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원주민, 즉 인디언 역사의 과거와 현재를 환상적이고도 사실적인 문체, 미로와도 같은 치밀하고 복잡한 플롯으로 그려낸 루이스 어드리크의 『비둘기 재앙』이 국내에 출간된다. 『비둘기 재앙』은 2009년 퓰리처상 최종후보에 올라 마지막까지 당선작과 경합을 벌였으며, 같은 해 애니스필드 울프 도서상을 수상했다.
치페와족 어머니와 독일계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작가 루이스 어드리크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시와 소설, 어린이책 등 폭넓은 집필 활동을 해왔다. 1984년 첫 장편소설 『사랑의 묘약』으로 전미비평가협회상, 1987년 단편 「붓꽃」으로 오 헨리 단편소설상, 1998년 『영양 아내』로 세계판타지문학상, 2006년 어린이책 『침묵의 게임』으로 스콧 오델 역사소설상을 받은 어드리크는 평론가 케네스 링컨이 명명한 문학계 ‘아메리카 원주민 르네상스’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그녀의 작품이 정식으로 국내에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미국 소설가 필립 로스가 “루이스 어드리크의 상상력의 자유로움이 절정에 도달했다. 『비둘기 재앙』은 진정 눈부신 걸작이다”라고 극찬한 이 작품은 그녀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서구에서 유입된 가톨릭과 인디언 토착문화의 갈등, 소수민족으로서 인디언의 정체성 문제, 인디언 구술사의 계승과 기억의 문제를 타고난 이야기 솜씨와 빼어난 유머 감각으로 수십 년에 걸친 복잡하고 종잡을 수 없는 다채로운 이야기와 개성 넘치는 인물들을 통해 풀어놓은 『비둘기 재앙』은 인디언의 역사와 문화를, 그리고 삶을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하도록 한다.
인디언의 과거와 현재를 독특한 구성으로 그려내다
플루토에서는 매우 극적인 일이 일어났다. 1911년에 일가 다섯 명, 그러니까 부모, 십대 소녀, 여덟 살과 네 살 소년이 살해당했다. 후끈 가열된 분위기에서 한 무리의 사내들이 인디언 몇 명을 쓸어버렸고, 그 사건은 당시 ‘부당한 정의’로 불린 수치스런 일의 한 부분이 되었다. 타운은 언급을 회피한다.(474쪽)
화자와 시점을 달리하는 여덟 개의 이야기가 모여 하나의 장편을 이룬 『비둘기 재앙』은 백인 가족 살해 사건과 그 보복으로 교수를 당한 인디언의 이야기를 축으로 한다. 소설은 잠든 아기의 옆에서 울린 알 수 없는 총성으로 시작해, 인디언 보호구역에 사는 소녀 에블리나, 인디언 부족 판사 쿠츠, 인디언 사이비교주와 결혼한 월데, 인디언은 치료하지 않는 백인 여의사 로크렌이 돌아가며 자신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각기 독립적인 이야기들은 인물과 내용이 겹치고 이어지다 마지막에 가서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이야기로 수렴된다.
이 이야기들 안에는 수많은 다른 이야기들이 공존하는데, 에블리나의 할아버지 무슘이 들려주는 비둘기가 세상을 덮었던 그 옛날 이야기, 가족들의 치명적이고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 인디언을 잡아먹는 백인 사냥꾼 전설, 백인 살해 사건과 인디언에게 가해진 린치 사건, 못생긴 외모 때문에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고질라 수녀와 그녀를 사랑하게 된 에블리나 이야기, 인디언 여자를 사랑한 와일드스트랜드가 자기 아내의 납치극을 벌인 이야기, 정신병원에서 처음 경험한 에블리나의 동성애 이야기, 무슘의 동생 샤멩과의 바이올린에 얽힌 복잡한 가족사, 타운 개척 시대의 이야기 등이 그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는 홀리 트랙이라는 인디언 소년의 교수형과 직간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는데, 몇 세대에 걸쳐 그의 죽음을 회피하거나 기록하거나 참회하는 인물들을 통해 진실이 조금씩 드러난다. 무슘과 에블리나, 고질라 수녀는 홀리 트랙의 죽음을 말하고 기억하고 나름대로 책임을 지려 한다. 만 월데나 와일드스트랜드 같은 백인들의 삶도 인디언 학살과 무관하지 않은데, 가해자와 피해자의 후손과 지인은 자기도 모르게 그 사건의 영향을 받으며 관계를 맺거나 그르친다.
