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심장부에서』는 2003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존 쿳시가 1977년에 발표한 두번째 장편소설로 국내에 처음 번역 소개되는 작품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최고 문학상인 CNA 상을 수상하기도 한 이 작품은 쿳시의 첫 장편 『어둠의 땅』과 더불어 작가가 이후 펼치게 될 문학세계를 아우르는 문제작으로 꼽힌다. 잘 알려져 있듯 쿳시의 작품세계는 서구 식민지였던, 아니 지금도 여러 면에서 식민지인 남아프리카의 지배와 피지배, 억압과 피억압이라는 모순된 사회 구조를 근간으로 한다. 이러한 사회 모순의 이면에는 ‘서구 문명의 합리주의와 위선적 도덕성’이 자리하고 있고, 식민지 역사가 지속되면서 이는 원주민뿐 아니라 식민주의자까지도 비틀린 정체성을 갖도록 만들었다. 2003년 스웨덴 한림원이 쿳시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쿳시의 작품은 정교한 구성, 풍부한 대화, 그리고 예리한 분석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특히 그는 서구 문명의 잔인한 합리주의와 위선적인 도덕성에 가차 없는 비판을 가하는 등 서구 제국의 행태를 준엄한 목소리로 고발해왔다”고 평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라고 할 수 있다. 『나라의 심장부에서』는 이와 같은 남아프리카의 모순된 사회 구조가 어떤 식으로 식민주의자이지만 온전히 ‘식민주의자’일 수만은 없는 한 인간의 내면세계를 철저하게 파괴하고 정신적 분열을 가져오며, 그것이 심각한 정체성의 혼란으로 이어지는가를 황폐하고 고립된 남아프리카의 한 시골 농가를 배경으로 하여 쿳시 특유의 심리적이고 철학적인 사유 방식으로 풀어간다.
이 황량한 미지의 곳 한복판에서 사유를 거듭하는 ‘나’는 누구인가?
남아프리카의 황량한 시골 마을 외딴 농가에서 백인 아버지와 흑인 하인들과 살아가는 처녀 마그다. 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지나칠 만큼 남다른 그녀는 딸을 하인 정도로만 취급하며 무관심한 아버지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 그리고 ‘주인의 딸’로서 문자를 배워 책을 읽을 수 있는 등 교육과 문명의 혜택을 받았음에도 하인과 똑같이 집 안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그러면서도 그들과는 친구가 될 수 없어 스스로 친구라고 느끼는 존재는 땅을 기어다니는 벌레뿐인 자신의 상황에 혼란스럽다.
나는 인간의 욕망이 찾는 것과 직면하기를 머뭇거린다. 침침한 방 안 베개 밑에서 이를 악물고 고통의 핵에 정신을 집중하며 나는 내 존재의 존재성에 망연자실해 있다. 내면을 노래하는 여성 시인, 돌의 내면, 개미의 감정, 사고를 담당하는 뇌의 의식 등을 탐구하는 사람, 나는 이런 존재가 되기로 예정돼 있었나보다. 죽음을 제외한다면, 그것이 사막의 삶에서 나한테 맞는 유일한 일인 것처럼 보인다.(70쪽)
그러던 어느 날 하인 헨드릭이 안나라는 어린 여자를 아내로 데려오고, 아버지는 그 여자에게 눈독을 들이다 결국 자신의 침실로 끌어들인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헨드릭의 아내에 대한 질투로 감정이 극에 달한 마그다는 아버지의 침실 창문으로 총을 쏘고, 결국 아버지는 죽는다. 마그다는 헨드릭을 채근해 아버지의 시체를 땅에 묻고, 아버지의 모든 물품을 불태우고 흔적을 지운다. 그리고 모든 농장 일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크게 헨드릭에게 의존하지만, 헨리는 마그다가 자신들에게 임금을 줄 돈이 없다는 사실을 알자 폭력을 휘두르며 그녀를 겁탈하고, 헨리와 안나는 주인의 옷을 함부로 꺼내 입으며 마그다를 무시한다. 그럼에도 마그다가 의지할 사람이라곤 하인인 그들뿐이다.
