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지성인이 세련되고 균형 잡힌 눈으로 그려낸 "고운 아침의 나라"
그 찬란하고 슬픈 만화경!

대한제국을 종단하며 4년간 관찰한 결과를 남긴 이 책은 제국주의 일본의 엉큼하고 간교한 시선을 드러내며 조선의 황혼녘에서 그 상처를 마주하는 기록으로, 우리의 기억을 되살려낼 잊지 못할 풍경이 될 것이다.

프랑스 지성인이 4년간 머물면서 쓴 대한제국의 세밀한 관찰기

고고학자이자 철도와 광산 개발에 관련된 기술자문을 했던 에밀 부르다레가 1904년에 프랑스에서 펴낸 이 책은 1900년부터 몇 해에 걸쳐 한국에 머물면서 세밀화로 대한제국 구석구석을 탐방한 것을 기록한 결과물이다. 일기체에 가까운 문체로 선보인 『대한제국 최후의 숨결En Coree』은 대한제국이 일본과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하고,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사실상 이 나라의 실질적 통치권을 장악한 수치스런 1904년의 직전, 대한제국의 마지막 몇 해에 대한 관찰로서 주목할 만하다. 특히 그 자연과 환경, 제도와 문물, 사람과 사건을 그 무거운 시대적 분위기에도 날카로운 재치와 해학을 곁들여 써내려가고 있어, 옛날의 사실을 발견하는 기쁨과 더불어 기행문과 일기를 함께 읽는다는 즐거움을 주는 점이 매력적이다. 지명을 비롯한 고유한 이름들과, 당대인과 생활상을 재현하는 부분을 읽다보면, 끊어지고 빛바랜 필름을 복원해보는 듯 생생한 장면이 줄줄이 이어진다. 마치 온 가족이 모여 낡은 필름을 돌려보는 인상을 준다.

역사학자가 보는 이 책의 사료적 가치

일반인들이 이 책을 읽을 때 빛바랜 필름을 복원해 보듯, 옛날 앨범사진을 들여다보듯 하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면, 우리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의 경우 흥미로운 사료적 가치들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머리글을 쓴 전우용 교수는 "협률사 내부 구조와 공연 레퍼토리"(8장)가 사료적으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이라고 지적한다. 이 장면은 문학이나 공연예술사를 전공하는 이들도 자료상의 한계로 인해 그동안 잘 몰랐던 부분으로서, 내부 구조나 공연 장면, 그리고 당시 관람하러 왔던 관객, 심청전이나 광대놀이 등에 대한 공연 내용 등 자세한 묘사를 볼 수 있다. 그다음으로 궁중 연회 식순(4장) 또한 굉장히 상세하게 그려져 있어 자료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전차를 타고 교외로 놀러 나가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묘사한 부분은 단지 교통수단으로서만이 아닌, 이미 당시 "유람"이라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었음을 증명해주는 대목이다. 사격훈련을 받는 친위대 병사들의 어설픈 모습이나 길거리의 죄수들을 그린 장면은 전근대 시기의 마지막 불을 껌벅거리는 장면의 한 컷이다.

부르다레는 당시 경의선을 세우는 등 우리나라 철도가 놓이는 데 기술자문을 했던 인물이었다. 따라서 철도국에 대한 기록이나 특히 서울에서 개성 간, 평양 간 철도에 대한 기록은 짧지만 매우 중요한 기록이다. 외국인 조계지에 대한 것도 흔히 외국인이 쓴 조선에 관한 책이라면 나와 있지만, 조계지역의 댄스파티 등이나 외국인 공사관끼리의 교류 등은 흥미롭기 짝이 없다. 이처럼 부르다레의 이 책은 극히 단편적으로만 알려진 사실들에 대해 많은 것들을 "새로" 알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