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옥관 시인의 눈을 거치면
모든 것이 새롭고 경이로운 것이 된다
장옥관 시인은 ‘책머리에’에서 ‘어린이의 눈으로 보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면서 ‘시를 쓸 땐 늘 어린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려고 했다’고 말한다. 장옥관 시인의 말대로 상식에 물들지 않은 어린이의 눈을 지니고 있을 때, 비로소 시인은 시심(詩心)을 얻을 수 있을 터이다. 『내 배꼽을 만져 보았다』는 장옥관 시인이 ‘어린이에게서 눈과 귀를 빌려’ 대상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획득하고 그것을 어린이들이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표현한 동시집이다. 눈과 귀를 빌려 준 어린이들뿐 아니라 아파트 화단에 피어 있는 나무와 꽃, 밥상 위의 그릇과 숟가락, 학교 운동장에 뒹구는 바람 빠진 축구공들까지 시인이 동시를 쓸 수 있도록 거들어 주고 있다. 시인은 예의 날카롭고 집요한 관찰력으로 대상을 새롭게 정의하기도 하고, 장난꾸러기 같은 능청스러움으로 지루하고 딱딱한 상황을 경쾌하게 표현한다.
아버지와 함께 벌초를 갔다
어? 할아버지 무덤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려 있다
허둥지둥 살펴보신 아버지
―산토끼들이 한 짓이네!
구멍이 뻥 뚫린 무덤을 보니
앞니 빠진 내 얼굴이 생각났다
―이거 참, 이거 참,
아버지는 연신 혀를 차시고
조아리는 무덤이
뻥 뚫린 게 나는 자꾸 우스운데
엎드려 절하다 살짝 눈 떠 보니
빡빡머리 단정하게 깎은 할아버지도
앞니 빠진 개구쟁이 얼굴로
함께 따라 웃으신다
―「벌초」 전문
이야기성이 물씬 묻어나는 이 동시를 읽은 이라면 누구나 배시시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묘에 구멍이 뚫려 속상하고 난감한데, 손자는 할아버지 무덤이 앞니 빠진 제 얼굴이랑 똑같아 보이는 게 마냥 우습기만 하다. 웃음을 참고 아버지를 따라 절을 하지만 자꾸만 웃음이 난다. 슬쩍 눈을 떠 보니 할아버지도 앞니 빠진 영락없는 개구쟁이 얼굴로 마주 웃고 있다. 엄숙한 순간에 웃음보가 터진 아이의 간질간질한 웃음이 우리의 웃음보까지도 간질이는 것 같은 동시다. 시인은 아빠를 따라 할아버지 산소에 벌초하러 간 아이의 눈으로 지금까지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던 세계를 보여 주고 있는 셈이다. 한편 장옥관 시인은 자신의 시 세계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던 존재의 원형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동시의 세계에서도 놓지 않는다. 그의 ‘배꼽’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다.
사과 꼭지는
꽃이 달렸던 자리
사과의 배꼽이다
사과를 먹다가 슬쩍,
내 배꼽을 만져 보았다
엄마 가지에 매달렸던
꼭지
얌전하게 매듭 하나
물고 있다
―「내 배꼽을 만져 보았다」 전문
표제작 「내 배꼽을 만져 보았다」는 사과의 꼭지를 보고 “엄마 가지에 매달렸던” 자신의 꼭지를 확인하는 아이를 보여 주면서 우리가 흔히 먹는 사과 한 개에도 지구를 살아가는 모든 생명의 신비가 담겨 있다는 깨달음을 넌지시 건네고 있다. 개와 고양이가 털갈이하는 것처럼 “나무도 땅도 묵은 털 간다/(…)우주도 낮밤으로 털갈이한다”고 한 「털갈이」 역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도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는 뭇 것들의 경이로움을 담담한 시어로 노래한 동시다.
현상에 대한 새로운 시선
재미있고 경쾌한 시작(詩作)
장옥관 시인은 “사물들이 ‘항복’을 할 때까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마음의 눈을 열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만큼 대상에 대한 집요한 관찰, 그에 따른 묵직한 해석을 선보여 왔다. 그러나 시인은 정작 시작에서는 한없이 경쾌해지곤 한다. 「벌초」에서 등장한 장난꾸러기는 「안개」에 오면 천진난만한 다섯 살짜리 꼬마의 모습으로 분한다.
안개가 뿌옇게 낀 날
아침에 눈떠 창밖을 보던
다섯 살 내 동생
엄마를 향해 놀라 외쳤다
─엄마, 엄마 여기 와 봐
“구름이 터졌어!”
―「안개」 전문
장옥관 시인의 경쾌한 시작은 부엌일과 청소를 동시에 하느라 분주한 엄마의 모습을 순간적으로 잡아챈 「냄비가 달린다」에서도 변함없다.
냄비가 달린다
다다다다다다다다다락
가스 불 위에서
엄마가 달려간다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닥
청소기 던져 놓고
―「냄비가 달린다」 전문
어른의 연륜으로
어린 친구들의 등을 토닥이다
『내 배꼽을 만져 보았다』에 담긴 동시는 분명 어린이와 같은 마음과 눈으로 쓰였지만 반드시 어린이의 눈높이에서만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해설을 쓴 김륭 시인의 말대로 “어떤 사물이나 동물의 특징을 설명하면서 좀 더 깊고 새롭게 생각해 보라는 시인의 마음을 많이 담아낼 때도 있”기 때문이다.
풀밭 위에 누워서
두 발로 자전거를 탄다
페달을 밟던 맨발이
태양에 닿는다
―앗, 뜨거워!
땅에 머리 대고 하늘을 보니
먼 산의 능선이
발목에 와 걸린다
―그런데, 하늘은
어디서부터 하늘이지?
누워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 우리는 이미
하늘에 담겨 살고 있었구나
―「하늘」 전문
시인은 언제나 밑을 내려다보며 지내는 우리에게 문득 누워서 하늘을 보며 자전거를 타 보란다.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 탁 트인 세상이 펼쳐진다. 여태껏 크고 어렵게 생각되었던 일들이 작고 하찮은 일로 여겨지면서 한껏 커진 느낌이 들기도 한다. 시인은 “땅에 머리 대고 하늘을 보니/먼 산의 능선이/발목에 와 걸린다”며 ‘우리는 이미 하늘에 담겨 살고 있었다’고 일깨운다. 담대하고 큰 희망을 품으라고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시인의 「하늘」은 우리를 얼마나 고무시키는가. 어린이의 눈을 닮고 귀를 닮으려 무던히도 노력하는 장옥관 시인이지만 긴 세월을 살아 낸 어른의 연륜으로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꿈과 용기를 가진다면 두려운 것도 부러운 것도 없을” 거라며 어린 친구들의 등을 토닥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