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라는 허상에 집착하는 현대인의 심리를 꼬집다
탄탄한 기본기와 자신만의 관점을 두루 갖춘 뚝심 있는 신예 우메자와 슌의 단편집. ‘유토피아’에 대한 다수의 강박이라는 일관된 주제를 다양하고 재치 있게 변주했다. 아홉 가지 이야기들은 일관되게 ‘완벽한 행복’이라는 허상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현대인의 심리를 꼬집고 있다.
얼핏 평범한 학생이나 직장인이 등장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들로 보이는 각각의 단편들은 하나하나 엉뚱한 상상력과 판타지로 가득하다. 현실에선 변태성욕자로 손가락질 받을 법한 사람들까지 국가적 차원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관리해준다던가(「나오미 여왕님을 모시던 날들」), 인간의 증오가 특정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증상임이 밝혀진 후 백신 치료를 통해 지구상의 모든 분노가 사라졌다는 설정(「Hate Virus」), 전세계의 사람들이 서로에게 비밀이 없으며 모두 함께 고민을 나누는 따뜻한 세상(「이어진 세계」) 등, 작가는 다소 엉뚱한 유토피아를 제시한다.
이렇게 다양한 관점에서 유토피아를 제시한 후 작가는 이 유토피아의 균열과 모순을 보여준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건강하고 솔직하며, 모든 이를 사랑할 것을 강요받는다. 이 세계에서 개인의 취향이나 프라이버시는 번번이 무시당한다. 이런 유토피아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모든 것이 완벽한 이상적 세계에 대한 사람들의 강박관념을 비웃는다.
자연스럽고 소박한, 개별성이 존중받는 진짜 유토피아
이 책에서 유토피아란 한 사람의 지도자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많은 개개인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 사람들의 강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 사회에 한때 불어닥쳤던 ‘웰빙’ 광풍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보면 이런 작가의 속내에 고개가 끄덕여질 법하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소박한 것이 아닌 세상. 게다가 다수의 행복을 위해 개개인의 취향이나 개별성이 묵살되는 곳. 겉으로는 완벽해보이지만 인간미 없는 세상이 바로 이 책이 그려내는 유토피아다.
이 책의 마지막 단편 「누구를 위해서 거북은 존재하나」에는 자신의 소소한 불행 안에서도 세계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소년이 등장한다. 여전히 인간들의 어리석은 다툼이 계속되는 세상에서 소년은 “우주가 거북이건 토끼건 내가 알 게 뭐야. 중요한 건 내가 그애를 정말 좋아한다는 거야”라고 중얼거린다. 이것은 철없는 10대의 무심함이 아니다. 작가는 소년을 통해 누구보다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 주변의 것들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것. 소박한 진심에 개개인 미래의 행복이 담겨 있는 거라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