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없으리만치 놀라운 데뷔작, 재니스 리의 『피아노 교사』
2009년 1월 미국 바이킹 출판사에서 출간한 소설 『피아노 교사』가 국내 언론까지 들썩이게 만들었다. 출간 전에 이미 전 세계 23개국으로 판권이 팔려나가고, 출간되자마자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월스트리트 저널> <시카고 트리뷴> 등 미국 주요 언론에 일제히 서평이 실리면서 출간 2주 만에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로 등극한 소설의 작가가 바로 한인 2세였기 때문이다. 국내외에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한인 2세 작가 재니스 Y. K. 리의 『피아노 교사』가 드디어 국내 출간되었다.
재니스 리는 1973년 홍콩에서 태어나 열다섯 살에 미국으로 건너가 명문 세이트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 입학해 영문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엘르>에서 피처 에디터로 일하던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던 자신의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뒤 직장을 그만두고 헌터 대학 대학원에 들어가 재미 소설가인 이창래 교수 밑에서 소설창작을 공부했다. 그리고 약 5년에 걸쳐 쓴 『피아노 교사』가 2007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픽션부문 우수작품으로 선정되고, 펭귄 출판그룹 계열인 미국 바이킹 사를 시작으로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노르웨이, 중국, 브라질 등 세계의 유수 출판사와 계약을 맺으면서 일약 세계적인 작가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피아노 교사』는 현재 13개 나라에서 출간되었다.
재니스 리는 『피아노 교사』가 이처럼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이유를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 소설의 내용과 배경이 독자들의 흥미를 끌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소설가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보다는 좀더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흥미를 끌 만한 주제를 다루고 싶었다는 작가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때때로 나는 이런 질문을 받는다. 홍콩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한국인이 영국 식민지 시절의 홍콩에서 살았던 영국인과 중국인에 대한 소설을 쓰게 된 이유가 무엇이냐고. 그런 질문에 나는 작가가 소설의 주제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종종 주제가 작가를 찾아내기도 한다는 말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이렇게 재니스 리를 찾아온 주제는 다양한 인종과 계급이 공존하고 동서양이 혼재하던 영국 식민지 시절 홍콩의 화려한 상류사회 모습이었다. 작가는 물질적 풍요와 불확실한 낙관으로 들떠 있던 홍콩 상류사회에 몰아닥친 전쟁과 꼬리를 무는 배신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던 1940년대와 전후 1950년대를 넘나들며 주인공 세 명의 사랑이 어긋나고 좌절되는 과정을 한 편의 영화처럼 감각적이고 흥미롭게 그려냈다.
나는 사랑을 원치 않소. 사랑을 믿지 않으니까. 그러니 당신도 믿으면 안 돼.
2차 대전이 한창이지만 홍콩에는 아직 그 영향이 미치지 않던 1941년, 영국인 윌 트루스데일이 홍콩으로 온다. 그는 영사관 파티에서 중국인 아버지와 포르투갈 어머니를 둔 유라시아 혼혈로 미모와 재력과 인기, 그 모든 것의 정상을 누리는 트루디 리앙을 만나게 되고, 둘은 걷잡을 수 없는 열정적인 사랑에 빠진다. 이 사랑을 통해 윌과 트루디는 비로소 자신들이 어떤 사랑을 원해왔는지 깨닫는다.
윌은 사랑에 수반되는 불편함을 한동안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 별로 그럴 것 같아 보이지 않는 홍콩에서 마침내 사랑이 그를 찾아낸 것 같다.(55쪽~56쪽)
하지만 당신은 나를 사랑했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해준 거야. 그리고 그게 진실로 느껴졌어. 그건 나에게 하나의 계시였어.(390쪽)
그러나 일본군이 홍콩을 점령하면서 그들의 사랑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하루아침에 포로 신세가 되어 수용소에 수감된 윌. 그는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일매일 악전고투한다. 그리고 바깥에 남은 트루디. 그녀는 생존을 위해 일본군과 위험한 동맹관계를 맺도록 강요받다 결국 점령군의 실세인 헌병대장 오츠보의 탐욕스런 계획에 휘말리게 된다.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서라면 고문이든 살인이든 마다않는 오츠보의 욕망에 희생되는 이들과 이를 이용해 권력을 누리는 동시에 서로서로 끔찍한 배신을 자행하는 이들. 그 속에서 신념을 지키고자 했던 윌과 사랑을 지키고자 했던 트루디는 서로 다른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한 아기가 있었다.
