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슬비 내리던 장날 (문학동네동시집 14)
- 저자
- 안학수
- 저자2
- 정지혜
- 출판사
- 문학동네
- 발행일
- 2010-07-30
- 사양
- 124쪽 | 153*200 | 마루양장
- ISBN
- 9788954611794
- 분야
- 동시/동요/희곡, 문학동네동시집
- 정가
- 10,500원
-
도서소개
동시에서
슬픔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다
갯벌과 갯것들의 생명력을 한결같이 노래해 온 안학수 시인이 새 동시집 『부슬비 내리던 장날』을 펴냈다. 『부슬비 내리던 장날』은 주로 경쾌하고 발랄한 시어로 삶의 희망을 노래하는 여느 동시집과는 사뭇 다르다. 농촌과 도시 변두리에서 힘없고 소외된 채로 살아가는 할아버지 할머니 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노래한 시, 작고 하찮은 생명과 사물들의 존재 의의를 따뜻한 시선으로 성찰한 시, 파괴되는 갯벌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심정을 담은 시들을 묶은 이 시집에서 우리는 슬픔의 힘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
저자
시│안학수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다. 소년이었을 때부터 동시를 썼고 1993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된 뒤 지금까지 죽 동시를 쓰고 있다. 동시집 『박하사탕 한 봉지』 『낙지네 개흙 잔치』를 펴냈다. 한국작가회의 회원이며 지금은 충남 보령에서 시를 쓰고 있다.
그림│정지혜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다. 대학에서 만화예술을 공부했고, 그림책을 만들면서 그림으로 아이들과 소통하는 다양한 방법을 찾고 있다. 『어린이집 바깥 놀이』 『골목에서 소리가 난다』에 그림을 그렸고, 글과 그림을 함께한 책으로 『다 내 거야!』가 있다.
-
목차
-
편집자 리뷰
안학수 시인은 이제 삶의 끝자락만을 남겨 둔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의 고즈넉한 삶을 들여다보고 있다. 자식들이 모두 도회지로 떠난 시골에 혼자 남아, 늘 그래 왔듯이 “무딘 호미 들고/결린 허리 끌고//이랑을 돋우고/고랑을 매 주고” 하루해를 보내는 할머니(「산비둘기 소리」), 정든 이웃들 모두 떠난 텅 빈 골짜기에서 피사리하느라 “논배미의 하얀 꽃이 된” 할아버지(「마지막 논지기」) 등 이 땅과 바다에 젊은 날을 모두 내준 조부모 세대의 쓸쓸한 삶을 노래한다.
장날 작은 수레를 끌며
이천 원짜리 모기약 팔던
허리 굽은 할아버지
모기약 하나 사려고
장날마다 찾아봐도
부슬비 내리던 장날 본 뒤
지지난 장부턴 보이지 않는다.
할아버지랑 친했던
과일 장수 아저씨 말
급성폐렴으로 돌아가셨다 한다.
그날 꼬치구이 먹지 말고
모기약을 샀어야 했다.
부슬비를 다 맞으며
장거리를 돌고 돌던 할아버지
―「부슬비 내리던 장날」 전문
표제작 「부슬비 내리던 장날」을 읽으면 작은 수레를 끌고 장거리를 돌며 모기약을 파는 초라한 입성의 할아버지가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장날마다 무심코 지나친 수레 끌던 할아버지는 정작 모기약 하나 팔아 드리려고 하니 보이지 않는다. 알고 보니 부슬비를 다 맞고 장거리를 돌다가 폐렴에 걸려 돌아가신 것. 할아버지의 궁핍하고 외로웠을 삶의 모습과 그날 모기약을 사지 않고 꼬치구이를 사먹은 화자의 후회하는 마음이 겹치면서 가슴이 저릿한 슬픔이 전해져 온다.
따뜻한 성찰, 담담한 시어
힘없고 여린 존재들에 대한 시인의 살핌은 장거리에서도 해수욕장에서도 이어진다. 장거리에 끌려나와 팔리기만을 기다리는 동물들이 “잔뜩 겁먹고 조용히 엎드려/숨을 할딱거린다”(「오늘은 장날」)고 표현한 것이나, 해변에서 사람들을 태운 채 종일 끌려 다니는 하얀 말을 보고 “어쩌다 여기까지 팔려 왔는지/붐비고 버거운 어젯밤, 또/야멸스런 마부에게 채찍 맞으며/짜증도 못 내던 노예 말 흰둥이”(「해수욕장의 노예」)라고 한 시인의 노래에서 우리는 힘없는 존재들의 처연한 삶을 본다. 갯가의 힘없는 생명들이 서로 의지하면서 살붙이처럼 지내는 모습이 시인에게 큰 감동이었던 것은 힘없고 여린 존재들에 대한 시인의 공감에서 비롯된다.
