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병을 가진 부모, 그리고 그 곁에서 숨죽여 자라는 아이들
가정이 행복해야 그 안에서 자라는 아이들도 행복합니다. 행복한 가정은 아이가 맘껏 숨 쉬고 밝고 씩씩하게 자랄 수 있는 공기와 같습니다. 만약 엄마 아빠가 다투기라도 해서 집안 공기가 무거워지면, 아이들은 금세 움츠러들고 엄마 아빠의 눈치를 살피기 바쁘지요. 어른들의 문제로 싸운 건 엄마 아빠인데도 아이들은 혹시 자기가 잘못해서 둘이 싸운 건 아닐까 하고 지레 주눅이 들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이렇게 사소한 감정 다툼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아이들인데, 정서적으로 불안하거나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부모와 사는 아이들의 속마음은 어떨까요?
『엄마의 슬픈 날』은 우울증이라는 마음의 병을 가진 엄마와 함께 사는 모나가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보여 줍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모나를 언제나 따뜻하게 맞아 주고 다정하게 책도 읽어 주던 엄마는 어느 날부턴가 아무것도 안 하고 죽은 듯 잠만 잡니다. 밥을 챙겨 주지도 않고 모나와 아무런 이야기도 나누지 않습니다. 모나는 이런 날을 ‘엄마의 슬픈 날’이라고 부릅니다.
왜 엄마에게 ‘슬픈 날’이 찾아오는지 이해할 수 없는 모나는 고민 끝에 엄마가 아픈 걸 자기 탓으로 돌리고 맙니다.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 자기 속마음을 이야기할까도 싶었지만 아이들이 수군거리는 걸 알게 된 뒤로 모나는 말을 아낍니다. 선생님께도 몇 번이고 털어놓고자 했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엄마를 이상하게 보는 게 속상해서 참습니다. 비록 ‘슬픈 날’에는 엄마가 미워지기는 해도, 엄마가 모나만의 소중한 엄마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모나는 바깥으로 용기 있는 한 걸음을 내디딥니다. 담임선생님께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기로 한 것이지요. 그 순간부터 모나는 ‘혼자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엄마를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여느 엄마들과 달랐던 엄마를 진심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그제야 모나는 입을 열어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누군가가 좀 더 일찍, 좀 더 자세히 엄마의 병에 대해 이야기해 줬다면, 또 누군가에게 진작 이 슬픈 날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조금은 덜 힘들었을 거라고 말이지요.
부모가 앓고 있는 정신 건강의 문제는 그 자녀에게 그대로 영향을 미칩니다. 말 그대로 문제 있는 양육 환경을 만들 확률이 높다는 뜻이지요. 아이를 키우면서 기본적으로 챙겨 주어야 할 것들을 놓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결국 아이는 방치됩니다. 방치를 경험한 아이는 집 밖으로 나와 학교에서도, 또 친구들과도 잘 지내기 어렵습니다. 부모가 가진 마음의 병을 개인의 문제로만 볼 수 없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아동방임,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
우울증은 정신질환 중에서도 ‘마음의 감기’라 불릴 만큼 일반적인 병으로 꼽힙니다. 더욱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 사회 안에서 우울증 환자의 비율은 점점 더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불안한 양육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 뜻일까요? 건강한 어른이 살면서 한 번이라도 우울증을 앓게 되는 비율이 무려 3~40퍼센트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만큼 마음의 병을 가진 부모를 둔 더욱 많은 수의 아이들이 그 그늘을 짊어진 채 살고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합니다. 가정에서 부모로부터의 방임을 겪는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제자리를 찾지 못해 소외당하기 일쑤입니다. 학교에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때, 우리는 아이의 생활만을 공연히 지적하고 탓하고 있지는 않나요? 정작 그 아이가 어떤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지, 혹시 집안에 말 못 할 고민이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모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걸 생각하게 합니다. 개인 차원에서 바라볼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함께 고민해 볼 문제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동방임은 한 가정에서 일어나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가 함께 연대해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입니다. 모나가 담임선생님한테 손을 내밀었을 때, 그 시작이 병원 치료와 상담 연계 등으로 이어졌듯이 주위의 관심과 도움이 공동체 안에서는 커다란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 세상 어린이들은 자기에게 찾아온 어려움을 극복하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자기 안에 갖추고 있습니다. 그 힘을 믿어 주고 끌어내려면 친구나 주위 어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주변의 도움으로 자기 안의 힘을 찾은 모나는 엄마가 가진 마음의 병이 자신의 탓이 아닌 걸 알게 됩니다. 자기와 같은 처지에 있는 친구들이 많다는 걸 알고 한편으로는 안도하면서, 자기처럼 혼자 고민하지 말라고, 그리고 엄마 아빠가 아파도 우리는 건강하고 즐겁게 지내도 된다고 일깨워 줍니다. 모나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아이들에게 『엄마의 슬픈 날』속 모나의 건강한 목소리는 커다란 위안이 되어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