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사랑
- 원서명
- L´Amour
- 저자
- 쥘 미슐레
- 역자
- 정진국
- 출판사
- 글항아리
- 발행일
- 2009-07-06
- 사양
- 478쪽 | 133*200 | 신국판 변형 | 무선
- ISBN
- 9788993905007
- 분야
- 에세이/비소설, 역사, 고전, 철학/심리/종교, 미술/디자인
- 정가
- 16,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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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여자의 사랑L´Amour』(1859)에 대하여
"여자라는 종교"를 믿고 떠받들자면, 여자에 대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교리문답이라 할 수 있는 이 경전을 읽어야 그 신전과 제단 앞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위대한 역사가, 쥘 미슐레의 『여자의 사랑』(원제 L"amour)은 1859년에 파리에서 출간되었다. 그 뒤 지금까지도 수많은 이본으로 속간되고 있다. 이 책은 프랑스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지구촌 여러 고장에서 150년 가까이, 여러 세대에 걸쳐 "사랑을 다룬 고전 중의 고전"으로 즐겨 읽혀 왔다.
출간 당시 이 책은 외설스럽다는 평가를 받았고, 엄숙한 보수주의자들이 금기시할 만큼 요란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저자가 인간의 자연스런 본능, 자연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본능의 전모를 꼼꼼하게 합리적으로 파헤치려 했기 때문이다. 또 그 중심이 바로 역사적으로 가장 이해받지 못하던 여자였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혁신적 사회사상과 함께 병원의 임상을 통해 해부학과 생리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요즘으로 치자면 생명공학 연구와 비슷하게, 생명의 탄생과 죽음에 대한 온갖 수수께끼가 밝혀지던 차였다.
일각에서는 저자가 이 책으로 "사랑이라는 새로운 예술의 씨"를 뿌렸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저자는 그때까지 기존의 이념, 학문, 예술 그 어떤 것도 사람이(혹은 동물조차) 살아가면서 가장 소중히 여길 사랑에 대해 몽매한 신비주의적 자세로 일관했다고 여겼고, 이에 계몽적인 입장에서 이 책을 썼다. 저자가 이 책을 구상하고 사람들의 육성 증언 등 자료를 수집한 기간은 거의 25년에 이른다.
성스러운 임신으로 인류를 계속 살아남게 하는 과업과 또 엄연히 자연스러운 일인 모든 여자의 생리적·심리적·사회적 활동은 당시 무지와 억측, 궤변과 형이상학으로 억압되었다. 그런 세태를 목격한 미슐레는 사랑의 신이 살아나야만 우울한 세상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보았다.
저자는 당시 막 보통 교육을 받기 시작했지만, 여자가 읽을 만한 유익한 교양을 주는 책이 별로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소설류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지만, 그런 순수문학의 감상주의와 공상이 여자의 이성을 깨우고, 사랑을 제대로 이해하고, 삶을 더욱 행복하게 이끄는 데 방해가 되거나 해롭기도 하다고 저자는 생각했다.
더군다나 역사조차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역사는 교회와 왕실이나 국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정치·경제·혁명 등의 거창하고 화려하며 피비린내 나는 남성 영웅들의 극적인 사건 위주로 기록되었고, 역사에서 "작고, 소박하고, 민중적인" 세계는 대부분 소외되었다. 그로서는 이런 것이야말로, 즉 여성이 일구는 우리의 가정생활이야말로 영웅적으로 역사를 움직이는 거대한 바탕이며, 그 동력은 사랑, 특히 여자의 사랑이라고 보았다.
그는 이렇게 남성적 시각 위주의 반편의 역사에서 제외된 자연의 역사라는 큰 주제로 일련의 새로운 역사 쓰기를 시작했다. 그 작업은 1856년 『새』에서 시작해서 1867년 『산』으로 마감되었는데, 이 가운데 바로 『여자의 사랑』과 그 속편 『여자의 삶La femme』이 절정을 이룬다.
화려하고 근엄한 숙녀와 부인들, 수녀들은 장벽을 허물고 이웃의 역사학자에게 숨은 상처를, 피멍이 든 가슴을 열어 보였다.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곳을 본 미슐레는 "달리고, 헤엄치고, 기어오르고, 날아오르며" 사랑을 다룬 고전 중의 고전인 이 책을 써냈다.
