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상 시인이 동시를 써 온 지 30년이 됩니다. 그 시간의 깊이만큼 그의 동시 세계는 폭넓습니다. 순수한 자연과의 교감, 우리의 역사와 민중의 삶 의식, 가족과 이웃에 대한 깊은 애정, 기발하고 활달한 동심의 세계 등 참으로 다양합니다. 그중 소외받고 보잘것없는 대상을 바라보는 애틋한 시선과 동화적 발상으로 빚어 낸 햇빛처럼 눈부신 지혜의 소리는 읽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북돋아 줍니다. 이번에 나온 열네 번째 동시집 『잘 커다오, 꽝꽝나무야』는 동시를 써 온 30년, 그가 의미 있게 추구해 온 동심의 탐구와 시적 사유의 확장 과정을 잘 보여 주는 아주 특별한 동시집입니다._김용희(아동문학 평론가)
시력 30년을 정리하다. 곰삭고 속 깊고 폭넓은 시를 모은 동시집
권영상 시인은 강원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뒤 30년 동안 우리 동시 문학을 이끌어온 큰 나무다. ‘가족 해체의 시대에 짐을 지고 어렵게 살아가는 아이들을 보듬는 시, 산업화된 사회에서 변두리로 밀려난 보잘것없는 것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시’ 이것이 시인이 시를 통해 추구하는 가치였고 그의 시를 대표하는 말이 되었다. 시인은 30년이라는 만만치 않은 기간 동안 하루도 작품 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켜켜이 쌓인 시간을 정리하듯, 이번에 『잘 커다오, 꽝꽝나무야』를 펴내며 시인은 시 쓰는 일이 “날마다 밥을 먹는 일과 같다.” “호흡하는 일을 잊어버리면 목숨을 잃듯 시의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날마다 시를 쓴다. 그러다 보니 시를 쓰지 않고는 못 사는 사이가 되었다. 미련하다.”며 우스갯소리인 듯 감춰뒀던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렇게 시와 못 사는 사이가 된 지 30년, 그사이 동시집 14권과 동화집 16권, 그림책과 학습서 31권, 모두 60여 권을 출간하며 부지런히 글밥을 먹고 살아왔다.
책상 앞이 아니라 생활의 터전인 길에서 건져 올린 진솔한 시
시인은 학교 교문을 나서다가도 번쩍 시를 만나기도 했고, 산을 오르다가도 시의 얼굴과 마주했으며, 전철이나 버스에서, 동승한 사람들의 대화에 귀 기울이며 시를 얻기도 했다. 책상 앞에서 작정하고 쓴 시가 아니라 생활의 터전인 길에서 건져 올린 시들 덕분에 시인은 우리 아이들 또는 이웃들과 한 공간에 서서 그들이 품은 아픔과 문제를 더듬는 데 진정성을 획득할 수 있었고 성실하게 담아낼 수 있었다. 『잘 커다오, 꽝꽝나무야』는 이러한 시인의 노력이 이뤄낸 열매로, 삼십 년을 정리하는 커다란 의미를 담고 있다. 동시집에 실린 작품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동화적 상상력이 넘치고 시인이 걸어온 길만큼 곰삭아 제 맛이 나며 폭넓고 속 깊다. 예쁘고 화려한 말과 수사로 겉멋을 부린 시가 아니다.