배고프고 오갈 데 없다고
느닷없이 찾아온 눈먼 게 하나
바람 차고 물결 거친 바다에서
도로 내칠 수는 없어
어진 가무라기는
단칸방 움집으로 맞아들였다.
겨운 삶을 가엾이 여겨
따듯이 보살펴 주니
그대로 눌러앉은 속살이게
고마운 줄 알겠다지만
신세를 꼭 갚겠다지만
집게발이 너무 느리고 여리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거저 베푸는 가무라기
갯가에선 이웃도 살붙이란다.
-「가무라기의 마음」 전문
가무라기에 붙어사는 속살이게의 생태를 보고 시인은 어질고 넉넉한 마음의 가무라기를 보았다. 베품에 있어서도 조건을 달고 보답을 기대하는 인간 사회를 어렴풋이 보게 되는 이 시에서 시인이 서로 말없이 보듬고 돕는 자연의 너른 마음을 얼마나 깊이 가슴에 담았는지 알게 된다.
거센 비바람 속에서도
힘없는 풀잎들이
엎치지 않는 건
벌레들 때문이다.
뿌리까지 흔들려도
풀잎에 품은 벌레들
숨 막히지 않게
자꾸 일어나는 것이다.
거친 비보라 몰아쳐도
가벼운 갈대들이
꺾일 수 없는 건
물새 둥지 때문이다.
꺾일 듯 굽히다가
허리춤에 달린 둥지
물새 알 쏟을까 봐
자꾸 허리 세우는 것이다.
-「힘없고 가벼워도」 전문
가벼운 갈대들이 비바람 속에서도 기를 쓰고 제 몸을 일으키는 것이 제 안에 품고 있는 생명을 다치게 할까 봐 조심하는 것이라고 보는 안학수 시인은 그래서인지 갯벌의 생명들이 받는 고통을 무심히 넘길 수 없다.
어버이를 잃은 사람이
가슴에 단다는 삼베 리본
섬자락 모래펄에 달렸습니다.
검은 기름 파도가
갯바위 벼랑까지 덮친 날
뻘게 낙지 조개 고둥 개불 쏙……
갯벌 가족을 한꺼번에 잃고
울부짓다 넋 잃은 바지락 조가비
가슴 열고 리본 되었습니다.
-「삼베 리본」 전문
‘갯벌 시인’으로 통할 만큼 파괴되는 갯벌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심정과 그럼에도 멈춤 없이 생명력을 과시하는 갯벌들에 대한 경이로움을 아름다운 시어로 풀어내 온 안학수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도 갯벌에 대한 사랑을 놓지 않았다. 해설을 쓴 최종득 시인은 검은 기름으로 뒤덮인 태안반도 옆에서 사는 안학수 시인이 날마다 바닷가에 가서 기름떡을 캤을 거라고 말한다. 기름떡을 캐면서 “갯벌에 죽어 있는 수많은 생명들을 보며 가슴 아파 울고 또 울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최종득 시인의 말대로 바지락이 열어젖힌 조가비 리본은 시인의 슬픈 마음을 그대로 나타낸 것일 테다.
슬픔을 힘으로 만드는 동시
안학수 시인은 자신이 시를 쓰는 것은 어린이 마음을 얻고 싶어서였다고 하면서 어린이 마음을 좇다 보니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고 한다.
“사람 사이의 아름다움이란 즐겁고 해맑은 웃음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슬픔의 감동이 즐거움의 감동보다 더 진하게 느껴졌습니다. 사람 사이의 아름다움이란 서로 나누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서로 나누면 즐거움은 배가 되고 슬픔은 반이 된다는 말과는 조금 다른 뜻입니다. 그 아름다움이란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입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곳, 돌아갈 수 없는 그때를 그리는 마음입니다. 서로 함께함으로 맺어지는 따듯한 정입니다.”
시인은 슬픔의 아름다움을 맺으며 자란 시인 세대와는 달리 지금 어린이들은 슬픔의 아름다움과 너무 먼 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나 자연과 마음을 나누지 않고 컴퓨터와 게임기와 함께하고 있는 어린이들이 『부슬비 내리던 장날』을 통해 조금이나마 슬픔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시인의 소망이다.
동시에서
슬픔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다
갯벌과 갯것들의 생명력을 한결같이 노래해 온 안학수 시인이 새 동시집 『부슬비 내리던 장날』을 펴냈다. 『부슬비 내리던 장날』은 주로 경쾌하고 발랄한 시어로 삶의 희망을 노래하는 여느 동시집과는 사뭇 다르다. 농촌과 도시 변두리에서 힘없고 소외된 채로 살아가는 할아버지 할머니 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노래한 시, 작고 하찮은 생명과 사물들의 존재 의의를 따뜻한 시선으로 성찰한 시, 파괴되는 갯벌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심정을 담은 시들을 묶은 이 시집에서 우리는 슬픔의 힘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