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천재 작가 에드거 앨런 포의 공포 단편선!
19세기 미국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추리소설의 선구자라 불리며 보들레르, 말라르메, 도스토옙스키 등 세계 문학의 거장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에드거 앨런 포는 그에 대한 현재의 평가에 걸맞지 않게 불운한 삶을 살았다. 「애너벨 리」를 비롯한 서정시와 추리, 풍자, 공포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드는 단편소설 등 세계 문학사에 길이 남을 수많은 작품을 남겼으나, 당대에 모국인 미국에서는 거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는 일생을 가난과 궁핍 속에 살았으며,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시달렸고, 음주벽에 빠져들기도 했다. 이러한 삶 속에서 형성된 작가의 어둡고도 음울한 분위기는 이 책에 실린 포의 대표작 「검은 고양이」「나락과 진자」「때 이른 매장」에 잘 드러나 있다.
세 단편을 관통하는 주제는 극한까지 치닫는 인간의 광기와 공포이다. 각각의 작품에 등장하는 화자 ‘나’는 사랑하는 고양이를 죽인 죄책감(「검은 고양이」), 서서히 숨통을 옥죄어오는 죽음(「나락과 진자」), 산 채로 땅 속에 묻힐 것에 대한 두려움(「때 이른 매장」) 때문에 광기에 사로잡히거나 스스로 만들어낸 망상에 갇혀 극도의 공포를 경험한다.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극대화된 공포, 그 순간 인간이 느끼는 감정에 대한 포의 치밀하고 날카로운 묘사는 읽는 이들마저도 함께 전율하게 만든다.
포의 음울함과 더불어 작품의 분위기를 이끄는 것이 바로 아르헨티나 화가 루이스 스카파티의 삽화이다. 2005년 문학동네에서 펴낸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에서 작품의 한 장면 한 장면을 더없이 ‘카프카적’으로 그려냈던 스카파티가 이번에는 포 작품의 어둡고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한층 돋보이게 하는 삽화를 선보인다. 아르헨티나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프랑스 등 각국의 신문과 잡지에 자신의 그림을 발표하고 있으며, 199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그림을 전시하기도 했던 루이스 스카파티는 무채색만을 이용하여 작품 속의 공포와 심리를 섬뜩하리만큼 예리하게 그려 보인다.
인간의 비이성적인 광기와 분노를 그린 「검은 고양이」
어릴 때부터 마음이 여리고 동물을 사랑했던 ‘나’는 어른이 되어 술을 접하고 나서부터 음주벽에 빠지고 점차 포악해져갔다. 어느 날 만취 상태로 집에 돌아왔는데 무척이나 아끼던 검은 고양이 플루토가 나를 슬슬 피하자 홧김에 고양이의 눈을 칼로 도려냈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에 휘말려 고양이를 나무에 매달아 죽인다. 그 후 플루토와 꼭 닮은 검은 고양이 한 마리를 집에 데려와 키웠지만, 고양이를 볼 때마다 자신이 잔인하게 죽인 고양이 플루토가 생각나 견딜 수가 없게 된다. 고양이에 대한 증오가 점점 커져가던 어느 날, 참을 수 없는 광기와 분노에 사로잡혀 고양이를 죽이려다가 실수로 아내를 죽인다. 아내의 시체를 지하실 벽 속에 넣고 바르는 가증할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나는 고양이가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 것에 행복해한다. 나의 광기는 경찰이 지하실을 수색할 때 절정에 다다른다. 아내의 시체를 숨긴 벽을 내 손으로 가리키고 만 것이다!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그 즉시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더이상 제정신이 아니었다. 나의 원래 영혼이 순식간에 내 몸에서 빠져나간 듯싶더니 술이 불러온 극악한 증오심에 나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어댔다. 나는 외투 주머니에서 주머니칼을 꺼내 그 가련한 짐승의 목덜미를 움켜잡고 한쪽 눈을 천천히 도려냈다! _ 본문 12쪽
어느 날 아침 나는 태연하게 고양이의 목에 밧줄을 채우고 나뭇가지에 매달았다. 고양이를 매달자니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면서 쓰디쓴 회한으로 마음이 미어졌다. 녀석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기에, 녀석이 나를 화나게 했을 리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녀석을 매달았다. _ 본문 14~15쪽
