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여
- 원서명
- Lun et Lautre
- 저자
- 엘리자베트 바댕테르
- 역자
- 최석
- 출판사
- 문학동네
- 발행일
- 2002-03-14
- 사양
- 360쪽 | 신국판
- ISBN
- 89-8281-480-9
- 정가
-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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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남과 여의 구분을 넘어선 양성적 인간에 대한 대담한 비전
"인간은 이제 더이상 이질적인 두 그룹으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점에서 닮기도 하고 구별되기도 하는 다양한 개성으로 조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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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엘리자베트 바댕테르(Elisabeth Badinter)
1944년 프랑스 불로뉴-빌랑쿠르에서 출생. 작가이며 철학교수. 파리 이공과대학에 재직하고 있으며, 프랑스 국립도서관 과학 자문위원이기도 하다. 문학, 철학, 인류학, 정신분석학, 사회학, 자연과학 등 전방위적 폭과 깊이를 토대로 여성학의 미개지를 열정적으로 개척하고 있다. 저서로 『XY:남성의 본질에 대하여』(1994) 『여자란 무엇인가?』(1988) 『콩도르세-정치의 지성』(1988) 『에밀, 에밀』(1983) 『여분의 사랑-17세기에서 20세기의 모성애의 역사』(1980) 『말레르브의 훈계』(1978) 등이 있다.
▶ 옮긴이 최석
1956년 광주 출생.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 및 동대학원 졸업. 프랑스 폴 발레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현재 한국외대에서 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말라르메-시와 무의 극한에서』가 있고, 엘리자베트 바댕테르의 『XY:남성의 본질에 대하여』, 단 프랑크의 『짧은 사랑, 긴 여로』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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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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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리뷰
남과 여의 구분을 넘어선 양성적 인간에 대한 대담한 비전
엘리자베트 바댕테르의 『남과 여 L’un est l’autre』(1986)가 최석씨의 번역으로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20세기, 남녀평등이 화두로 부각되면서 수천 년 동안 이어진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권, 즉 가부장 제도는 자취를 감추었고 그와 더불어 양성의 상호보완적 관계라는 전통적 모델도 붕괴되었다. 서구 사회 남성과 여성의 가치관과 행동에서 양성(兩性) 모두 그들 자신이나 상대 성에 의해 규정된 이미지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엘리자베트 바댕테르는 지난 역사의 오랜 시기를 일별해봄과 동시에 저명한 학자들의 이론에 근거하여 선사시대 이래 남녀관계의 진화에 관한 연구, 양성의 상호보완성, 남녀간 권력의 분배, 유사성의 관계 등을 성찰하면서 양성(兩性)의 서로 다른 얼굴들을 발굴해낸다.
생물학적 지배에 대한 반론과 유사성의 이데올로기
오랫동안 생득적인 것으로 정의되어온 남녀 각각의 고유 영역은 점차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전의 토대도 사라진 지 오래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변화는 우리의 행동과 가치관을 새삼 문제삼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이나 남녀의 본성 같은, 존재의 가장 내밀한 부분까지 근본적으로 뒤흔들어놓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의 불안은 “나는 누구인가?” “남성 혹은 여성으로서 내 정체성은 무엇인가?” “남성과 여성을 어떻게 구분지을 것인가?” “남성과 여성은 어떻게 공생해나갈 것인가?” 하는 존재론적 고뇌를 불가피하게 요청하고 있다. 상호보완 모델과 남녀 정체성의 개념이 단순한 이론의 차원을 넘어 생활세계의 근간에서 무너지고 있는 지금, 저자는 새로운 욕망의 진원지로 양성(兩性)의 유사성에 주목하여 남과 여가 아닌, 양성의 주체로 태어날 ‘새로운 인간’의 탄생, 그 대담한 비전 속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인간은 이제 더이상 이질적인 두 그룹으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점에서 닮기도 하고 구별되기도 하는 다양한 개성으로 조합된다”