저자의 개인적인 강력한 동기도 있었다. 쿠데타로 집권한 나폴레옹 3세에 반대해, 한때 이탈리아로 떠나 생활하기도 했던 어려운 시기였다. 그런데 미슐레는 얼마 전 재혼한 아내와 더불어 삶과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열정을 불태우게 되었다. 서른 살 가까이 나이 차가 났던 젊은 아내는 대단히 명석한 사람이었는데, 미슐레는 이 부인과 스위스, 이탈리아, 남프랑스 등지를 누볐다. 그리고 그곳들에서 자연을 관찰하고 사람을 만나면서, 외롭고 의기소침해질 수도 있었던 남편이 새로운 자연의 역사를 집필하는 데에 큰 도움을 주었다.
이런 배경 때문일까. 저자는 "르네상스"라는 개념에 내세우기도 했지만, "회춘"과 제2의 청춘을 유난히 역설한다. 또 "소박한 한 여자"를 가상으로 내세운 이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우선 저자의 가슴에 넘치는 절절하고 고우며, 영원히 시들지 않을 듯한 사랑이 느껴진다. 그 진솔한 고백은 현재 우리의 정서로 미루어 다소 어색하게 다가오는 부분에서조차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영원한 수수께끼이자 영원한 믿음 같은 것인 사랑의 정체와 본질을 이해하려 노력하면서, 우리는 우선 다시 한 번 저자를 따라 어두운 그 중심인 모성의 뱃속으로 들어가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여자라는 종교"를 믿고 떠받들자면, 여자에 대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교리문답이라 할 수 있는 이 경전을 읽어야 그 신전과 제단 앞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본문에 나오는 그림을 가능한 한 원색 도판으로 찾아 실었다. 또 본문 속의 단색 도판에서 각 장의 머리에 저자의 동포로 같은 시대를 살았던 낭만파 화가, 샤세리오의 그림을 붙였다. 본문에 수록한 무명 화가의 판화는 훗날 다른 판에 수록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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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1798~1874) 프랑스 역사가. 농촌 출신의 어머니와 공화주의자로서 개신교도이고 인쇄업을 했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소년기에 나폴레옹의 언론 탄압으로 집에서 운영하던 인쇄소 문을 닫고 시련을 겪었다. 뛰어난 학창 시절을 거쳐 20대 초반에 교수자격을 얻었다. 국립고문서보관소에서 근무하고 고등사범학교와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를 역임하였다. 30여 년에 걸쳐 저술한 『프랑스 역사』를 비롯해 방대한 『프랑스 대혁명사』 등 수많은 걸작을 남겼다. 프랑스를 한 사람의 인격처럼 다루었다는 프랑스 민족주의 역사의 거장으로 통한다. 중세사와 여성사의 선구자로서 역사에서 정치사 등 남성적 성향을 지양하고, 자연사를 개척해 양성의 조화를 꾀했다. 르네상스, 잔 다르크 등을 되살렸고, 독창적인 문체로 역사를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냄으로써 역사 대중화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교회·국가 등 기존 권력의 무지몽매성과 반민중성을 극히 혐오하고, 작고 소박하고 억압받는 인간과 만물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역사를 보는 사상을 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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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문
1. 사랑은 드라마가 아닙니다 | 2. 사랑의 자매, 죽음 | 3. 25년간 구상한 청년에게 줄 참사랑 이야기 | 4. 독신생활의 폐단과 가족의 힘
제1부 사랑의 대상
1. 여자에 관하여 | 2. 여자는 환자입니다 | 3. 여자는 일하지 않아야 합니다 | 4. 남자는 두 사람 몫을 벌어야 합니다 | 5. 부자 색시와 가난한 색시 | 6. 프랑스 여자를 잡아야 합니까? | 7. 여자는 정착과 사랑의 심화를 원합니다 | 8. 당신은 자기 여자를 만들어야 합니다―그러면 여자는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 9. 한 사람의 여자를 창조할 수 있을까요?
제2부 하나가 되는 길
1. 목동의 집 | 2. 결혼 | 3. 결혼식 | 4. 깨어나기―집 안의 젊은 안주인 | 5. 집안 단속 | 6. 식탁 | 7. 서로 돕는 두 사람 | 8. 위생과 건강 | 9. 정신적 수태 | 10. 정신적 배태기에 관하여
3부 사랑의 화신
1. 개념 | 2. 임신과 감사의 마음 | 3. 임신에 따른 결과: 경쟁자 | 4. 출산 | 5. 산후 조리
4부 사랑의 번민
1. 수유와 젖떼기 | 2. 경박한 사람 | 3. 아들의 젖을 뗀 젊은 엄마 | 4. 바깥세상에서―남편은 기가 죽었을까? | 5. 거미와 파리 | 6. 유혹 | 7. 상담자를 위한 장미 한 송이 | 8. 마음의 치료 | 9. 신체의 치료
5부 다시 젊게 찾아오는 사랑
1. 여자의 두 번째 청춘 | 2. 아내는 남편의 섭생과 즐거움을 처방하고 다스립니다 | 3. 아내는 남편의 마음을 세련되게 하거나 영감을 줍니다 | 4. "늙은" 여자란 없습니다 | 5. 가을의 동경 | 6. 통일(하나로 결합이 되었을까?)
