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비평, 언어의 미로를 탐사하는 지적 모험

문학평론가이자 서울대 국문과 교수인 권영민의 평론집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그간 『한국 현대문학사』『한국 현대문학 대사전』 등 우리 문학사의 큰 흐름과 맥락을 정리하는 의미 있는 저술활동을 계속해온 그는, 이번 평론집에서 개별 텍스트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종합을 통해 21세기 문학비평의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다. 텍스트의 과도한 확대해석과 작가주의적 해석을 경계하며 비평의 본령인 ‘작품’으로 온전히 되돌아가고자 하는 그의 평론은, 언어의 미로에 감싸인 문학 텍스트를 탐사하는 지적 모험으로 독자를 이끈다.

21세기 비평의 새로운 시학을 위하여

1부에서는 치밀한 어원 탐사와 방언 연구를 통해 김소월, 김영랑, 이육사, 정지용 등 민족시인들이 구사한 시적 언어를 분석한다. 작가가 생전에 발표한 원문을 텍스트로, 당시에 사용된 방언과 입말까지 집요하게 추적함으로써 지금까지 정설로 여겨졌던 시어의 해석에 의문을 제기한다.

2부에서는 지금까지 시인으로만 알려졌던 만해 한용운의 소설 작품과 한국 여성주의 문학의 한 획을 그은 소설 박화성의 작품을 탐구한다. 또한 타이포그래피를 활용한 실험시로 한국 시단에 큰 충격을 준 이상의 시 「출판법」과 「파첩」을 통해 서구적 합리주의에 대한 거대한 반역을 꿈꾼 이상의 시 세계를 논한다. 또한 지금까지 그 시적 대상이 무엇인지에 대해 비평계에 논란이 있어왔던 정지용의 난해시 「유선애상」론에서는 그 대상이 ‘자전거’라는 새로운 학설을 펼친다.

3부에서는 한국문학비평계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이어령의 『저항의 문학』에 대한 메타비평을 시도한다. 서간체로 쓴 이어령론에서 그는 ‘문학은 하나의 문화적 산물’이자 ‘문화적 현상’이기에, 문학비평 역시 ‘구체적이고도 개별적인 문화현상들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의 문화적 실천’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 이문구론에서는 작가가『우리 동네』와 『관촌수필』과 같은 작품에서 선보인 서사 양식을 통해 상황과 주제를 반복시키면서 총체적인 문제인식에 도달하도록 하는 연작성의 기법에 대해 논하며, 이에 더해 현대시에 시조의 형식을 도입하여 조오현의 시세계와 오세영의 시세계의 변모 양상을 짚어본다.

4부에서는 근대문학의 발자취를 좇으며 한국 문학사 연구의 방향을 가늠해본다. 저자는 여기서 한국문학에서 하나의 잘 짜인 통일된 질서를 발견하고자 하는 문학사 연구자로서의 욕망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문학사적 체계의 논리적 완결성에 집착한 나머지 한국문학의 다양성을 단순화시키거나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논한다.

이 책에서 권영민은 텍스트에 대한 정확 면밀한 해석으로 지금껏 비평계에 치열한 논쟁이 되어온 작품들에 대한 새로운 학설을 펼칠 뿐 아니라, 그 자신이 ´비평가의 목표´로 제시한 ´비평가의 자아에 대한 비전의 진실한 표현´으로 문학비평의 독자적 지위를 견고히 한다. 그가 이 책에서 ´문학의 양심´이라 규정한 문학비평. 이 책은 문학비평과 그 궁극적인 지점에 해당하는 ´문학사 연구´에 대한 날카로운 비전과 전망을 제시하는 평론집이다.

나는 문학비평이라는 것이 언제나 그 대상이 되는 문학 텍스트와 조화로운 짝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할 수 있을 때에만 비평은 문학의 전체적인 모습을 균형 잡아주고 그 가치의 영역을 확정해줄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비평적 방법의 확립이다. 비평은 다양한 모습으로 무질서하게 분산되어 있는 문학작품들을 대상으로 하여 그것들에 대한 체계적이고도 개별적인 인식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러나 결정론적 사고방식을 가장 경계한다. 문학비평은 다시 작품으로 떳떳이 돌아오고자 하는 목표에서 이루어지는 인식행위이기 때문이다.

문학사 연구는 문학비평의 궁극적인 지점에 해당한다. 문학사는 그 연구 대상이 되는 작품들에 대한 역사적 관련성과 그 시대적 위치를 규정하는 작업이다. 이 작업은 창작을 둘러싼 모든 사회 문화적 조건들을 검토하고 그 속에서 양식의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선결과제이다. 이때 무엇보다도 다양한 문학적 사실을 놓고 이루어지는 종합에 대한 감각의 중요성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나는 이 책을 문학비평의 방법과 실천을 놓고 고심하는 문학의 독자들에게 바친다. 그리고 문학비평이 하나의 새로운 ‘문화적 시학’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을 독자들과 함께 다시 생각해보고자 한다.

-책머리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