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욕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랑을 꿈꾸는 고독한 자유인의 초상!
근접조명한 현대인의 경쾌한 성(性)문법과 일그러진 내면세게!
사랑의 위기앞에 바치는 인류의 영원한 화두, 사랑이란 무엇인가
"두 사람이 구속과 자유에 대한 생각에 골몰할 때, 그들은 연인이 아니야. 사랑하는 사람은 구태여 자유에 대해서 생각할 여유가 없지. 사랑이 자유의 다른 이름인 까닭에."
원재길의 두 번재 장편소설 『그 여자를 찾아가는 여행』은 남녀간의 사랑에 있어서 완전한 자유를 추구하는 한 사내의 방황과 회귀의 여정을 통해 소유욕으로 빚어지는 사랑의 부자유와 자유로움으로 이룩되는 사랑의 아름다움을 근접조명해 보여준다. 그것은 자유라는 화두에 몸을 싣고 사랑의 둥지를 찾아가는 한 단독자의 따뜻한 마음의 발길이다.
자유는 생명이지만 소유는 사랑의 감옥이다.
작가 원재길은 1986년 시 동인지 『세상읽기』를 통해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 『지금 눈물을 묻고 있는 자들』을 펴낸 바 있고 탐욕과 위선 때문에 소박하고 훈훈한 삶의 풍경이 훼손돼가는 과정을 그려낸 장편소설 『겉옷과 속옷』을 출간했다. 그의 소설은 따뜻하면서도 조화로운 꿈과 환상의 세계를 통해 추악하고 어두운 현실의 이면을 밝히는 데 주력해왔다. 이번 소설은 욕망의 문제를 다룬 앞의 소설들과는 달리 남녀관계에 중점을 두어 자유로운 성(性)과 사랑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내면세계를 활달한 문체로 그리고 있다.
주인공인 나, 박준영은 영원한 자유인의 전형인 카사노바를 추앙하는 29살의 평범한 샐러리맨이다. 군대시절, 훈련 중에도 애인이름 대신 자유라고 외쳤으리니만큼 나는 구름 같은 마음의 자유를 꿈꿔온 자유인이다.
나는 서로를 구속하는 모든 형식의 사랑을 거부한다. 대부분의 사랑과 결혼은 사랑의 이름을 방지한 구속이다. 나는 주체할 수 없는 생득적인 기질의 부추김을 받으며 여자들 사이를 자유롭게 유영한다. 이 작품의 주요인물인 영어회화학원의 외국인 여강사, 후에 친구가 된 이혼녀 한지원, 연구소 동료인 윤정민 등도 나를 떠돌게 한 여자들 중의 한이다. 이 소설은 나와 그들과의 관계를 통해 현대인의 부박한 성 관념과 소유라는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는 사랑의 어둠과 빛을 돋을새김한다. 그의 여행의 종착지는 매혹적인 네덜란드의 여강사도, 광고 회사의 젊은 조감독인 이혼녀도 아니다. 그가 가닿는 곳은 바로 직장동료 윤정민의 품속이다. 그는 그곳에서 여행을 멈추고 단란한 가정을 꾸민다. 그러나 그들의 결혼생활은 사랑을 소유하려는 그녀의 옥망으로 인하여 서서히 파국으로 치닫는다.
한없이 자유로운 사랑을 찾아가는 먼 여행
이 소설은 단순히 그 여자를 찾아가는 주인공의 상처투성이의 삶만을 형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사랑을 찾악는 내면으로의 여행으로 주제를 심화시키면서 소설의 살집을 두텁게 좋?핵?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격심한 갈등과 아픔을 겪으며, 만신창이의 몸으로 힘겹게 서로를 최대한 존중해주는 사랑, 상대를 구속하지 않는 사랑의 처절한 아름다움에 도달한다.
