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누이’ 모티프로 새로운 형태의 창작동화를 선보인, 중견작가 ‘김옥’
『학교에 간 개돌이』로 어린이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온 중견작가 ‘김옥’이 이번에는 어린이와 어른 독자 모두를 아우르는 아주 특별한 ‘여우 누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내 동생, 여우』는 옛이야기 ‘여우 누이’의 모티프를 변형시킨 작품으로, 생활동화의 현실성과 판타지동화의 환상성을 조화롭게 버무려 놓은 새로운 형태의 창작동화다. 낯선 소재만이 새롭고 신선하다는 편견을 과감히 뒤집고 있는 이 작품은, 단순 재화나 패러디 기법을 뛰어넘음으로써 국내 창작동화의 소재와 기법의 폭을 한층 넓혔다.
옛이야기 ‘여우 누이’는 세 아들을 둔 노부부가 딸 하나를 더 얻게 되었는데, 그 딸이 여우로 둔갑해서 오빠와 부모를 잡아먹는다는 이야기다. 아들 셋을 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딸 하나를 더 얻고 싶어 했던 ‘욕심’은 결국 화를 불러오고 만다. 김옥의 『내 동생, 여우』는 옛이야기 ‘여우 누이’에서 욕심과 죽음, 여우 동생 등을 모티프로 삼았다. 노부부의 욕심은 사냥꾼 아빠의 욕심으로, 오빠와 부모를 죽인 여우 누이는 오빠를 죽음의 세계로 데려가려는 동생 연이의 모습으로 대체된다.
하지만 두 작품의 이야기 구성과 주제의식, 분위기 등은 사뭇 다르다. 『내 동생, 여우』는 산골 학교를 다니는 평범한 현실 속 아이들을 통해 ‘인간우월주의’에서 파생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거기에 꿈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꿈이 될 것만 같은, 경계를 구분 짓지 않는 구성은 이야기의 긴장감을 더한다. 산골이라는 공간 설정과 눈보라, 눈 덮인 산, 눈꽃 핀 나무, 유리창에 낀 성에와 같은 눈 속 풍경을 장치화해 아련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마치 한바탕 슬프고 무서운 꿈을 꾸고 나면 눈언저리에 눈물이 맺혀 있는 것처럼, 이 작품을 읽고 난 느낌이 그러하다.
숲에서 사라진 연이, 다시 오빠 연오를 찾아오는데……
연오는 산골 마을 작은 학교에 다닌다. 동생 연이는 학교에 갈 나이가 아니지만 오빠를 따라 학교에 간다. 아빠의 경운기를 타고 사십 분을 달리면 학교에 도착한다. 학교에는 교실도 하나고, 선생님도 한 분이고, 전교생도 네 명뿐이다. 내년에 1학년이 될 연이의 자리까지 책상은 다섯 개다.
사냥꾼인 아빠는 숲 속에 올무를 놓아 짐승들을 잡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는 여우를 잡으려고 올무를 놓다가 아이들을 데리러 가는 시간을 놓치고 만다. 아이들은 아빠를 기다리다 결국 숲길로 들어가게 되고, 연이는 눈보라와 함께 어딘가로 사라진다. 그리고 이듬해 봄에 식구들은 꽃들 속에서 싸늘하게 식어 있는 연이를 찾게 된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고 식구들은 산골 마을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연오가 산골 학교에 가는 마지막 날, 연이는 연오보다 먼저 아빠 경운기에 올라타 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연오의 눈에만 보인다. 공부를 마친 뒤 데리러 올 때까지 절대 숲길로 가지 말라는 아빠의 당부를 뒤로 하고, 연오는 연이의 투정에 못 이겨 또다시 숲길로 들어선다. 연이는 오빠 손을 잡아끌며 조금 더,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자고 조르지만, 연오는 안 된다며 눈물을 흘린다. 결국 연이는 오빠 손을 뿌리치고 어딘가로 사라지는데…….
“연이는? 연이 돌아왔어?”
“연이 꿈을 꾸었나 보구나.”
“아니야, 아침에 아빠 경운기 타고 함께 학교에 갔는걸. 같이 공부도 했어. 운동장에 누워 눈 사진도 찍었어. 그런데 내가 숲 속에서 연이를 지켜 주지 못했어. 그래서 연이를 잃어버리고 말았어. 얼른 연이 찾으러 갈래. 내 잘못이야.”
“이제 연이는 찾지 않아도 돼. 연이는 따뜻한 곳에서 잘 지내고 있어.”
엄마는 기어이 소리 내어 울고야 말았어요.
“엄마, 울지 마, 잘못했어. 엄마, 연이 이야기 이제 안 할게.”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닦았어요. 그때 멀리서 여우가 울었어요._본문 중에서
이사 가는 날, 아빠는 집 주변을 돌다 올무에 걸린 여우를 발견한다. 다행히도 여우가 살아 있다. 아빠는 올무를 끊어 여우를 숲으로 돌려보내 준다. 연오는 하얀 여우를 보며 연이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린다.
몽환적 분위기와 상징성이 돋보이는 글, 묘한 매력을 풍기는 세련된 그림
이야기는 시종일관 몽환적이고 아련한 느낌으로 전개된다. 꿈과 현실의 교차인지, 모두 꿈인지, 모두 현실인지……. 연오와 연이가 함께한 시간들은 단순히 오누이의 우애를 그린 것만은 아니다. 그 안에는 반성, 용서, 화해, 믿음, 사랑, 약속 등의 수많은 이야기가 함축되어 있다. 그래서 읽을 때마다 더 새롭고, 더 슬프고, 더 안타깝다.
‘나는 숲이 필요하다’는 연이의 말은 숲에 사는 뭇 생명들이 우리 인간들을 향해 던지는 ‘외침’으로 들린다. 연이의 죽음은 여우와 같은 숲의 생명이 죽어 가는 것을, 연오의 아픔은 인간을 포함한 여린 생명들의 상처를 말하는 것일 테다. 그리고 아빠의 욕심은 인간의 탐욕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내 동생, 여우』는 저학년 동화지만 은유와 상징을 통해 주제의식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이 책에서 또 하나 눈여겨볼 만한 것은 글과 어우러진 그림이다. 화가 김병호는 색을 절제하고, 다양한 기법을 통해 작품의 상징성을 섬세하게 담고 있다. 선 하나에도 인물의 감정이나 배경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에, 요소가 많지 않아도 꽉 찬 느낌이 든다. 묘한 매력을 가진 세련된 그림이 작품의 분위기를 한껏 살려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