“속 깊은 아이”와 “생각 많은 아이”가 만나 이룬 배려의 시
시인은 2004년 『실 끝을 따라가면 뭐가 나오지』 이후 5년 만에 올해 초 『구방아, 목욕 가자』를 펴낸 바 있다. 곧바로 고이 품고 있던 시를 뽑아 자신 있게 『잘 커다오, 꽝꽝나무야』를 선보인 것이다. 전작은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주요 글감으로,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동화 한 편을 읽은 듯한 인상을 준다.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구방이가 사는 평범한 가정을 내세워 시인이 늘 염두에 두었던 ‘가족의 소중함과 따스함’을 일깨우고 있다. 그에 비해 『잘 커다오, 꽝꽝나무야』는 시인이 줄기차게 의미 있게 다뤄왔던 메시지, 즉 ‘배려의 시’들을 모은 동시집이다. 1부는 사물 속에 감추어진 선함과 타인에 대한 배려를 중심 주제로 한 시들이다. 2부는 가족애와 가족의 소중함, 3부는 새나, 별, 비, 가랑잎 등의 소재를 통해 배우는 자연의 숭고함과 베풂, 4부는 주변에서 흔히 보는 보잘것없는 것들을 통해 남을 위로하고 나와 타인의 조화로운 삶을 그렸다. 1부에서 4부에 걸쳐 “이해하는 마음, 소박한 삶의 아름다움과 무엇보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인정어린 마음”을 전하고픈 시인의 바람이 오롯이 담겨 있는 것이다. 때문에 평론가 김용희 선생은 권영상 시인의 작품에서 ‘속 깊은 아이’와 ‘생각 많은 아이’를 발견해 낸다. 이 두 화자가 시 속에서 번갈아 나오며, 관용과 베풂, 역지사지의 뜻을 읊고 있다. 이것은 권영상 시인이 고백하는 다음 일화에서 보듯 시인의 삶이 늘 배려로 그득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게는 눈 먼 손위 형님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형님과 같이 밥상을 받으면 내가 먹는 일에 몰두하기보다 형님이 먹기 쉽도록 반찬 놓인 자리를 일일이 알려 주고, 물컵 하나 놓을 때에도 형님이 치지 않을 자리를 고려했다. 길을 갈 때에도 형님이 갈 길을 먼저 살펴 주고, 차에 오를 때도 나보다 형님이 편하게 오를 일을 언제나 먼저 생각했다. 나는 늘 형님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생각했다. 그런 까닭으로 나는 형님을 통해 알게 모르게 배려라는 도덕을 일찍이 배우며 살아왔다.”
시인의 삶이 이러하여서일까, 시인의 시에는 포장된 배려의 손길이 아닌 삶의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솔한 배려가 엿보인다. 이러한 시인의 마음결은 “구석진 골목으로 달려간 가랑잎들이/누군가를 감싸느라 바쁘다./기껏 때늦은 제비꽃?/생쥐가 빈정댔다./이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야.”라고 읊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구절에서도 엿보이고, “햇볕 한 톨 받은 걸로/강낭콩은 콩꼬투리를 키워/다문다문/밥그릇에 되돌려주고 갔지./중략/나는 이 땅에/무얼 돌려주고 가야 하나?/내가 받은 이 이름으로”라고 고민하는 화자의 「되돌려 주고 가기」에서도 나타난다. 다음은 김용희 선생의 해설이다.
새들은 힘들지요
아침 햇살과 함께 깨어나
한나절 하늘을 날았을 테니까요
벌레를 잡기 위해 쉬지 않고 일했으니
새들은 피곤할 테지요
벌레들은 또 어떨까요
아침 일찍 일어나 잎을 갉고
새들 부리에 찍히지 않으려 애썼을 테니
벌레들은 또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오후 1시」 일부
보다 성숙해진 ‘속 깊은 아이’는 「오후 1시」에서처럼 상대방의 입장까지 생각합니다. 그 아이는 쉬지 않고 벌레를 잡기 위해 일한 새들의 피곤함도 생각할 뿐 아니라 새들의 부리에 찍히지 않으려고 애쓴 벌레들의 힘겨움도 잊지 않습니다. 여기서 ‘오후 1시’란 새와 벌레의 피곤함을 함께 풀어 주기 위해 존재하는 해방의 시간이라는 뜻이지요. 분명 서로의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역지사지의 사고법은 한 걸음 비켜서서 세계를 공평하게 바라보는 방법이자 사유를 객관화하는 방편이 됩니다.
_해설 중에서
순수하고 편안한 그림 옷을 입은 시
화가 신철의 그림은 시 속에 갇히지 않고 시의 의미를 자유롭게 표현하였다. 때론 공간을 비워 둠으로써 때론 색만으로써 시의 느낌을 드러냈다. 특별한 수식이 없는 그림은 즐겁고 소박하여 편안하다. 사람이 지닌 본래의 맑은 순수성을 그림으로 표현하면서 회화성을 강조하여 시뿐만 아니라 그림을 통해서 또 다른 상상력을 갖는 재미와 편안하고 행복한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