나는 역사가 삶 속에서 어떻게 저 혼자 흐르는지 생각한다. 부켄도르프 가 사람들, 와일드스트랜드 가 사람들, 피스 가 사람들, 그들 모두의 배경에는 그 목매단 사건이 뒤엉켜 있다.
나는 코윈의 종조부 커스버트와 아시지낙, 홀리 트랙을 목매단 그들 전부를 생각한다. (……) 우리 중 일부는 존재의 봄날에 이미 죄의식과 희생이 뒤섞여버려 밧줄을 풀어낼 길이 없다.(390~391쪽)
어드리크는 환상적이고도 사실적인 어조로 풍자와 유머 가득한 이야기를 전개해간다. 이 과정에서 각 에피소드는 모든 이야기와 연결되고 전체 이야기는 각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데, 이러한 글쓰기 방식으로 어드리크는 단편과 장편의 경계를 초월하는 새로운 형태의 소설로 소수자에 대한 새로운 역사를 썼다는 평가를 받았다.
소수자의 눈으로 그린 세상
『비둘기 재앙』은 루이스 어드리크의 다른 작품들처럼 인디언의 구술 전통이 살아 있다. 전통적인 인디언의 육성을 통해 자신들의 역사를 인식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인디언의 문화를 드러내는 것이다. 소설의 인물들은 인디언 보호구역의 삶에 적응하고 생존을 위해 백인문화와 사회적 지위를 받아들이지만, 자연과 교감하고 자연의 힘과 일체가 되는 샤머니즘 전통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원초적 세계를 깊이 기억하고 백인 지배문화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견지한다.
무슘은 늙은 버펄로 사냥꾼들이 온 땅을 뒤덮은 파괴의 덮개 밑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말해주었다. 극도의 굶주림 속에서 그들은 하얗게 칠한 상업용 운반기의 벗겨질 것 같은 표면을 보았고, 불에 탄 밀 아래로 녹색 풀밭을 보았고, 피를 빨아먹은 이처럼 다시 살이 차오른 버펄로를 보았고, 그 거대한 짐승의 무리가 무성히 자란 풀밭을 발굽으로 납작하게 짓이기며 이동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이 고개를 들자 하늘은 새 떼로 뒤덮여 이 끝에서 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컴컴했다. 새들은 낮게 날았고, 천둥처럼 몰려왔다.(391쪽)
등장인물들은 살아남은 인디언으로서 자신의 외로움과 열정을 여러 방식으로 표출한다. 무슘은 이야기로, 샤멩과는 바이올린 연주로, 에블리나의 어머니는 엄격한 질서로, 마약거래 등 일탈을 거듭하던 코윈 피스는 음악으로. 소설의 주요 서술자인 에블리나는 여성으로 성장하며 같은 여성인 고질라 수녀를 사랑하고, 혼혈 인디언으로서 프랑스를 동경하며, 자신의 꿈에 취해 프랑스인같이 보이는 노네트와 동성애를 벌이고, 프랑스 작가 아나이스 닌의 삶을 동경한다. 하지만 결국은 인디언으로서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코윈 피스와 사랑을 이룬다. 만 월데는 남성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으로 사이비교주 빌리 피스와 결혼하지만 폭력과 학대에 고통받다 결국 기독교의 신이 아닌 인디언의 주술 방식으로 원초적인 힘을 회복해 독사로 남편을 죽이고 아이들과 함께 탈출한다. 이렇듯 『비둘기 재앙』은 인디언의 역사를 포함해 젠더 문제와 사회적 계층 문제까지를 폭넓게 아우른다. 어드리크는 여성의 성장과 섹슈얼리티 문제, 비주류 계층의 문화를 묘사함으로써 소수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힘을 획득한다.