채워야 할 나날도 있다, 아무런 목적이 없는 나날들. 우리 셋은 이 집 안에서 우리의 진정한 길을 찾을 수 없다. 나는 헨드릭과 안나가 손님인지 침략자인지 죄수인지 모르겠다. 나는 더이상 전처럼 내 방에 들어앉아 있을 수 없다. (……) 그녀는 헨드릭과 둘이서만 있고 싶은 게 틀림없다. 하지만 헨드릭은 내가 그녀와 헨드릭을 원하는 것처럼 그녀와 나를 원한다. 나는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모른다. 불균형이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모른다.(214~215쪽)
시간이 지나자 마을 사람들이 사라진 마그다의 아버지를 만나러 농장을 찾아온다. 마그다는 일을 보러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마을에는 그가 죽임을 당했을 거라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한다. 그러자 살인자로 몰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헨드릭과 안나는 마그다만 남겨두고 함께 도망쳐버린다.
외딴 농가에 홀로 남아 외롭게 살아가는 마그다는 어느 날부터인가 하늘을 지나는 비행선에서 스페인어로 말하는 격언을 듣는다. 마그다의 입장에서는 맥락이 닿지 않는 그 말들이 그녀를 더욱 초조하고 혼란스럽게 만든다. 마그다는 주변에서 돌을 모아와 자신의 메시지를 비행선에 전하려 하지만 비행선은 아무런 회신도 보내지 않는다. 마그다는 이 황량하고 고립된 공간에서 쓸쓸히 늙어간다.
존재의 정체성을 찾아 유영하는 독백의 드라마
그러나 소설은 이처럼 단선적 줄거리로 진행되지 않는다. 바로 이 점이 이 소설이 접근하기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쿳시의 소설을 통틀어 가장 어렵고 복잡하게 느껴지는 이유일 것이다. 마그다의 독백 혹은 일기 형식을 취한 이 소설은 어떤 일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고 어떤 일이 상상 속에 일어난 일인지 종잡기 어려울 만큼 실제와 상상을 혼란스럽게 오가고, 때로는 사건이 서로 모순되는 경우도 많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마그다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인지도 모르고, 그녀는 모든 것을 꾸며냄으로써 스스로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건지도 모른다. 이는 식민지 땅 아프리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살아가는 식민주의자의 불안정한 내면을 반영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렇듯 『나라의 심장부에서』는 쿳시가 이후 작품에서 꾸준히 천착해온, 서구 제국주의가 식민지 땅 아프리카에 저질러온 폭력과 억압의 역사라는 주제의식과 그에 대한 쿳시 특유의 깊은 철학적 통찰력과 정교하고 예리한 문체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따라서 쿳시 문학의 ‘발원’이라 단언할 수 있을 만큼 쿳시의 문학세계를 전반적으로 폭넓게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지점에 놓여 있다.
추천사
『나라의 심장부에서』는 외로움, 사랑에 대한 갈망, 주인과 노예, 백인과 흑인 사이의 관계, 그리고 인간의 세속적 고뇌와 구원의 열망에 관한 소설이다. 일단 이 소설에 사로잡히면 쉽게 빠져나갈 수 없다. 앙드레 브링크(소설가)
역사의 부재, 역사가 깨지기 이전의 긴박한 고요를 노래한 지적 서정시. 문화적 정신분석과 진단에 관한 작품으로 눈부시게 세심하다. 톰 폴린(시인)
욕망과 타락, 환상에 관한 강렬한 몰두. 옵저버
적나라하고 자극적이면서도 간결한, 사실적인 우화. 뉴욕 타임스
문체와 분위기가 일관된 강렬함을 유지하는 놀라운 작품이다. 잘못된 단어 하나가 이 짧은 걸작을 완벽하게 망가뜨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데일리 텔레그래프
옮긴이 왕은철
전북대 영문과 교수이며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문학평론가이다. 이어하트재단, 케이프타운 대학, 풀브라이트재단의 펠로였고, 케이프타운 대학과 워싱턴 대학의 객원교수를 지냈다. 쿳시의 『어둠의 땅』 『야만인을 기다리며』 『마이클 K』 『철의 시대』 『페테르부르크의 대가』 『추락』 『소년 시절』 『엘리자베스 코스텔로』 『슬로우 맨』 『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와 그 외에 『거짓의 날들』 『비밀요원』 『한톨의 밀알』 『천 개의 찬란한 태양』 『연을 쫓는 아이』를 비롯해 30여 권을 번역했고, 『J. M. 쿳시의 대화적 소설』 『문학의 거장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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