역사의 특정 시기에 남성과 여성이 상호보완적 관계를 이루었을 때, 양성은 조화로운 공생관계를 유지했고, 역으로 상보성이 제약을 가해올 때는 폭력과 반목이 야기되었다. 남성은 여성이 없을 때조차도 여성과 대립관계를 형성했는데, 혹자는 이러한 대립양상에서 남녀관계의 본질을 파악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사회적 역할과 기능이 주어진 신체적 근원에 좌우되는 것을 철저히 배제하고, 오랫동안 부정되어온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양성성을 받아들이면서 남녀의 상이성을 엄밀하게 최소화하고 있다. 오늘날 남녀간 평등의 실현은 상호보완이라는 케케묵은 전형을 비판하고 남녀 정체성의 개념마저도 흔들어놓았으며, ‘양성의 유사성’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눈앞에 탄생시켰다. 평등의 문제는 이제 현격히 양성의 특수성의 문제로 옮겨가고 있으며 유사성의 모델은 권한의 문제를 해소시킨다.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 사이에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성적 통치가 우세했던 신석기 시대의 남성은 여성신을 경배했으며 상대적으로 남성의 권한은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이에 반해 가부장제가 절대적으로 군림했던 시기에는 남성이 주된 역할을 담당했고, 신성한 원리를 지녔다고 간주되었다. 레비 스트로스는 모권제와 모계 중심의 주거는 드물고 허위적인 예외일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모계 제도에 대한 부계 제도의 상대적인 우월성을 확신했다. 과거 일반적으로 부계제도는 가장 상류의 문화와, 모계 제도는 가장 미개한 사회와 상관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었고, 중세의 문헌은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것이 이단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이 시기에는 남녀의 전형적 특성을 구분짓는 반대의 논리, 즉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태동하면서 과거의 가부장적 권한은 점차 기반을 잃어갔고 자유, 평등 박애라는 세 원리가 복종, 계급, 부성(父性)이라는 이전의 가치를 밀어냈다. 그럼에도 성은 여전히 차별의 최후 기준으로 남아 있었으며, 법전은 남녀의 필수불가결한 상호보완성이라는 이유로 성적 불평등을 기정사실화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 여성이 참정권을 주장하고 정체성을 추구하기 시작하면서 여성들은 더이상 남성들 사이의 교환물품이기를 거부했다. 여성은 가정 외부 세계에 대한 소유권을 획득하면서 역할의 성적 분담을 파기시켰고, 옛날에 자신들만의 영역이었던 가정생활과 자동적으로 남성에게만 속해 있었던 직업생활 사이의 천 년 묵은 대립에 종지부를 찍었다. ‘남성은 지배적인 성인 반면 여성은 부차적인 성’이라는 이원론은 현대에 와서는 더이상 설득력을 지니지 못한다.
하나는 다른 하나다 - 남녀 양성의 도래
여성이 개인적 발현의 기회를 얻게 되면서 결혼의 의미도 이전의 전통적 의미를 상실했다. 현 시대는 양성의 원시적 분리의 시대가 아닌 양성이 모든 것을 공유하는 시대다. 평등을 위한 투쟁이 양성간 차이점들을 희석시켰고, 상호보완성의 도식은 양성의 유사성 앞에서 자취를 감췄다. 오늘날 서구 사회는 해부학이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전례없이 양성의 유사성에 특권을 부여한다. 생리학적 의학적 용어로 ‘남녀 양성’은 비정상적인 인간, 기형을 의미하지만 다양한 면에서 우리는 본래 양성의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남성은 남성다워야 하고 여성은 여성다워야 하는 교육이 그것을 억압했을 뿐이다. 양성적 인간은 남녀의 성을 가능한 최대한까지 화해시키면서도 모든 개인적 표현의 차이를 허용한다. 인간은 이제 더이상 이질적인 두 그룹으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점에서 닮기도 하고 구별되기도 하는 다양한 개성으로 조합된다. 커플의 개념에서도 우리는 자신을 훌륭한 통합의 반쪽 부분이라기보다는 두 개의 자율적 통합체로 보는 두 사람의 결합이라는 개념을 옹호한다. 결합을 통해 자신의 가장 사소한 부분도 희생하려 들지 않는 자아와 개인주의의 확대는 우리가 원하는 커플의 삶에 험난한 장애물이 되고 있지만, 여성들은 부단히 ‘나’를 찾기 위한 노력에 자신의 삶을 할애하고 있다.
죽을 때까지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아직 몇몇 사람의 특권이다. 게다가 그런 사람들의 숫자가 미래에 가서는 과거보다 적어질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러나 만일 커플의 삶이 참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른다면, 게다가 오직 실망만을 안겨준다면 사람들은‘자신만의 침대’의 온기를 선택할 것이다. 이런 자신으로의 회귀가 우리의 이기주의를 강화하고 새로운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주지만, 그것은 변화를 위해 우리가 치러야 하는 대가이다. 독립과 충만에 대한 의지와 이상적 융합에 대한 욕망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우리는‘무관심과 간섭’이라는, 상대에 대한 두 극단적 태도를 오간다. 그대와 함께 열기를 느낄 수 없다면 나는 나의 ‘자아’와 편안하게 살기를 택한다. 그러나 우리는 증오와 투쟁을 초래했던 옛날의 대립의 논리를 우리 뒤로 떨쳐버렸다.
열기와 온기 사이, 여분의 자리는 이제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본문에서
남과 여의 구분을 넘어선 양성적 인간에 대한 대담한 비전
"인간은 이제 더이상 이질적인 두 그룹으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점에서 닮기도 하고 구별되기도 하는 다양한 개성으로 조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