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티스는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하나다.”_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현대 라틴아메리카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알바로 무티스는 『백년의 고독』으로 1982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콜롬비아 출신의 세계적인 소설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함께 콜롬비아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절친한 친구 사이인 두 작가는 각자 독특한 장르의 문학을 선보이면서 작가적 입지를 확보하고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대표하는 20세기 최고의 작가 반열에 올라서 있다.
알바로 무티스는 1923년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태어났고, 세 살 때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벨기에로 건너가 9년 동안 지냈는데, 어린 시절 흡수한 유럽 문화와 대서양 여행을 통해 얻은 경험은 무티스의 문학세계의 근간을 이룬다. 콜롬비아로 돌아온 후, 그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라디오 방송국, 보험회사 잡지 편집부, 맥주회사와 항공사 등지에서 근무하다가 석유회사 ‘에소’의 홍보 책임자로 일했다. 하지만 ‘독재자에게 박해를 받는 정치적 망명자들을 도와주는 것은 자선행위’라고 생각하던 알바로 무티스는 ‘회사 돈을 제 돈처럼 사용하며 마음대로 수혜자들을 선정하다가’ 부정회계 문제에 휘말리게 되었다. 체포될 위험에 처하자 그는 멕시코로 도피했지만, 곧 멕시코 레쿰베리 감옥에서 15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하게 된다. 이 멕시코 감옥에서 절망에 빠진 인간들과 함께 보낸 시간은 무티스의 세계관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다. 무티스의 시와 소설에 중심인물로 등장하고 작가 스스로 자신의 분신이라 일컫는 ‘마크롤 가비에로’라는 인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도 레쿰베리 감옥에서의 경험 덕분이었다.
알바로 무티스는 1986년 마크롤 가비에로를 중심인물로 하는 최초의 소설 「제독의 눈」을 발표하고, 이후 1993년까지 「비와 함께 오는 일로나」 「트램프 증기선의 마지막 기항지」 「아미르바르」 「압둘 바슈르, 배를 꿈꾸는 사람」 「바다와 육지 3부작」 등 마크롤에 관한 소설을 잇달아 발표했다. 이 일곱 편의 소설은 1995년에 『마크롤 가비에로의 시련과 슬픔』이라는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문학동네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마크롤 가비에로의 모험』은 일곱 편의 소설 중 무티스의 대표작으로 여겨지는 「제독의 눈」 「비와 함께 오는 일로나」 「아름다운 죽음」을 묶은 것이다.
무티스는 1989년에 『제독의 눈』으로 프랑스의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수상했다. 또한 스페인어권에서 중요한 문학상 중 하나인 아스투리아스 왕자상 심사위원단은 1997년 알바로 무티스를 수상자로 결정하면서 “마술적 사실주의를 현대인간의 문제와 연결시킨” 가장 위대한 시인이며 소설가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고, 2001년 세르반테스상 시상식에서 스페인 국왕 후안 카를로스는 수상자 무티스에게 메달을 걸어주며 “항상 인류의 존엄과 자유를 추구해온 휴머니스트”라고 칭송했다.
마크롤 가비에로 ― 무티스의 자료를 적는 또 다른 무티스
알바로 무티스의 시와 소설에는 ‘마크롤 가비에로’라는 인물이 작품의 중심인물로 등장한다. 무티스가 ‘나의 자료를 적는 또 다른 나’라고 규정한 마크롤 가비에로는, 문학과 역사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모험과 방랑을 중단하지 않는 인물이다. 숙제를 하지 않았다고 야단치는 교장선생님에게 “읽을 책이 너무 많아 공부에 허비할 시간이 없다”고 항변하던 고등학교 시절의 무티스처럼 마크롤 가비에로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독서를 멈추지 않는다. 마크롤 가비에로는 거의 50년 동안 무티스의 문학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가의 문학적 분신으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본질적으로 작가는 단 한 권의 책만 쓴다. 비록 그 책이 상이한 제목을 달고 수많은 책으로 나오는 한이 있어도 그렇다”라고 말했다. 알바로 무티스에게 그 ‘한 권의 책’은 특정한 주제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단 하나의 인물 ‘마크롤 가비에로’에게 귀결된다. 모험에 대한 열정, 경험의 깊이와 다양성, 그리고 방랑, 마크롤은 이 모든 것을 구체화한 인물이다.
