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과 일상은 언제나 예측불허, 이제 해피엔드는 없다
독창적인 서술 트릭을 선보인 장편소설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와 고전 추리소설의 법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밀실 트릭 3부작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로 국내 독자들에게서 많은 사랑을 받은 우타노 쇼고가, 이번에는 시니컬한 유머와 기발한 반전 트릭을 마음껏 발휘한 소설집 『해피엔드에 안녕을』을 선보인다. 길이와 소재는 제각각이지만 결말은 전부 배드엔드로 끝난다는 공통점을 지닌 11편의 작품은, 종이 한 장 정도의 차이로 범죄의 경계선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우리의 일상을 묘사하며, 일견 극단적이고 음침해 보이지만 은근히 현실적인 등장인물의 모습들을 통해 씁쓸하고도 통쾌한 뒷맛을 남긴다.
낯익은 풍경과 상황 속에서 빚어내는 짓궂은 반전의 오브제!
『해피엔드에 안녕을』은 본격 미스터리의 틀을 넘어 호러, 블랙코미디, 심리소설의 범위까지 아우르며 우타노 쇼고식 단편의 각양각색의 매력을 보여준다. 마지막 한 줄로 독자의 예상을 배반하는 특유의 반전 트릭도 여전히 유효하지만, 크고 작은 범죄와 사회문제들의 아이러니컬한 단면을 그려내며 때로는 실소를, 때로는 경악을 불러일으키는 인물 묘사가 특히 눈길을 끈다.
부모의 일방적인 편애를 받는 언니를 질투하는 소녀(「언니」), 마지막으로 마운드에 서는 야구선수 아들을 응원하는 어머니(「지워진 15번」), 해마다 놀러가는 시골 친척 집에서 비밀의 방을 발견한 소년(「죽은 자의 얼굴」), 일생일대의 명문 초등학교 입시를 앞둔 어린 딸(「방역」), 미팅에서 만난 남자의 편지와 선물 공세에 시달리는 젊은 여자(「살인 휴가」), 인적 드문 공원에서 혼자만의 안락한 생활을 영위하던 노숙자(「존엄과 죽음」) 등, 작품에 등장하는 건 각자 기기묘묘한 사연을 갖고 있을지언정 어떻게 보면 우리 주위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들이다. 그들의 인생은 아주 사소한 계기로 엇나가기 시작해 이윽고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고, 때로는 복잡하게 얽히고 물리는 주위 관계 속에서 아이러니컬한 전개를 맞곤 한다. 당연한 예상을 뒤엎는 결말을 통해 인생사의 한 단면을 짓궂게 보여주는 절묘함이야말로 이 작품집의 묘미라 할 수 있다.
주요 단편 내용
「언니」 자기보다 나은 점이 없는데도 부모의 일방적인 사랑을 받는 언니를 질투하는 리나. 평소 친구처럼 가까이 지내는 이모 미호코에게 그간의 불만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미호코는 리나의 말과 집 안의 모습에서 평소와 다른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다.
「벚꽃 지다」 술주정뱅이 남편을 보살피면서 궂은 일도 마다않고 열심히 생활하는 한 중년 여자. 그리고 아무도 목격하지 못한 그들의 수험생 아들. 이웃사람 눈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과연 진실이었을까?
「지워진 15번」 일찍이 남편을 잃고, 착실하게 자라나 고등학교 야구선수가 된 아들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어머니. 아들이 오랜 부진을 딛고 15번 등번호를 달고서 드디어 전국대회에 나서는 날, 예기치 못한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 그녀의 희망을 가로막는다
「죽은 자의 얼굴」 어린 시절 여름방학 때마다 놀러 가던 시골 외갓집. 고풍스러운 저택 안에는 누구도 엿봐선 안 되는 금기의 방이 있었다. 계율을 깨고 그 안으로 발을 들인 ‘나’는 놀랄 만한 광경을 맞닥뜨리는데…
「방역」 우연한 계기로 자식 교육의 열풍에 휩싸여버린 마치코. 어린 딸 유카리에게 명문 유치원과 초등학교 입시를 강요하며 혹독한 훈련을 시킨다. 그러나 타고난 능력이 부족한 유카리는 좀처럼 마치코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마치코는 시험 날이 다가올수록 초조함에 시달리기만 한다.
「강 위를 흐르는 것」 한적한 어느 마을 파출소로 강가에 시체가 흘러가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온다. 그러나 그의 실상은 살아 있는 사람, 그것도 건장한 남자 고등학생이었던 것. 추궁하는 경찰에게 그는 학교 친구들과 내기를 한 거라 변명하는데, 주위에 있어야 할 친구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살인 휴가」 미팅 자리에서 만난 남자와 기묘한 관계를 맺게 된 리에. 값비싼 선물공세와 함께 스토커에 가까울 정도로 집요하고 끈질기게 구애하는 모습에 질려버린 리에는 더이상 만나지 않겠다고 선포하지만, 그는 좀처럼 포기하지 않는데…
「존엄과 죽음」 인적 없는 공원에서 혼자만의 생활을 즐기고 있는 노숙자 무라노. 평온하던 그의 일상에 이유 없는 폭력과, 달갑지 않은 도움의 손길이 동시에 뻗쳐온다.
본문에서
나는 이즈미 유리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이 세상에 보내졌고, 그 사명을 다했을 때에 내 존재의의도 소멸했어. 지금 여기 있는 나는 살아 있는 시체야. 진주를 뽑힌 진주조개, 매미의 허물, 산란을 마친 연어, 하드디스크가 망가진 컴퓨터.
_「언니」에서
나는 도베 슈지를 미워하고 있었다. 사고를 당해서 죽어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렇지만 죽여버리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사고사를 바라는 마음과 살의를 품는 것, 이 둘에 차이가 있을까. 있다면 자신의 손을 더럽히느냐 더럽히지 않느냐의 차이가 아닐까.
_「살인 휴가」에서
추천의 말
우리말 표현 중 ‘깨소금 맛이다’란 관용구가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도 아시다시피, 남의 불행을 보고 통쾌하다는 뜻으로 쓰이는 표현입니다. 영미권에는 이와 비슷한 표현으로 ‘schadenfreude’란 단어가 있습니다. 원래는 독일어인데 타인의 불행을 보고 즐거워함을 뜻하는 말이죠. 이런 점을 보면 동서를 막론하고 인간에게는 ‘남의 불행을 보고 즐거워하는 감각’이 있는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나락으로 굴러떨어지는 인물들을 지켜보며 히죽거린 것이 마음에 걸린 독자가 계시다면 혼자만 그런 것이 아니므로 걱정 마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_옮긴이의 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