반쯤 미치고 반쯤 마약에 취하고 반쯤 치페와족인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무슘과 샤멩과가 오후가 다 지나도록 앉아 있는 모습을 생각한다. 노네트가 웅크리고 누워 있던 침대―아주 따스하고 짙은 황금색인―에서 나는 아름다운 여자들이 라틴어 미사 경본을 내민 채 흰색 드레스 차림으로 비둘기들을 쫓아달라고 고대의, 이방의, 권위의 언어로 기도하면서 밀밭을 걸어가는 것을 본다.(392쪽)
추리소설과도 같은 구성으로 역사에서 가려진 단 하나의 진실을 찾아가는 『비둘기 재앙』은 역사의식에 기반한 예리한 통찰력으로 쉽지 않은 주제를 다루면서도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견지한다.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의 목소리와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역사와 진실의 문제에 맞닥뜨린다. 그리고 스스로의 역사를 받아들임으로써 타인을 이해하고, 풍요로운 자연과 영혼에 대한 일체감을 느끼면서 결국 삶과 화해하고 과거를 품은 채 미래로 나아간다. 루이스 어드리크는 진실의 문제가 개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통해 비극적 역사에 대한 화해와 공존의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전한다.
우리는 흙먼지 날리는, 납작하게 드러누운 겨울 풀밭을 지나 나무 그늘 밑으로 들어갔다. 나무는 저 홀로 들판에 서서 사방에서 떨어지는 햇빛을 받으며 캔들라브라 촛대처럼 우아하게 가지를 뻗고 있었다. 새로 기도문을 써놓은 빨간색, 초록색, 푸른색, 흰색 깃발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나부꼈다. 태양은 나뭇가지에 나지막이 걸려 황금색으로 너울거리고, 나무는 여리디여린 새잎을 살포시 내보였다.
무슘은 부츠 두 짝을 묶어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그것을 높이 던져올렸다. 세 번을 던지고서야 나뭇가지에 걸렸다. (……) 무슘은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끔벅거리며 작고 검은 가지에 돋아난 얇고 푸른 잎사귀를 올려다보았다. “아위, 아가야. 비둘기들이 아직도 저 위에 있구나.”(407~408쪽)
추천사
루이스 어드리크의 상상력의 자유로움이 절정에 도달했다. 『비둘기 재앙』은 진정 눈부신 걸작이다. 필립 로스(소설가)
루이스 어드리크는 매우 드물고 뛰어난 글을 쓰는 작가다. 날카로운 시각을 지닌 만큼 큰 공감을 끌어낸다. 앤 타일러(소설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마술적 기량과 포크너의 현실적인 미국적 어조가 어우러진 작품. 루이스 어드리크는 이미 그녀 최고의 야심작을―그리고 여러 면에서 가장 깊은 감동을 주는 작품을―내놓았다. 뉴욕 타임스
루이스 어드리크의 놀라운 신작을 읽는 것은 뛰어난 이야기꾼의 불타오르는 듯한 상상력 속으로 풀쩍 뛰어드는 것이다. 수십 년에 걸친 복잡하고 종잡을 수 없는 풍성하고 다채로운 이야기들의 모자이크. 마이애미 헤럴드
매혹적이다. 절묘한 희극 타이밍과 비극에 관한 놀라운 감각을 동시에 지닌 어드리크는 『비둘기 재앙』에서 수준 높은 자기만의 스타일로 ‘우리 존재의 강’을 끊임없이 조명한다. 북리스트
루이스 어드리크는 격렬한 공포와 신화 그리고 살아 있는 사람들의 파멸을 힘들이지 않고 포착해내며, 그러한 그녀의 능력은 독자들의 숨을 멈추게 한다. 뉴요커
그녀의 언어는 매우 은유적이고 서정적이며, 등장인물들의 목소리는 동시대 소설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그 어떤 목소리보다도 매력적이다. 시카고 매거진
사고와 마음과 영혼 깊이 만족감을 주는 복잡하고 섬세하게 짜인 태피스트리 같은 소설. 오프라 매거진
옮긴이 정연희
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옮긴 책으로 『새해』 『죽음과의 약속』 『인문학의 즐거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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