7. 죽음과 애도 | 8. 죽음을 넘어서는 사랑
주해
비망록
1 이 책의 개괄 | 2 우리가 여전히 사랑할 수 있다는 생각이 무리일까요? | 3 과학으로 재활하고 용서받는 여자
4 참고 자료에 관하여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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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리뷰
“이런 질문이 필요하다. 우리는 왜 지금까지 미슐레를 읽지 않았나?”
▲ 르네상스라는 용어를 만든 19세기의 걸출한 역사학자
쥘 미슐레는 랑케, 부르크하르트 등과 더불어 19세기 유럽 역사학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로 재임하며 17권짜리 『프랑스사』와 7권짜리 『프랑스 대혁명사』 등 굵은 걸작을 무수히 남겼다. 근대 역사학 서술의 개성적인 전범을 구현한 그는 ‘르네상스’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어낸 것으로 종종 회자한다. 16세기의 유럽을 연구하다가 그 찬란한 시대정신에 ‘재생’과 ‘부활’이란 뜻을 지닌 ‘르네상스’라는 이름을 붙인 미슐레는 역사적 상상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동시대인들에게 변혁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으며, 역사와 문학의 경계를 오가며 ‘문필가로서의 역사가’라는 이미지를 최초로 각인시킨 작가이기도 했다. 역사를 대하는 태도, 사물과 대상에 대한 독특한 거리두기, 에쎄의 진한 향기가 피어오르는 독특한 글쓰기는 일찍이 롤랑 바르트의 주목을 받아 바르트 초기저작의 목록에 미슐레의 이름을 올렸으며, 헤이든 화이트와 같은 역사이론가들에 의해 명료하게 그 역사적 위치가 조명된 바 있다. 헤겔 이후 말하기로서의 역사를 심도 있게 고민한 첫 세대로서 말이다.
▲ 왜 미슐레의 방대한 저작은 한권도 소개되지 않았을까?
놀라운 것은 르네상스라는 말을 만든 미슐레의 저작이, 프랑스인들이 아직 단 한권도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이것은 일종의 문화충격이지만 그 맥락을 전혀 짐작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의 주요 저작이 너무 거질巨帙이라는 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기보다는 사실의 충실한 재현과 인간본성의 메시지에 골몰한 그의 역사관이 이론적 매력이 덜하다는 점, 1960년대 신좌파의 흐름 속에서 쁘띠 부르주아적이라는 평가를 일부 받았다는 점 등을 떠올려볼 수 있다. 그런 현실적 한계와 주저함의 태도를 우리는 너무 길게 끌어버렸다. 게다가 아직도 전혀 극복되지 않고 있다. 가령, 서양 중세의 ‘마녀’라는 존재를 다룬 역사서를 처음 쓴 사람은 미슐레이지만, 우리는 마녀라는 주제를 이성이 비이성을 배제하고 처벌하는 푸코적 관점이나, 한 사회체제가 유지되기 위한 희생양이라는 지라르적 관점에서만 이해할 뿐이다. 미슐레가 마녀를 바라본 관점은 ‘우리의 맥락’에 포섭될 수 없는 철지난 19세기 유럽의 낭만적인 역사적 상상력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일까?
▲ 사랑, 여자를 다룬 고전 중의 고전
하지만 역사가의 중요한 덕목은 사료를 광범위하게 판독하는 것, 그것을 인간 본성과 사회시스템의 교집합 속에서 정치하게 읽어내는 것, 그 결과를 삶의 전망과 연결시키는 것이라면 미슐레야말로 우리의 때늦은 고전공부의 첫머리에 올라와야 할 주인공이다. 비록 방대한 정사 작업은 요원하다 할지라도, 후기의 미슐레가 남긴 주옥같은 서정적 테마종목들은 탐나는 읽을거리다. 『새』 『바다』 『산』 『여자』 『사랑』과 같은 저작이 그것이다. 미슐레는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이와 같은 단일 주제의 역사를 하나하나 완성해나가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의 우리가 보기에도 중요하고 매혹적인 주제들이다. 미슐레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매일 접하고, 고민하고 사는 주제들에 대한 균형 잡힌 교양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특히 배배꼬인 철학의 요설과 문학의 지극히 감상적인 표현으로 인해 인간의 감정과 삶의 에너지가 낭비되고 버려지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꼈다. 미슐레는 이와 같은 주제들에 대해 방대한 민족지를 구성한 다음, 이것을 동시대인들의 삶과 심리 속에 투영시킴으로써 철학적 변죽과 문학적 과장을 벗어나 자신에게 주어진 주제를 향한 큰길을 닦아나가고자 했다.
