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그림을 보면서 나는 스스로 치유되었다”
소박한 시골밥상처럼 지친 영혼을 채우고, 다독이고, 어루만지는 그림과 글
한국미술사를 전공한 전문가이기 전에 두 아이의 엄마이자 아내이자 딸인 저자. 이 책은 미술사이자 생활인으로서 저자의 역할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그것도 소소한 일상사에 한중일 세 나라의 그림과 우리 문화예술을 곁들여 묵직한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한다. 저자에게 그림은 생활과 동떨어진 별세계가 아니다. 일상에서 태어난 그림은 삶을 비춰주는 거울 같은 존재다. 따라서 일상 속의 그림 같은 이야기와 그림 속의 일상 이야기를 진솔한 필치로 들려준다.
*동양미술에세이 속에 깃든
치유와 위로
‘조정육의 동양미술 에세이’ 시리즈는 생활 속의 그림, 그림 속의 생활을 찾아주는 데 무게가 실려 있다. 따라서 그림 감상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누구나 보고 느낀 대로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는 것임을 저자가 먼저 보여주고자 시도한 작업이다.
제1권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가 에세이 속에 그림이야기를 녹인 형식이라면, 2권 『거침없는 그리움』은 ‘에세이 따로, 그림 따로’의 형식이다. 그런데 이들 두 권을 구성한 도판이 그림들이었다면 3권 『깊은 위로』에서는 그림은 물론 전국 각지를 답사하면서 만난 실제 풍경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이처럼 이 시리즈는 조금씩 형식적인 변화를 꾀하며, 독자와의 교감지수를 넓혀간다. 그런 가운데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엄마이자 아내이자 딸로서 저자의 내면풍경이 투명하게 펼쳐진다.
“(이 시리즈는) 아주 하찮아 보이고 평범해 보이는 일상을 통해서 삶을 돌아보고 성찰해보고자 하는 작업이다. (중략) 현재 두 권이 출판되었고 지금 세 번째 책을 채워나가는 중이다. (중략) 이 책 속에는 그림 설명보다도 내 개인적인 이야기가 훨씬 더 많이 담겨 있다. 그림이 결코 삶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아주 소소하고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나온다는 것을 확인해보고 싶어서 시작한 책이었다.”(「뜨겁게 살기」에서)
평균 2년에 한 권씩 출간되어 총 5권으로 갈무리될 이 시리즈는 한 여성 미술사가의 내면풍경이자 우리의 삶이 담긴 ‘인간극장’이다.
저자는 이번 책을 준비하면서 큰 깨달음을 얻는다. 그것은 글쓰기를 통해 치유된 자신의 발견이었다. 오랜 동안 가슴을 짓누르던 고통스런 지난날들이 글을 쓰고 그림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치유된 것이다.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나의 얼굴빛이 맑아졌다고 한다. 그랬을 것이다. 나의 가슴속에서 자라나던 독기가 빠져나갔으니 맑아지는 게 당연하다. 글은 나를 치유해준 의사이면서, 나를 누군가의 아픔을 치유해줄 수 있는 의사로 만들어준 셈이다. 이 놀라운 글의 힘이라니.”
이제는 자신의 치유를 통해 타인 또한 위로 받았으면 하는 바람을 피력한다. 사실 저자의 사적인 글을 읽다보면 독자도 공감하는 감동하는 가운데 ‘깊은 위로’를 받게 된다. 이 시리즈가 꾸준히 독자의 관심을 끄는 힘은 바로 이 점에 있다. 저자는 소박해서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못난 삶을 글과 그림으로 지긋이 껴안는다.
저자는 엄마이자 아내이자 딸로서 자기 생활에 충실한 한편 답사를 통해 부단히 자신을 충전시킨다. 그것은 못물처럼 고여 있는 삶을 갱신하고 지친 심신에 생기를 더하는 과정이다. 그 길에서 그림과 문화재와 제주도의 추사 김정희의 유배지, 화순의 운주사, 길상사, 제비원, 소쇄원 등이 동행한다. 1권부터 계속되고 있는 답사는 우리 문화의 진수를 현장에서 호흡하려는 열정의 표현이자 삶의 진경에 눈뜨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번 책은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일상 속의
따스한 위로
첫째는 일상의 소소한 면들을 통해본 깨달음의 세계다. 생활 속에서 크고 작은 상처를 입고, 그런 자신을 치유해 가는 저자의 모습을 접할 수 있다.
‘너무도 싫은 당신’이라고 부른 아버지에 얽힌 일화는 가슴을 뻐근하게 한다. 부모의 은혜를 모르는 안하무인이어서도 안 되겠지만, 못지않게 무조건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는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도 일종의 자기 폭력이다. 오래도록 강요되어온 이 관념이 어쩌면 많은 이들이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채 상처를 계속 키워나가게 했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아버지로부터 상처 받아 아팠다고 소리친 후에야 아버지를 향한 원망을 거둬들일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쉬이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저자의 진솔한 고백이 묵직한 공감을 전한다.
