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주의 욕망에 대한 완벽한 보고서
도박하듯 삶을 뒤바꿀 수 있을까. 파리에서 화랑을 경영하는 한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북극으로 떠난다. 허무하고 격렬한 변신의 욕망이 교활하다 싶은 절묘한 스토리 속에 감싸여 있는 이 소설은 방황, 도주, 부재, 배신, 거짓말, 그리고 예상치 못한 사건들의 연쇄다. 북극의 끔찍하고 새하얀 슬픔, 그 안에서 배회하는 고독한 존재의 권태는 파리에서 전개되는 미스터리한 연애 행각과 한치의 빈틈도 없이 꽉 맞물려 있다. 그는 과연 떠났는가. 추리소설을 읽듯 주인공의 익살스런 뒤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서 들끓고 있던 혼돈이 조용히 머리를 쳐든다.
독창적인 주제와 풍부한 유머, 그리고 압도적인 재미
전직 조각가인 주인공 페레는 파리에서 화랑을 경영하는 남자로 회의주의자이며 수동적인 현대인의 원형이다. 아내와 헤어져서 집을 나왔고 부진한 화랑 경영으로 고전하던 그에게 조수 들라에는 어느 날 그럴듯한 제안을 하나 한다. 50년대에 북극에서 난파된 보물선이 지금까지 방치되어 있는데, 침몰된 네칠리크 호에는 실로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의 어마어마한 에스키모 예술작품들이 실려 있다는 것. 한편 보물선에 관한 정보가 차츰 구체화되던 차에 들라에는 네칠리크 호가 수장되어 있는 위치를 페레에게 남긴 채 사라지고, 얼마 후 그는 들라에의 사망 소식을 전해듣는다. 무료한 일상을 벗어나 일탈 여행을 꿈꾸는 페레. 종착점은 북극이다. 그는 심장질환을 앓고 있어 건강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머나먼 북극으로의 여행을 감행, 천신만고 끝에 진귀한 보물들을 손에 넣는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뿐 어느 날 예술품들을 전부 도난당하고 마는 황당한 사건이 벌어지고, 범인 추적에 나선 페레가 죽은 줄로만 알았던 들라에와 재회하게 되면서 그 엄청난 음모의 전말이 밝혀진다. 파리에서의 일상과 북극 탐험이 교차되며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흥미를 더하는 이 소설은 주인공의 일탈 충동과 화려한 여성 편력, 삶을 바라보는 냉소 어린 태도가 기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한 기하학적으로 짜여진 소설 구조와 탐정소설적인 재미, 빙산을 가르며 북극으로 향하는 쇄빙선 등 눈앞에 펼쳐지듯 묘사되는 이국적 풍경들이 읽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명철하면서도 아이러니한 작가 장 에슈노즈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나는 떠난다』는 주제의 독창성, 읽기 쉬운 텍스트, 그렇다고 너무 선동적이거나 현대적인 것에 치우치지 않은 글쓰기, 압도적인 재미로 콩쿠르 상 수상작에 손색이 없다.
기이한 이야기로 변형된 현대적 삶의 단면,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존재론적 탈주
에슈노즈 소설의 힘은 아이러니, 조롱 따위를 양분으로 먹고 자란다는 데 있다. 그는 순결하고 세심하며 풍자적이면서도 교묘한 리얼리즘을 표방한다. 사물의 단편들을 긴밀한 구성과 미세한 묘사, 이국적 정취에 담아 하나하나 정련해내는, 비장하면서도 익살스런 분위기의 이 소설은 어디로 가는지 종잡을 수 없는 세기에, 그리고 그런 질문을 하는 것조차 잊고 사는 현 세대에 전하는 이별 공식과도 같다. 이 포착할 수 없는 오브제를 잡기 위해 그는 방황, 도주, 부재, 불확실한 정체성, 배신, 거짓에 이르기까지 관점을 확장시킨다. 삶이 마치 한 편의 기이한 이야기라도 되듯이 거장의 솜씨로 눈속임의 현실을 묘사하는 이 작품은 우리가 어떻게 현실의 의미를 잃게 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삶이 우리를 교묘히 피해 달아나는지를 이야기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소설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매력적이고 재미있다. 가히 최고라고 할 만하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순수하고, 섬세하고, 풍자적이면서 교활하기까지 하다. 단 한 페이지도 그냥 지나치기 힘들다. 『르 피가로 마가진』
세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그 뒤편에는 질식할 것 같은 삶의 보편성이 그득하다. 사르트르의 『구토』에 비견할 만하다. 비루함에 대처하는 장 에슈노즈 특유의 묘약은 바로‘익살’이다. 『르 피가로』
이 소설은 장 에슈노즈만이 찾아낼 수 있는 절묘한 이별 공식이다. 삶이 어떻게 우리를 교묘히 피해 달아나는지 정면으로 보여준다. 『르 몽드』
유머가 넘쳐흐른다. 가볍고 조롱기 섞인 문체에는 중후한 따스함이 배어 있다. 『렉스프레스』
겉은 견고하고 화려하게 빛나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모든 것이 어둠 속에 떨고 있다. 장 에슈노즈는 사려 깊은 침묵으로 그 어둠을 꿰뚫는다. 『마가진 리테레르』
"심사위원들은 말을 잊었다" 『르 몽드』
처음과 끝이 서로 조응하는 가운데 한 사내의 존재론적 탈주가 펼쳐진다. 간결하면서도 농밀한 문체, 서술 방식의 우아함, 삶에 대한 신중한 접근 등이 이 소설에 던져진 찬사다. 『조선일보』
추리적 기법을 동원한 절묘한 플롯에 뛰어난 유머까지, 매번 매혹적인 소설 세계로 독자를 사로잡아온 장 에슈노즈는 현대 프랑스 소설의 한 정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 정점에서 발표된 『나는 떠난다』는 심사위원들의 말문을 앗아버린 유례없는 극찬 속에 1999년 공쿠르 상의 영예를 안음으로써 다시 한번 전세계 독서계를 뒤흔들었다. 공쿠르 상 발표를 6일이나 앞당겨버릴 만큼 『나는 떠난다』는 "주제의 독창성과 풍부한 유머 감각"(선정 이유)에서 단연 최고의 경지로 평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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