이번에 국내에는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소개되는 미슐레의 저작은 위에서 말한 『사랑』과 『여자』다. 이 두권의 책을 통해 우리는 민중들의 삶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을 통해 근대 프랑스 사학의 틀을 잡은 미슐레의 인간적인 고뇌와 특출한 교양을 엿볼 수 있다. 통찰한 번역서의 제목은 『여자의 사랑』과 『여자의 삶』으로 정했다. 두 권이 각각 따로 출판되기는 했지만, 모두 ‘여자’라는 존재를 해명하는 작업의 일환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껏 여자와 사랑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무수히 많은 입장이 표명되어 있고, 그 난해함과 모호함에 대한 무수히 다양한 표현들이 있지만, 미슐레의 이 두권의 책은 여자와 사랑을 가슴으로 머리로 정확히 이해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만약 독자가 이 책의 집필동기에 동의한다면 실망할 일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 상처받은 영혼의 소울 메이트
- 『여자의 사랑』과 『여자의 삶』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한번쯤 생각해보게 되는 그 둘에 대한 상념, 그리고 생활에서 한번쯤 맞닥뜨리게 됨직한 웬만한 상황, 그리고 적절한 조언이 잘 어우러진 백과전서적인 측면과 심리치유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
- 그것은 중세시대의 마녀를 비롯해 역사 속에서 이해받지 못하고, 존중받지 못하고 사라져간 여인들에 대한 미슐레의 연민과 남성 중심적인 세계이해와 사회구조에 대한 반감은 이 책이 착상되고 완성되기까지 25년이나 걸렸다는 점에서 충분히 드러난다.
- 또한 시집을 앞둔 과년한 딸을 둔 미슐레는 자신의 사위에게 들려주는 심정으로 이 책을 썼다. 나이 지긋한 노교수가 젊은 사람을 앞에 두고, 어쩔 수 없이 얄팍한 삶의 경험으로 인해, 그리고 어쩔 수 없는 격정으로 인해 판단을 그르치게 되는 상황들을 예로 들어서 읽는 사람이 수긍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힘이 탁월하다.
- 무엇보다 이 책은 역사학 교수가 썼다고는 믿겨지지 않을 만큼 여자의 생리학적 특성과, 그에 기반을 둔 정서적인 요소들에 대한 섬세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 있다. 어떤 이념과 탄압과 변화하는 사회구조도 바꾸어놓지 못한 여자만의 고유한 특징이 무엇이고, 왜 그것이 위대한 사랑의 힘의 원천이 되는 지를 이 책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여자의 사랑L´Amour』(1859)에 대하여
"여자라는 종교"를 믿고 떠받들자면, 여자에 대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교리문답이라 할 수 있는 이 경전을 읽어야 그 신전과 제단 앞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위대한 역사가, 쥘 미슐레의 『여자의 사랑』(원제 L"amour)은 1859년에 파리에서 출간되었다. 그 뒤 지금까지도 수많은 이본으로 속간되고 있다. 이 책은 프랑스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지구촌 여러 고장에서 150년 가까이, 여러 세대에 걸쳐 "사랑을 다룬 고전 중의 고전"으로 즐겨 읽혀 왔다.
출간 당시 이 책은 외설스럽다는 평가를 받았고, 엄숙한 보수주의자들이 금기시할 만큼 요란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저자가 인간의 자연스런 본능, 자연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본능의 전모를 꼼꼼하게 합리적으로 파헤치려 했기 때문이다. 또 그 중심이 바로 역사적으로 가장 이해받지 못하던 여자였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혁신적 사회사상과 함께 병원의 임상을 통해 해부학과 생리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요즘으로 치자면 생명공학 연구와 비슷하게, 생명의 탄생과 죽음에 대한 온갖 수수께끼가 밝혀지던 차였다.
