내어, 내용뿐 아니라 그 구성에서도 특별한 재미를 더하고 있다. 얼핏 모두 별개의 이야기인 듯하나, 이 세 가지 다른 층위는 교묘하게 맞물려 그야말로 잘 짜여진 한 장의 '양탄자' 같은 소설을 만들어내고 있다. 아홉 개의 양탄자 안에서 저자는, 플라톤 니체 루소 칸트 벤야민 리히텐베르크 비트겐슈타인 롤랑 바르트 데리다 카프카 페터 한트케 등 세계적인 문호들의 입을 빌려, 독서의 기술, 독자와 저자의 관계, 그리고 비평의 문제까지 언급한다. "문체나 매끄럽게 다듬"고 이런저런 이론의 잣대나 들이댈 뿐, 정작 텍스트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비평가들을 꼬집고, 스스로 읽으려 하지 않는 독자들, 책이 당장 어떤 해답을 제시해주기를 바라는 성급한 독자들을 꾸짖고, 새로운 인식의 길을 열어주는 독서의 기술을 이야기하고, 독자와 저자의 관계, 저술과 독서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작가와 독자는 하나를 이루는 두 개의 절반이며, 그들이 욕구는 서로 결부되어 있다. 그리고 속과 겉, 굶주림과 헐벗음이 네 개의 바퀴를 이루고, 다시 이 바퀴들이 차곡차곡 포개져 하나의 바퀴가 되어 마침내 검은방울새의 둥지처럼 눈깔 모양이 된다면 작가와 독자는 공동의 목표에 이르게 된다. --본문에서 계속해서 눈을 깜짝이게 만드는, 그러면서 동시에 몰입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이 책을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독서, 당신의 정신을 해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 잘못된 독서는 충분히 독(毒)이 될 수 있다. 스스로를 책벌레라 자부하며 그저 폭식만을 일삼는 어리석은 '책벌레'들과 독서의 진정한 매혹을 맛보고 싶은 '(좋은 의미의)책벌레 지망자들'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그러니, 모두가 읽어야 할 책!) 어느 날 당신도 채 소화되지 않은 활자들을 게워내며 사라져버릴지 모른다. 책 속으로, 깊이를 알 수 없는 그 블랙홀 속으로 말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만이라도 그런 우를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해, 후이징은 독서의 기술 몇 가지를 제시한다. "텍스트에서 한 걸음 비껴 서서, 시간을 갖고, 조용히, 깊이 있게, 앞뒤를 살피면서, 천천히 읽을 것! 끈기 있게 글의 흔적을 뒤쫓는 느린 독자가 될 것!"
▶ 클라스 후이징(Klaas Huizing, 1958∼) 책과 독서의 탁월한 문화사, 영혼을 삼키는 책읽기의 마성적 유혹에 대한 전율적인 소설 『책벌레』(1994)로 일약 세계적 명성을 얻은 후이징은 현재 뮌헨 대학에서 체계이론을 가르치며 소설 집필과 이론적 탐구를 병행하고 있다. 철학박사이며 신학박사이기도 한 그는 『관상학자』(1992), 『룻기』(2000), 『출장』(2000), 『물 자체. 칸트』(2000) 등의 소설과 『호모 레겐스』(1996), 『독서와 삶』(1997), 『미학이론 Ⅰ. 문학적인 인류학』(2000) 등의 저술이 있다.
독서와 문자의 운명을 다룬 아주 탁월한 소설.
그저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으로는 도저히 만족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최고의 성찬 --아마존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