“다른 사람에게 힘이 되는 말 한마디 해주는 것. 곁에 있는 사람에게 따뜻한 눈길 한 번 주는 것. 내 시간을 할애해서 친절하게 전화 받아주는 것. 피곤할 때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통의 그릇을 보고 짜증내지 않는 것……. 그 모두가 하찮아 보여도 살아가면서 중요하게 실천해야 할 항목들이다.”(「우공이산과 티끌」에서)
“알고 보면 감동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되기 마련이다. 순수하게 남을 위해 뭔가를 해주는 것, 그것이 보살의 마음일 것이다. 올해 중학교 3학년인 조카가 타준 커피를 마시면서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다시금 배운다. 나도 누군가에게 조카 같은 마음을 줘야겠다. 아주 기쁘게 해줘야겠다.” (「뜨겁게 살기」에서)
“나이 들어간다는 것이 아름답다고 느껴질 때가 바로 지금 같은 순간이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갈팡질팡하고 있는 후배의 등불이 되어주는 것. 아름다움은 피부나 옷차림에만 있는 게 아니다. 화장기 없는 50대 아줌마의 모습이 처녀보다 더 아름다워 보인다.”(「최고 연봉과 최저 연봉」에서)
저자의 예민한 감각은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지하철에서 술에 취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고성을 지르는 사람, 테이크아웃 주스를 담은 플라스틱 컵, 아이들에게 구워주는 피자, 아이에게 입힐 헌 교복 고르기, 텃밭에서 뽑는 잡초 등에서도 삶의 진경을 놓치지 않는다.
또 마무리하지 못한 원고들을 들추거나 주식의 실패로 넋을 놓아버린 형부를 위한 굿판에서, 새벽녘 귀가하는 중년의 대리운전사의 뒷모습이나 영화 「황진이」를 보며, 또 뱃살이 늘어난 중년의 언니들의 몸에서, 저자는 그림을 떠올리고 삶의 의미를 길어낸다.
저자에게 세상은 한편으로는 ‘가해자’지만 한편으로는 모두가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다. 이때 글 사이에 배치된 그림과 풍경 사진은 내용과 직간접으로 연결되어, 인상적인 도판 설명과 함께 그 또한 흥미로운 읽을거리가 된다. 즉 내용과 대등한 관계에 있으면서 또 다른 텍스트로 내용에 추임새를 더하는 것이다.
*답사 속의
서늘한 위로
둘째는 답사 여행이다. 여기서는 미술사가로서 저자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추사의 제주도 유배지, 월출산 마애불과 월남사지 삼층석탑, 운주사, 길상사, 제비원, 운주사 등으로 발길이 이어진다. 하지만 답사 여행의 기록으로서 전문성을 살리되, 기본적으로 생활에세이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저자의 모습을 따라가며 저자의 마음 깊이 발을 담그게 된다.
서양미술에 비해, 특히 동양의 미술은 일부분 고행이 뒤따르는 경우가 많다. 많은 유적이 깊은 산에 있기 때문이다. 월남사지삼층석탑을 찾아간 후 그 길을 더 가 월출산에 올라 국보 144호인 마애불을 보러 가는 길은 도중에 되돌아가고 싶은 욕구를 잠재우기 힘들 정도로 힘들었다. 하지만 동양미술의 매력은 또 여기에 있다. 다리 근육이 딱딱해지고 등허리가 땀으로 뒤범벅이 된 후에라야 벼랑 같은 바위가 무성한 나무들 속에 숨겨진, 높이 8미터의 암벽을 깎아 만든 마애불의 절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꼭 산속에 있어서 답삿길이 힘든 것은 아니다. 몸이, 마음이 고달파 고행길이 되기도 한다. 몸살기가 있었지만 야나기 무네요시의 책을 읽다가 감행한 구름이 머무는 절 운주사행이나, 백석의 시를 읽다가 어둠을 뚫고 찾아간 길상사, 도로 곁에 있어서 그다지 힘들지 않지만 제비원에 있는 고려시대 마애불에서는 무자비한 공사를 벌이는 모습에 마음이 고달파졌다. 폭설이 내렸다는 기상예보에도 불구하고 나선 운주사 천불천탑도 그저 편안한 관광일 순 없다.
그러나 고행을 자처하기도 한다. 편안히 갈 수 있는 관광지인 제주도를 비행기를 제쳐두고 한겨울에 길고 험난한 뱃길로 찾아가기로 한 것은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로 떠나는 유배 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보고자 한 데 있었다. 명필 중의 명필로 인정받는 김정희에게 제주도 유배가 없었다면 그 명필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라 말하는 지은이는 제주도로 가는 배 화장실에 있는 낙서를 보며 긴 상념에 잠기기도 한다.
저자에게 부단한 답사 과정은 곧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한 행위임은 물론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돌아가면 내게 오는 모든 순간들을 감사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그것이 고통이든 즐거움이든 모두 받아들일 것이다. 나를 사람답게 만들어주기 위해 찾아드는 삶의 시간들을 결코 불평하지 않고 수용할 것이다. / 떠나온 곳의 소중함을 깨닫기 위해 떠나는 여행. 김정희를 만나고 온 길은 곧 나 자신을 찾기 위한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자신과 만나고 돌아가서 보는 내 삶터는 이전 같지 않을 것이다.“(「촌 늙은이의 제일가는 즐거움」에서)
*『깊은 위로』는 다음 책의
‘오래된 미래’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마음의 활력을 찾아온 저자는 이제 4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4권의 내용은 그야말로 현장에서 직접 본 동양미술을 소개하는 글”(「다시 여는 글」에서)이 될 것이라고 한다. 지금까지의 글이 국내가 무대였다면 4권부터는 앙코르와트나 몽골 같은 해외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곳에서도 저자의 기민한 관찰과 깊은 통찰과 사유는 광도를 읽지 않을 것이다. 국내에서 세계로! 이 시리즈는 길에서 길로 이어진다. 오체투지 하듯이 뜨겁게 나아가는 그 길은 저자의 삶을 넘어, 독자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진한 사유의 길이자 따뜻한 위로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