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의 촉망 받는 젊은 문인 다섯과 화단의 블루칩이라고 불리는 젊은 화가 다섯이 만났다. 시인 이원, 신용목, 김민정, 소설가 김태용 백가흠이 문단의 한 축이며 화가 윤종석, 이상선, 변웅필, 이길우, 정재호가 화단의 또 한 축이다. 그들은 저마다의 예술 분야에서 고집 있게 작품 활동을 해온 일련의 스타일리스트로, 유행이라 부를 만한 어떤 시류에도 흐름을 타지 않은 채 묵묵히 제 글과 제 화폭 속에서만 놀아온 개성 있는 예술가들이다. 타협을 모르고 절충을 고려치 않는 바로 이 열 명의 예술가들, 그들은 어떻게 만나 이 한 권의 책으로 하나가 되었나.
친분이 있는 화가들 다섯이 있었다. 또한 친분이 있는 문인들 다섯이 있었다. 이 각각의 그룹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이가 한 사람 나섰고, 그들은 그의 주선으로 지난해 말 처음으로 한 자리에서 조우했다. 편을 가른 것도 아닌데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들 열 명은 보자마자 팽팽히 맞섰다. 전시라는 모두의 공통과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그 입장 차이가 매우 컸기 때문이다. 특히 문인들에게 그림이라는 형식을 빌려 그들의 예술성을 발현하는 일은 사실 실현 불가능에 가까웠다. 글이라는 활자의 특수성을 전시장이라는 공간성으로 해결을 바라기는 힘든 노릇, 문인들이 입을 모아 화가들의 서포터 역할 이상을 수행하기 힘들겠다는 결론을 도출해낸 것도 다 그와 같은 연유였다.
그래서 필요한 게 책이었다. 그것도 아주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책이었다. 책은 볼거리와 읽을거리와 생각거리를 동시에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문인들과 화가들은 첫 만남에서 그들이 지금까지 펴낸 책과 도록을 서로 나눴다. 그리고 서로의 예술 세계에 대해 깊이 침잠해져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졌다. 그림에도 불구하고 화가들은 책을 읽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인들은 그림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다시 만난 그들은 이미 둘씩 짝을 지은 뒤였고 둘이 만나 진지하거나 때론 가벼운 농담도 주고받을 만큼 익숙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예술의 발빠른 친화력이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큰 변화였다.
문인들은 화가들의 작업실에 직접 방문했다. 그사이 화가들은 문인들의 시나 소설을 꼼꼼하게 읽었다. 문인들과 화가들은 그렇게 현장에서 만나 서로의 그림과 서로의 책을 묻고 답했다. 아! 하는 탄식이 쏟아질 때도 있었고 어? 하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 적도 잦았다. 문인들은 화가들의 그림에 대해 자신만의 문장과 문체로 쓰고자 하는 글을 꾸리느라 골똘했고, 화가들은 문인들의 작품을 제 스타일로 어떻게 화폭에 담아낼 수 있을까 구상하느라 분주했다. 그림을 겨냥한 문인들의 글이 완성되어 가는 동안 글을 겨냥한 화가들의 그림 또한 완성되어갔다.
서로가 서로로 인해 빚은 이 아름다운 자극. 서로가 서로로 향하는 길에 있어 그 암초란 애초에 시도하지 않았고 또 시도할 줄 몰랐던 낯가림과 두려움이 아니었을까. 서로가 서로를 향해 보니 그 길 위에 떨어져 있는 감각의 덩어리라는 것도 그제야 만져진다. 지금껏 내 것인지 몰라 내 것으로 탐할 수 없었으나 손에 집고 보니 내게 딱 맞는 그것, 발견이라는 예술! ‘함께’라는 단어 아래 둘이 놀았다지만 그들은 분명 ‘홀로’라는 단어를 머리에 두고 저 자신과 놀았을 것이다. 예술은 그렇게 우연히 발견한 새로운 시도 속에 위대함으로 승화되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