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전환기인 40대, 머물 것인가 떠날 것인가
“은정아, 중국에서 살 자신, 있니?” 이 책은 중국 남부지방에 있는 ‘선전’이라는 도시로 발령받은 지은이의 남편의 질문에서 시작한다. ‘이곳’을 떠나 ‘다른 곳’에서 살 자신이 있는가는 우리도 스스로에게 수없이 던지곤 하는 질문이다.
특히 40대에 이르면 어느 정도의 사회적 지위에 올라 물질적인 안정을 누리면서도, 가족들과의 행복한 관계 속에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문득 ‘다른 삶’을 꿈꾸기도 한다. 오직 한 번뿐인 우리의 삶에 놓인 길 역시 하나뿐일까? 20대에 수많은 방황을 거쳐, 비로소 30대에 찾은 확고해 보이는 이 길이 정말 평생 가야 할 나의 길이 맞는 걸까 하고 생각하게 되는 나이 마흔.
이 책의 지은이 역시 ‘패션’이라는 한 분야를 향해 맹렬하게 달려왔던 커리어우먼이다. 마흔에 이르러 일에 있어서의 터닝 포인트를 찾았고(「마담 휘가로」편집장에서 샤넬 홍보부장으로의 이직), 최선을 다해 한 차례 더 달리려는 중이었다. 그때 접한 남편의 해외발령 소식이 달가울 수만은 없었다. 게다가 곧 사춘기를 맞이하는 아들도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지은이는 단호하게 ‘선전’으로의 이주를 결심한다. ‘짧은 여행’이나 ‘이직’을 통해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두 번째 삶’을 시작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머문 곳에서 다져온 삶을 놓고 떠나는 일이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삶은 우리에게 가끔 대단한 용기를 요구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기꺼이 받아들인 지은이는 안정된 이곳에 머물기보다 ‘떠남(Leaving)’을 선택했고, 그렇게 다른 곳에서의 새로운 ‘삶(Living)’을 시작하면서, 생에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아이 같은 열정으로 삶을 ‘사랑하게 되었음(Loving)’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패션잡지 편집장의 세련된 감각으로 만나는 중국
“왜 하필 중국인가?” 이는 지은이가 스스로에게도 끊임없이 던진 질문이다. 중국에 대해 갖고 있는 수많은 편견들에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낙후된 시설, 오만해 보이는 민족성, 급성장한 도시 특유의 천박함으로 똘똘 뭉쳐있을 것 같은 나라, 중국에서 두 번째 삶을 시작해야 한다면 누구든 망설일 일이다. 특히 패션업계에 종사했던 지은이는 더더욱 그러했다.
편견은 환상처럼 타인을 나만의 생각 안에 가둬둘 때 생기는 오류이다. 어린 시절을 베트남과 스위스에서 보냈던 지은이는 중국을 열린 시각으로 바라보려 노력한다. 그래서 놓친 것이 무엇인지 꼼꼼히 기록한다. ‘머무르는 자’ 특유의 객관적이면서도 애정어린 시선 아래 기술된 ‘중국’과 ‘선전’은, 우리가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중국의 모습이다. 이 책을 통해 ‘더럽고 오만하고 시끄러운’ 중국은 ‘사교적이고 매력적인’ 중국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마담 휘가로」 편집장을 지낸 저자의 박학다식함과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예민하고 세련된 시선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두 번째 삶을 꿈꾸는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책
홀로 떠난 길이 아닌 가족이 함께 한 이주이기에, 가족들이 새로운 공간에서 각자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은 결코 놓칠 수 없는 소중한 정보이다. 새로운 곳에서의 삶이 꿈꾸던 대로 언제나 좋을 수만은 없는 법. 남편은 남편대로 중국인들이 일을 대하는 자세에 적응하느라 힘들고, 아내는 아내대로 말이 통하지 않아 서울에서처럼 활동적으로 다닐 수 없는 게 답답하다. 국제학교를 다니게 된 아들 역시 마찬가지.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중국인의 생활습관을 이해하고, 선전에 온 또 다른 이주민들과 친목을 다지며, 3년여의 시간을 보낸 이들 가족의 이야기는 다른 나라에서 두 번째 삶을 꿈꾸는 이들에게 좋은 정보가 될 것이다. 중국이나 선전이 아니더라도, 정작 떠나야 하는 상황이 오면 어떤 마음이 드는지, 또 어떠한 상황과 맞닥뜨리게 되는지 아주 상세하게 기록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