일각에서는 저자가 이 책으로 "사랑이라는 새로운 예술의 씨"를 뿌렸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저자는 그때까지 기존의 이념, 학문, 예술 그 어떤 것도 사람이(혹은 동물조차) 살아가면서 가장 소중히 여길 사랑에 대해 몽매한 신비주의적 자세로 일관했다고 여겼고, 이에 계몽적인 입장에서 이 책을 썼다. 저자가 이 책을 구상하고 사람들의 육성 증언 등 자료를 수집한 기간은 거의 25년에 이른다.
성스러운 임신으로 인류를 계속 살아남게 하는 과업과 또 엄연히 자연스러운 일인 모든 여자의 생리적·심리적·사회적 활동은 당시 무지와 억측, 궤변과 형이상학으로 억압되었다. 그런 세태를 목격한 미슐레는 사랑의 신이 살아나야만 우울한 세상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보았다.
저자는 당시 막 보통 교육을 받기 시작했지만, 여자가 읽을 만한 유익한 교양을 주는 책이 별로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소설류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지만, 그런 순수문학의 감상주의와 공상이 여자의 이성을 깨우고, 사랑을 제대로 이해하고, 삶을 더욱 행복하게 이끄는 데 방해가 되거나 해롭기도 하다고 저자는 생각했다.
더군다나 역사조차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역사는 교회와 왕실이나 국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정치·경제·혁명 등의 거창하고 화려하며 피비린내 나는 남성 영웅들의 극적인 사건 위주로 기록되었고, 역사에서 "작고, 소박하고, 민중적인" 세계는 대부분 소외되었다. 그로서는 이런 것이야말로, 즉 여성이 일구는 우리의 가정생활이야말로 영웅적으로 역사를 움직이는 거대한 바탕이며, 그 동력은 사랑, 특히 여자의 사랑이라고 보았다.
그는 이렇게 남성적 시각 위주의 반편의 역사에서 제외된 자연의 역사라는 큰 주제로 일련의 새로운 역사 쓰기를 시작했다. 그 작업은 1856년 『새』에서 시작해서 1867년 『산』으로 마감되었는데, 이 가운데 바로 『여자의 사랑』과 그 속편 『여자의 삶La femme』이 절정을 이룬다.
화려하고 근엄한 숙녀와 부인들, 수녀들은 장벽을 허물고 이웃의 역사학자에게 숨은 상처를, 피멍이 든 가슴을 열어 보였다.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곳을 본 미슐레는 "달리고, 헤엄치고, 기어오르고, 날아오르며" 사랑을 다룬 고전 중의 고전인 이 책을 써냈다.
저자의 개인적인 강력한 동기도 있었다. 쿠데타로 집권한 나폴레옹 3세에 반대해, 한때 이탈리아로 떠나 생활하기도 했던 어려운 시기였다. 그런데 미슐레는 얼마 전 재혼한 아내와 더불어 삶과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열정을 불태우게 되었다. 서른 살 가까이 나이 차가 났던 젊은 아내는 대단히 명석한 사람이었는데, 미슐레는 이 부인과 스위스, 이탈리아, 남프랑스 등지를 누볐다. 그리고 그곳들에서 자연을 관찰하고 사람을 만나면서, 외롭고 의기소침해질 수도 있었던 남편이 새로운 자연의 역사를 집필하는 데에 큰 도움을 주었다.
이런 배경 때문일까. 저자는 "르네상스"라는 개념에 내세우기도 했지만, "회춘"과 제2의 청춘을 유난히 역설한다. 또 "소박한 한 여자"를 가상으로 내세운 이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우선 저자의 가슴에 넘치는 절절하고 고우며, 영원히 시들지 않을 듯한 사랑이 느껴진다. 그 진솔한 고백은 현재 우리의 정서로 미루어 다소 어색하게 다가오는 부분에서조차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영원한 수수께끼이자 영원한 믿음 같은 것인 사랑의 정체와 본질을 이해하려 노력하면서, 우리는 우선 다시 한 번 저자를 따라 어두운 그 중심인 모성의 뱃속으로 들어가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여자라는 종교"를 믿고 떠받들자면, 여자에 대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교리문답이라 할 수 있는 이 경전을 읽어야 그 신전과 제단 앞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본문에 나오는 그림을 가능한 한 원색 도판으로 찾아 실었다. 또 본문 속의 단색 도판에서 각 장의 머리에 저자의 동포로 같은 시대를 살았던 낭만파 화가, 샤세리오의 그림을 붙였다. 본문에 수록한 무명 화가의 판화는 훗날 다른 판에 수록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