손가락이 열한 개인 남자가 있었다. 이제는 열 개, 다시 열한 개. 손가락은 정확히 일 년마다 다시 자라났다. 세월을 측정하는 데는 유용한 도구다.
선량한 남자들이 있었다.
사악한 남자들이 있었다.
죽은 남자들이 있었다.
한 여자가 있었다. 그리고 사라졌다.(378쪽)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952년, 저수지 건설 감독관으로 영국에서 파견된 토목기사 마틴 펜들턴과 그의 아내 클레어가 홍콩에 도착한다. 아직 신혼이지만 클레어는 남편에게 애정도 이해도 없다. 영국 시골 마을의 단조롭고 협소한 세계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선택한 결혼이었기 때문이다. 피아노 교사 자리를 찾던 중 주변의 소개로 성공한 중국인 사업가 빅터 첸의 딸 로켓을 가르치게 된 클레어는 홍콩 상류사회의 화려한 생활에 점차 매료된다. 전형적인 영국 중산층 여성의 촌스러움을 벗고, 타인의 화려함을 훔쳐 자신의 세련을 조금씩 완성해가던 그녀는 한 상류층 파티에서 영국인 윌 트루스데일을 만난다. 그리고 첫눈에 윌에게 끌리고, 자신을 ‘쳐다봐주지도’ 않는 이 남자를 향한 열정을 억누르지 못해 결국 둘은 격정적인 연애를 시작한다. 하지만 관계가 진전되면서 클레어는 윌의 과거에 대해 알고 싶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오랫동안 묻혀 있던 비밀이 하나씩 드러나고, 모든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는다.
“당신은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아.” 그가 천천히 말했다. “전에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지만, 지금처럼 확신이 있진 않았소. 이제 나는 부담일 뿐이야.”
그녀의 첫번째 반응은 자동적으로 뒤로 물러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제 윌은 해방되었고, 그다음에 오는 것은 불확실성이라는 것을. 너무 오랫동안 자신의 비밀과 함께 살아온 그는 그 비밀을 쏟아내고 나자 공허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나는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아.” 클레어는 그의 말을 따라 했다. 얼마나 안개 같은 남자였던가. 얼마나 손에 잡히지 않는 남자였던가. 가장 친밀한 순간에조차, 그 남자는 온전히 그곳에 있지 않았다. 이제 클레어는 그 이유를 알았다. 그는 언제나 다른 여자와 함께였던 것이다.(443쪽~444쪽)
그로부터 1년 후, 클레어는 모든 화려함에 대한 동경과 열병 같은 사랑을 모두 버리고 혼자 소박한 생활을 하고 있다. 외국인과 상류층이 모여 사는 센트럴도 피크도 아닌 완차이에 자리잡은 클레어는 현지인처럼 시장 골목 노점에서 국수를 먹고 수수한 옷을 입고 지내며 비로소 평화로운 삶을 발견한 것이다.