알바로 무티스는 자신의 분신 마크롤 가비에로처럼 자기의 꿈에 상응하지 않는 세계에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그의 문학을 이렇게 평가한다. “그의 작품은 우리가 잃어버린 천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예언자의 눈을 지니고 있다. 마크롤은 단지 무티스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마크롤은 우리 모두이다.”
가망 없는 목표와 불가능한 꿈을 향한 무한한 도전
알바로 무티스 작품의 중심 주제는 대개 가난, 절망, 파멸, 죽음, 향수, 여행, 우정, 사랑, 그리고 불가능한 것을 성취하기 위한 투쟁 등이다. 이런 주제들은 주인공 마크롤의 모험을 통해 적절히 표현되는데, 여기에 우연과 운명이 곳곳에 위치하면서 문학적 역할을 수행한다.
첫 작품 「제독의 눈」은 마크롤 가비에로가 쓴 일기로 구성되어 있다. 마크롤의 일기는 물에서 시작한다. 그는 아마존 강의 지류인 슈란도 강을 타고 안데스 산맥에 도착한다. 애인의 자금 지원으로 추진된 그의 계획은, 산의 고지에 있는 제재소에서 목재를 구입하여 강 아래로 가져와 높은 가격에 되파는 것이다. 그런 거래로 얻은 수익금으로 그는 여생을 편안하게 살고자 한다. 거의 모든 마크롤 소설에는 사업계획이 등장하는데, 「비와 함께 오는 일로나」에서는 고급 사창가를 운영하는 것이 그것이고, 「아름다운 죽음」에서는 철도 건설 인부로 위장한 게릴라 무장 세력에게 무기를 전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크롤의 계획은 대개 너무나 비현실적이라 항상 일그러지고 만다. 그 자신도 그것을 알고 주변인들 역시 불가능한 계획을 포기하라고 설득하지만, 마크롤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결국 그의 계획은 항상 실패로 돌아간다.
무티스는 자신과 마크롤이 똑같이 고수하는 두 가지 원칙이 있다고 말한다. 인생을 바꾸거나 그것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놔두는 것, 그런 다음 그런 인생을 평가하지 않는 것. 그렇기에 마크롤은 삶을 숙명으로 여기며, 또 다른 가망 없는 목표를 위한 탐색을 계속해나간다.
알바로 무티스의 작품에서 큰 역할을 하는 또 하나의 장치는 ‘우연’이다. 모든 소설에서 작중인물들은 우연히 선박의 기항지와 산맥, 강과 해변, 여러 대륙의 여러 도시에서 만난다. 그런 놀라운 우연의 일치가 일상적인 사건처럼 제시되는 것이다. 효과 면에서 그런 전략은 거대한 세상을 우연적 만남이 일상의 일처럼 벌어지는 조그마한 마을로 변화시킨다. 그렇게 알바로 무티스의 작품에서 대우주는 소우주처럼 다루어져 있다.
금지된 구역, 배타적인 세계, 광활한 금단의 자연 깊숙한 곳으로 옮겨 다니면서 불가능한 목표를 향한 탐험은 끊임없이 시도된다. 이런 점에서 『마크롤 가비에로의 모험』은 콘래드의 소설과 시시포스의 신화, 그리고 카프카와 유사성을 띤다. 알바로 무티스는 「제독의 눈」 「비와 함께 오는 일로나」 「아름다운 죽음」으로 연결되는 각각의 작품에서 가망 없는 목표와 불가능한 꿈, 그것을 얻으려는 탐색, 그리고 그 탐색의 실패를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삶과 사랑, 우정과 다른 보편적 주제의 의미에 관해 생각해보라고 독자를 채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