그것은 잘 짜인 서사구조와 유머가 깃든 경쾌한 문체의 부축을 받으며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그러나 이 소설의 미덕은 단순한 재미 이상의 물음들을 소설의 살속 깊이 감춰두고 있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소유로부터 자유로운 사랑의 가능성과 사랑의 미묘한 역학관계, 그리고 현대인의 한없이 가벼운성관념 등으로 요약될 이들 물음으로 작품은 더더욱 빛을 얻는다.
먼저, 소설 속의 사랑은 끊임없이 실패를 되풀이하는 운명을 걷게 되는데,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소유하려는 그릇된 욕심의 결과임을 보여준다.
그 여자 윤정민과 나의 아늑해야 할 경혼생활은, 나의 과거를 알고 나를 잃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윤정민의 의부증적인 사랑의 표현방식으로 점차 빛이 바래어갔고, 나는 예전처럼 그녀로부터, 그녀의 소유욕으로부터 탈출을 감행한다.
대학시절, 네덜란드 태생의 영어회화학원 여강사와의 관계도 그렇게 끝났었다. 그녀와의 관계는 격정적인 정사를 통해 무한한 자유와 조건 없는 쾌락을 맛보는 게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자 나는 기겁을 하며 그녀로부터 탈출했다. 상대를 구속하지 않는 사랑을 굼꾸는 나에게 그녀가 보인 사랑에 대한 집착은 내 자유를 침해하는 일종의 폭력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한편 주인공의 여성 관계가 보여주는 사랑의 미묘한 역학관계는 이 소설에 ?른 묘미를 더해준다. 언제나 그렇듯이, 사랑은 두 사람 사이의 거리의 원근법(遠近法)위에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이다. 너와 나 사이의 거리가 근경(近景)을 이룰 때 사랑은 따뜻한 불꽃을 만들지만 거리가 원경(遠景)을 이룰 때 발화점을 찾지 못한 사랑은 성냥불처럼 소멸의 길을 걷는다. 그러나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일 때 tfd은 창살 없는 감옥 같은 불우한 환경을 만든다. 사랑은 두사람의 사이에서의 균형 취하기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균형 취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이 작품은 또 그렇게 반문한다.
또한 전통적인 도덕률의 바깥에서 새로운운 관념을 만들어가는 현대인의 참을 수 없는 성관념의 가벼움은 네덜란드 여자와의 관계라든지 주인공이 군입대 전에 사귄 장군의 딸을 통해서 그려진다. 그러나 그들이 보여주는 공통된 관심사는 정신이 거세된 육체에의 단순한 탐닉뿐이다. 그것은 불구의 사랑이자 마음의 진정성이 누락된 일그러진 사랑이고, 소모지향적인 사랑이다. 이 소설은 그러한 사랑의 방식에 결코 호의적인 태도를 허락하지 않는다. 성에서 시작하여 성으로 끝을 맺는 성찬(盛饌)의 허무를 지켜볼 뿐이다.
서로를 존중해주는 사랑, 상대를 구속하지 않는 사랑!
결국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유로운 성과 사랑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일그러진 성풍속과 내면세계를 통해 자유를 위협하지 않는 사랑, 오히려 자유의 폭을 넓혀주고 품격을 높여주는 사랑, 더 나아가 소유롭? 자유로운 사랑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모색한다. 또한 사랑은 관념 속의 유토피아가 아니라 상처로 얼룩진 상처 속의 유토피아임과 자신의 소유욕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는 한 현대인은 결국 행복한 자유인일 수밖에 없음을 형상화한 점 등은 이 소설의 깊이를 한층 밀도 있게 만든다.
작가는 "앞 소설이 욕망의 문제를 다루었다면 이 소설의 화두는 자유이다. 인간은 욕망만으로는 살지 못하며 자유만으로도 못 산다. 욕망이 물이라면 자유는 공기이다. 문제는 어떤 물을 마시고 어떤 공기를 호흡하며 사느냐에 달려 있다"고 이 소설에 대한 소감을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