그녀를 지탱해주는 것은 단순한 깨달음이다. 일단 저 거리로 나서기만 하면 된다는 것. 그러면 그녀는 거리 풍경 안으로 녹아들고, 거리의 리듬에 흡수되어 어렵지 않게 세상의 일부가 될 것이다.(470쬭)
“참으로 마음을 사로잡는, 진정으로 뇌쇄적인 소설”
금발의 ‘영국 장미’ 클레어, ‘이국적인 전갈’ 트루디, 그리고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윌 트루스데일. 작가는 저마다의 이상적인 사랑을 추구했지만 자신이 가진 한계와 상대가 가진 한계, 그리고 역사적 한계를 넘지 못하고 끝내 좌절하고 만 세 주인공의 얽히고설킨 사랑을, 그리고 이를 딛고 새로운 자아를 찾아 삶을 새롭게 시작하는 클레어의 모습을 냉정하면서도 빨려들어갈 듯 매혹적으로 그려낸다. 또한 그 배경에 놓인 ‘전쟁’이라는 서사적 장치와 다양한 인종과 계급이 공존하는 홍콩이라는 공간을 통해 이 인물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배신과 죽음과 절망, 탐욕과 위선과 파멸을 과거의 행위가 현재에 드러나는 입체적인 다중구조 방식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피아노 교사』는 단순한 러브스토리에 머물지 않고, 전쟁이라는 역사적 상황과 개인의 상황이 맞물리면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을 다각적으로 서술함으로써 서사의 깊이를 획득한다. 『피아노 교사』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며 수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 책에 쏟아진 찬사
『피아노 교사』만큼 매력적이고 확실한 데뷔작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동양과 서양의 매혹적인 상호작용과 생생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이 작품은 참으로 마음을 사로잡는, 진정으로 뇌쇄적인 소설이다. 이창래(소설가, 프린스턴대 인문학과 교수)
드물게 훌륭하고 정교한 스토리. 이 작품은 위대한 소설의 역할을 정확히 하고 있다. 독자로 하여금 시공을 초월하여 마치 손에 닿을 듯 생생한 세계에 몰입하도록 한다. 엘리자베스 길버트(소설가)
이만큼 통찰력 있고 우아하며 무드 있는 소설은 상당히 오랜만에 접한다. 저자 재니스 리의 재기(才氣)에는 부족함이 없으며, 그녀의 소설은 한번 손에 잡으면 놓을 수가 없다. 게리 슈테인가르트(소설가)
소설 『피아노 교사』에는 음모가 가미되어 있다. 독자는 주인공 윌과 두 연인과의 관계에 대한 재니스 리의 묘사, 그리고 그 관계를 풀어나가는 가차 없는 방법에 매료될 것이다. 뉴욕 타임스
재니스 리는 두 개의 황홀한 러브스토리를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을 읽으려면 전화기를 감춰놓는 게 좋다. 아니면 헤어진 애인에게 전화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마리끌레르
전쟁, 사랑, 그리고 배신. 이 모든 것이 정교하게 혼합된 데뷔작. 상당히 재미있다. 오프라 매거진
남편을 따라 1950년대의 홍콩으로 온 전형적인 영국 중산층 여자 클레어가 이국적 장소가 주는 자유에 도취되어 E. M. 포스터 식의 인물로 변화하는 과정을 매혹적인 내러티브로 그려낸다. 이 책은 믿을 수 없으리만치 강력한 흡인력을 지니고 있다. 『피아노 교사』를 읽는 것은 완벽한 간접경험이다. 엘르
과거를 일깨우고, 숙련된 솜씨로 짜인 소설 『피아노 교사』는 얽히고 왜곡된 러브스토리와 전쟁에 관한 서사시 이상이다. 한번 손에 잡으면 탐닉하고 싶어지는 소설, 꼭 필요할 때 외에는 결코 쉬지 않고 단번에 읽어내려갈 바로 그런 소설이다. 시카고 트리뷴
재니스 리는 멋지게 데뷔했다. 과거의 행위가 현재에 드러나는 구조를 취함으로써, 음모와 예상 밖의 급진전이 얽히는 다중구조의 스토리 전개를 가능하게 했다. 저자는 중국 역사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시기를 다루면서 멜로드라마를 사용하지 않고, 고통스러운 상황하에서 하루 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사람들이 하는 선택을 잘잘못에 대한 판결 없이 담담하게 해체하여 보여준다. 퍼블리셔스 위클리
품위 있는 산문체와 뛰어난 공간 감각으로 완성된 소설. 그레이엄 그린이 『조용한 미국인』에서 베트남전쟁을 환기시켰듯이, (전쟁이 끝나고 한참 후에 홍콩에서 태어나 자란) 재니스 리는 2차 대전 중의 홍콩을, 겉으로는 번쩍이지만 한 겹만 벗겨내면 공황과 부패가 부글거리던 당시 홍콩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마이애미 헤럴드
동양과 서양의 관계에 관한 풍부한 고찰. 커커스 리뷰
이 소설로 재니스 리는 뛰어난 데뷔를 했다. 보스턴 글로브
재니스 리는 트루디를 비롯한 흥미롭고 복합적인 캐릭터를 창조함으로써 특수한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해 풍부하고 상세한 시각을 제공한다. 북리스트
*담당편집: 류현영(031-955-8858, sanja95@munha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