죽음의 고통보다 더한, 서서히 죽음을 ‘맛보는’ 고통 「나락과 진자」
‘나’는 재판을 받고 종교 재판소의 지하 감옥에 갇힌 채 의식을 잃었다. 깨어나보니 사방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죽음과도 같은 어둠의 공포 속에서 벽을 더듬으며 감방을 탐사하던 중 앞으로 고꾸라졌는데, 넘어진 곳은 바로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의 가장자리였다. 가까스로 살아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는 숨통을 옥죄어온다. 몇 차례 의식을 잃었다 깨어나보니 몸통은 나무틀 위에 묶여 있고 머리 위에는 무시무시한 칼날의 진자가 왕복운동을 하고 있었다. 진자는 진폭을 넓히며 천천히 나를 향해 아래로 내려오는데, 끝까지 내려온다면 칼날은 바로 내 심장을 스치고 지나갈 것이었다. 쉬쉿 소리를 내며 공기를 가르는 칼날 진자를 누워서 바라봐야만 하는 나는 거의 광기에 사로잡힌다. 기지를 발휘하여 감방 안의 쥐 떼를 이용해 그 끔찍한 칼날 밑에서 빠져나왔지만, 그 순간 사방의 벽이 뜨거운 불판이 되어 빠른 속도로 나를 향해 좁혀들기 시작했다……
아래로, 여전히 끊임없이, 여전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아래로! 나는 진자가 좌우로 왔다 갔다 할 때마다 헐떡거리며 몸부림쳤다. 그것이 진동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중략) 기계의 힘이 조금만 약해져도 그 예리하고 번쩍이는 도끼가 여지없이 내 가슴팍에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나의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것은, 나의 몸을 떨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희망이었다. 종교 재판소의 지하 감옥에 갇힌 사형수에게 속삭이는 그것의 정체는 바로 희망, 고문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희망이었다. _ 본문 57쪽
산 채로 매장당한 자의 생생한 경험담을 듣는다! 「때 이른 매장」
완전히 죽지 않은 상태, 의식불명의 상태에서 땅속에 묻힌다는 것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강직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는 ‘나’는 그 병의 특징상 가사(假死) 상태에 자주 빠져든다. 사망 징후와 크게 다르지 않기에 갑자기 그런 상태에 빠질 때마다 사람들이 나를 죽은 것으로 판단하고 산 채로 묻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이성을 잃을 정도다. 실제로도 그런 ‘생매장’은 적지 않게 일어난다는 기록이 있다. 프랑스의 한 여인이 ‘죽음과 매우 흡사한’ 상태로 공동묘지에 묻혔는데, 그녀의 머리카락이라도 간직하려던 한 청년에 의해 극적으로 구출된 일도 있었고, 언뜻 발진 티푸스로 사망한 것으로 보였던 영국인은 사체 해부를 열망했던 의사들 덕택에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
때 이른 매장에 대한 두려움으로 극심한 공포에 떨던 나는 그런 사태를 막기 위해 온갖 조치를 다 취했다. 그러던 어느 날, 관 속에 누워 있다는 느낌을 받고는 그동안 준비했던 조치들을 실행해보려 했지만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었다. 거리에서 갑자기 쓰러져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 땅속에 묻힌 것이 틀림없었다! 절망의 비명을 지르는 순간 갑자기 누군가가 나를 흔들며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산 채로 매장당하는 경우처럼 육체와 정신에 극도의 고통을 가하는 사건은 없다고 단언해도 무방할 듯하다. 참을 수 없는 폐의 압박감, 축축한 땅에서 올라오는 답답한 기운, 몸에 찰싹 달라붙은 수의, 비좁은 관, 칠흑 같은 어둠, 보이지는 않지만 손에 만져지는 벌레들, (중략) 참혹한 고통이 아직도 뛰고 있는 우리의 심장을 할퀴어댄다. 우리가 알기로 지구상에서 그처럼 끔찍한 고통은 없다. 지옥 중의 지옥에서 겪는 고통도 그처럼 끔찍한 고통에 비하면 그 정도가 절반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_ 본문 83~84쪽
▣ 2009년 4월 15일 발행
▣ ISBN 978-89-546-0791-9 03840
▣ 221*188(무선) | 108쪽 | 9,500원
▣ 책임편집 이은현 (031-955-2653, singing36@munha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