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종말에의 상상력이 불러낸 가상현실의 세계」로 등단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평론가 손정수씨의 첫 평론집 『미와 이데올로기』가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이 평론집은 세대의 몫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 작품을 작가의 전체 작품세계 속에서 바라본다는 것--이렇게 두 가지 원칙과 방향에 의해 씌어진 글들이다. 실험적 경향의 작품에 대한 저자의 관심이나, 짧은 서평을 쓸 경우에도 해당 작가의 작품 전체를 찾아 읽고 그 연속선상에서 새로운 작품의 의미를 밝히는 저자의 글쓰기 태도는 여기서 기인한 것이다. 저자는 "인식과 이해는 서로를 부추기며 나란히 가는 것"이기에 "이 방식이 다른 어떤 것보다 객관적이고도 비판적인 비평을 가능케 하는 근거"라 믿는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평론집의 제목 미와 이데올로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미와 이데올로기는 그 자체가 소설의 존재방식이자 제가 소설을 읽을 때 항상 느끼는 역설 혹은 모순의 두 축입니다. 글은 언제나 객관적인 의미의 드러냄이지만, 그리하여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언제나 그 글을 쓴 주체와 그가 귀속되어 있는 현실적 연원과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이 그것입니다. 따라서 한 편의 작품은 미적이자 동시에 윤리적(이데올로기적)일 수밖에 없을 터입니다. --책머리에에서
이 역설이 저자의 글읽기 그리고 글쓰기의 원동력인 터. 글읽기, 글쓰기를 "하고 싶고,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이라 말하는 젊은 평론가의, 새로움을 담고자 하는 의욕 예술의 존재방식에 대한 이론적 해명 소설의 새로운 존재방식을 지속적으로 갱신해나가려는 노력의 흔적인 첫 평론집이 반갑다.
역설과 모순의 두 축 미와 이데올로기
『미와 이데올로기』는 전체 3부로 이루어져 있다.
제1부 문학 속의 현실, 현실 속의 문학은 주제론에 해당되는 글로서, 소설의 새로운 영토와 글쓰기의 가능성, 그리고 문학의 방향에 대한 사유들을 모았다. 1990년 이후 새로운 우리 소설의 면모, 즉 작품의 형식을 해체하는 실험적 방식 및 역사적 사회적 주체를 대체하는 일상의 욕망과 분열된 자아의 모습 등에 초점을 두고 현대성을 탐구한 여러 사상가의 이론적 저작들을 바탕으로 작품 분석을 시도했다.
제2부 욕망의 글쓰기, 글쓰기의 욕망은 저자가 써온 작가론 가운데 주로 젊은 세대 작가들에 대한 글들을 가려 묶은 것이다. 백민석, 김경욱, 이혜경, 정영문, 김연수, 김영하, 이응준, 배수아, 신경숙 등 저자를 항상 새로운 긴장으로 충만케 했던 작가들의 작품세계와 교감한 흔적이라 할 수 있다.
제3부 내면의 서사, 서사의 내면은 월평, 계간평, 서평 등의 형태로 발표되었던 글이다. 이 글들은 저자가 매 계절 현장 작품을 거의 공백 없이 읽고 써온 성과물로서, 소설의 존재방식에 대한 물음의 발견과 그에 대한 나름의 모색이 병행되어 있어 저자 스스로 매우 의미 깊은 영역이라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