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코끝 찡한 감동의 이야기
1950년대 멕시코의 작은 마을, 에란디는 고기잡이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습니다. 곧 있으면에란디의 일곱 번째 생일입니다. 하지만 에란디는 생일 선물로 옷과 인형을 받고 싶다고 엄마에게 얘기하지 못합니다. 가난한 엄마에게는 새 그물 살 돈이 더 필요할 테니까요. 그러나 에란디의 마음을 아는 엄마는 에란디에게 옷을 사 주고는 그물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이발소로 갑니다. 머리카락을 팔기 위해서지요. 마침 도시에서 머리카락 장수가 왔거든요. 잠시 후 두 사람은 에란디의 인형을 사러 다시 가게로 갑니다. 그물과 인형을 모두 살 수 있을 만큼 많은 돈이 생겼어요. 그런데 엄마의 머리카락은 그대로입니다. 이발소에서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멕시코의 파츠쿠아로 마을의 여자들에게는 숱이 많고 길게 땋은 머리가 큰 자부심이었습니다. 머리를 자르면 저주를 받는다는 믿음이 퍼져 있던 시절입니다. 그런데 이야기 속 에란디 엄마의 머리는 어깨 밑으로 조금 내려올 정도입니다. 가난한 살림 때문에 이미 머리카락을 팔았던 것이지요. 하지만 이번엔 에란디의 생일 선물과, 고기잡이를 위한 그물을 마련하려고 또 다시 머리카락을 자르기로 결심합니다. 이를 몰랐던 에란디는 자신의 머리를 자를까 봐 가슴 졸이다 엄마의 뜻을 알게 되고, 나중에는 선뜻 자기 머리를 팔겠다고 나섭니다.
에란디는 가난한 엄마에게 생일 선물 얘기를 하지 않을 정도로 속이 깊고 따듯한 아이입니다. 생일날, 에란디는 엄마의 희생과 용기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엄마를 위해 자신의 머리를 기꺼이 팔기로 합니다. 이 일로 속상해하며 눈물 흘리는 엄마를 위로할 줄도 알고요. 에란디는 엄마에게서 더 큰 사랑에 대해 배운 거예요. 마지막에 두 사람은 생일 선물을 사러 다시 가게로 갑니다. 그림에는 뒷모습이 나오지만 우리는 에란디와 엄마가 환하게 웃고 있을 거라는 걸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살면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떤 가치가 더 소중한 것인지 얘기해 줄 수 있는 그림책입니다. 책을 읽어 주는 어른들은 불과 몇 십 년 전 우리나라에도 있었던 머리카락 시장을 떠올리며, 이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데서 오는 또 다른 감동과 울림도 만나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정제된 글과 그림, 긴 여운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멕시코 출신의 작가 안토니오 에르난데스 마드리갈은 그의 오랜 꿈대로 멕시코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는 자기에게 꼭 맞는 옷을 입은 듯 과하지 않고 차분한 분위기를 품고 있습니다. 자분자분한 이야기 속의 작지만 감동적인 반전은 오랫동안 이 이야기를 떠올리며 되새기게 하지요. 담담하면서도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그림 작가 토미 드 파올라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직접 멕시코를 방문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그림은 여느 때보다 좀 더 강렬한 색을 써서 멕시코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재현했습니다. 칼데콧 아너상을 받은 바 있는 토미 드 파올라의 열정과 실력을 감상할 수 있는 그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