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은 투자가인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투자가로 손꼽히는 워런 버핏을 두고 이런 질문은 무의미해 보인다. 그러나 그의 생애나 투자 이력을 살펴보면 다른 투자가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면을 발견할 수 있다. 가치투자의 대가로 숭상되지만, 다른 유명한 투자가들처럼 자산운용사나 투신사를 운영하거나 펀드매니저로 활동했다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활발한 기업 인수 활동은 새로운 기업가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CEO 워런 버핏』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워런 버핏이 성공한 주식중개인에서 가치투자자로, 그리고 가치투자자에서 현명한 자본 배치가이자 탁월한 리더로 거듭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1965년, 워런 버핏은 부진을 면치 못하던 작은 회사 하나를 인수했다. 그리고 2008년, 연 매출 6억 달러의 조그맣던 방직회사 버크셔 해서워이는 연 매출 1,182억 달러, 직원 수 23만 3,0000명, 그리고 시가총액 1,960억 달러의 거대 기업으로 성장한다. 사업도 방직업에서 벗어나 보험업에서 에너지, 가구, 보석, 제화, 캔디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런 버크셔 해서웨이의 CEO이자 최대주주인 워런 버핏을 그저 위대한 투자자로만 생각한다면 그의 전부를 알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비전을 리더십으로 바꾸며
우리의 첫번째 임무는 이미 부를 거머쥔 유능한 사람들이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동기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돈 때문에 일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두번째 임무는 자본을 배치하는 것입니다.
버핏도 처음부터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단순히 펀드매니저에 머물 생각이 없던 그는, 자신의 투자조합의 자금으로 제분용 기계나 농기구를 만들던 뎀스터 밀즈를 인수하였지만 실패하기도 했다. 방직회사 버크셔 해서웨이를 인수하였을 때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면서 그는 올바른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과 일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고, 잘못된 마인드를 가진 사람의 행동방식을 바꾸기 매우 어렵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무엇보다도 직원들이 지속적으로 헌신하도록 하는 방법, 경영자와 임원들이 버크셔 해서웨이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하는 방법, 그리고 리더인 자신이 세운 원칙 을 경영자들이 지속적으로 준수하도록 하는 방법을 배웠다. 버핏은 상명하달식이 아니라 직원들 스스로 행동 규칙을 세워야 개인적인 동기부여가 가능해지고 능력을 계발할 수 있음을 배웠다.
단순한 투자자에서 자본의 배치가로
우리에게는 마스터플랜이 없습니다. 찰리와 나는 다양한 산업의 미래를 논하거나 가만히 앉아서 미래 전략을 구상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 우리는 다만 금융시장 전반을 분석하면서 이해할 수 있는 회사를 찾아볼 뿐입니다. 그리고 그 회사들이 지속적인 경쟁력이 있는지, 신뢰할 만한 경영진이 있는지, 가격이 합리적인지 알아봅니다.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다보면, 버핏에게는 투자자(investor)라는 말보다는 배치가(allocator)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버핏이 하는 일은 자금을 수익성 높은 곳에 투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자원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일에 더 가깝다.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자본의 경우도 운용의 범위를 중요하고 이해 가능한 한도로 축소하고 그 범위 안에서 대부분의 의사결정을 한다. 이른바 능력의 영역이 확실한 경우에만 운용을 한다.
그리하여 버핏은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장소에, 적합하다고 판단하는 시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하는 속도록 자본을 배치한다. 또한 다가오는 기회의 성격과 가치를 완전하게 파악한 다음 자본을 배치한다.
리더십을 넘어 오너십으로
그들은 항상 오너처럼 생각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경영자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입니다.
배치라는 단어와 함께 버핏을 규정짓는 또하나의 말은 오너십(ownership)이다. 버핏은 투자하거나 인수할 기업들의 경영자가 단순한 경영인이 아닌, 주인처럼 행동하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인수한 기업의 경영자들에게 끊임없이 오너처럼 행동할 것을 주문한다. 버핏 스스로를 버크셔 해서웨이의 경영자가 아니라 오너로 생각하고 있다.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주들에게도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는 경영자가 아니라 오너로서 보상을 받습니다.
버핏은 기업의 마스터플랜이나 구체적인 로드맵이 기업의 실적을 결정할 수 없다고 믿는다. 또한 경영을 통해 주가를 좌우할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적절한 가이드라인과 솔직한 성과 발표가 기업의 구성원과 주식시장 참가자들의 합리적인 행동을 유도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CEO 워런 버핏』은 탁월한 리더이자 현명한 자본 배치가의 진면목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책을 통해 버핏이 말하는 오너의 의미, 강요나 압박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방법, 훌륭한 직원을 조직으로 끌어들이는 방법, 그리고 주주들과 견고한 신뢰 관계를 구축하며 이를 바탕으로 주주들에게 놀라운 수익을 안겨주었던 비결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