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과 죽음, 그 철학적인 물음에 대한 가장 문학적인 대답
유럽 문학 그랑프리(1976)를 수상한 미셸 데옹의 아름다운 ´무한´ 이야기
무한의 끝은 어디일까? 『토마의 무한 여행』은 아무도 모르는 ´무한의 끝´을 향한 이야기이다. 상상의 섬나라에서 만난 삶과 죽음 사이에 사는 모리스를 통해, 주인공 토마는 언제나 궁금했지만 누구도 풀어 주지 못했던 ´무한´을, 알게 된다는 이야기.
프랑스 갈리마르에서 1975년에 발표된 『토마의 무한 여행』은 수식어가 필요 없는 번역가 김화영의 감식안으로 35년 만에 우리나라에서도 출간하게 된 특별한 사연을 가진 작품이다. 김화영의 소개가 아니었다면 우리말로 읽을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를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그의 미려하면서도 말끔한 번역으로 원서의 감동을 그대로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군더더기 없이 꽉 짜인 『토마의 무한 여행』의 작가 미셸 데옹은 이 작품을 쓰기 전에 실제로 자기의 어린 아들 알렉상드르가 “아빠, 무한은 어디서 끝나는 건가요?” 하고 질문했지만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또한 갑자기 병이 난 딸이 입원한 병원을 자주 드나들면서 병원의 많은 아이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 경험에 대한 기억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그를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깊은 생각 끝에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로 넘나드는 모리스와 어린 토마의 환상적인 무한 이야기. 『토마의 무한 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병은 꿈의 출발점
아파서 자리에 누워 있는 어린이는 책을 많이 읽게 되고 상상을 많이 하게 된다. 그 밖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토마도 마찬가지였다.
토마는 발뒤꿈치가 불에 덴 것처럼 아픈 병에 걸려 몇 주일째 학교에 가질 못하고 방 안에 누워 있다. 하루 종일 침대에서 앓게 된 토마는 책을 읽고 인형을 갖고 놀며, 차가운 시냇물에 발을 담그는 상상을 하며 지낸다. 토마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우연히 발견한 토마만의 조용한 섬에서 지내는 시간이었다. 태평양 저 멀리에 있는 섬으로 날마다 비행기를 타고 오가며 집과 섬, 전혀 다른 두 세상에서 사는 건 아무나 누릴 수 없는 특권 같았다. 그 섬은 토마가 좋아하는 동물들이 있고, 토마가 심고 싶은 나무라면 날씨와 상관없이 어떤 종류라도 맘껏 심을 수 있는, 그야말로 토마가 생각하는 대로 이뤄지는 낙원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모리스라는 사람 때문에 토마만의 완벽했던 섬은 달라지고 말았다. 숨을 들이마시면 형체가 뚜렷이 보이는가 싶다가도 이내 흐릿해지고 마는, 투명한 반딧불이의 빛 같기도 하고 이리저리 일렁거리는 환영 같기도 한 그 존재.
모리스가 조금 움직이자 토마의 목덜미로 찬바람이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 바람이 어찌나 싸늘한지 토마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또다시
찬 밀랍과 재 냄새가 숲 속의 빈터에 퍼졌다. 호랑이가 재채기를 하더니
기지개를 켜고 모리스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 사람을 관통하여
사슴들과 사자가 무리 짓고 있는 곳으로 갔다.
"완전, 마법사네요.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토마가 말했다.
(『토마의 무한 여행』18쪽)
친절하지만 변덕스럽고, 아는 것이 많지만 질문은 절대 싫어하는 모리스에게 토마는 이내 익숙해졌다. 모리스에게서 나는 특유의 냄새를 좋아하게 됐고, 모리스가 찾아오질 않으면 불안하기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토마는 용기를 내어 모리스에게 질문을 하기로 한다. 뭐든지 알고 원하는 곳은 어디든 갈 수 있는 마법사 같은 모리스에게 누구도 풀지 못한 질문을 하기로 한 것이다. 영원한 미스터리처럼 토마를 언제나 답답하게 만들었던 그 질문.
"무한은 어디서 끝나는 건가요?"
"맙소사! 이거 만만한 문제가 아닌데. 어떤 무한을 말하는 건데?"
"별님들과 해님들의 무한, 우리 세계 같은, 저 하늘에 보이는 세계들의 무한 말이에요.
그것들 저 너머에는 또 뭐가 있나요?"
"아무도, 그 어떤 사람도 그걸 감당하지는 못해. …
무한을 그려 보일 수 있는 이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닐 테니까."
(『토마의 무한 여행』35쪽)
그리고 마침내 토마는 결정적인 대답의 시간이 왔음을 알게 된다.
우리 마음속을 떠나지 않는 영원한 물음,
´무한의 끝´을 향한 신비한 이야기.
책 뒤에 실은 김화영의 해설처럼, 이 작품은 우리가 흔히 대하는 어린이 이야기들과는 아주 다른, 매우 철학적인 이야기이다. 깊은 생각과 상상을 부르는 ´무한´은 신비스러운 것이지만 동시에 무섭고 슬픈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토마의 무한 여행』이 슬픔이나 고통보다는 상상의 여행이라는 느낌을 주는 것은 바로 ´무한´이 불러일으키는 무한한 매력 때문일 것이다.
"‘무한’은 신비스러운 것이지만 동시에 무섭고 슬픈 것인지도 모릅니다.
무한을 제 눈으로 보고 난 뒤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으로 되돌아온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토마처럼
‘무한은 어디서 끝나는 건가요?’라는 질문을 늘 안고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 질문이 영원한 질문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같이
꿈을 꾸고 상상을 하고 또 새로운 희망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요?
소년 토마의 고통스러운 병과 죽음의 이야기인
이『토마의 무한 여행』이 읽는 사람에게 슬픔이나 고통보다는
신비스러운 상상의 여행이라는 느낌을 주는 것은 바로
무한이 불러일으키는 무한한 매력 때문일 것입니다."
-옮긴이 해설에서, 김화영
-작가 소개-
글쓴이 미셸 데옹 : 1919년 파리에서 태어난 프랑스 소설가, 희곡 작가, 에세이스트. 이른바 ‘경기병파’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자와 편집자 생활을 거쳐 작가가 되었습니다. 스위스, 미국, 캐나다, 포르투갈, 그리스의 스페차이 섬에서 살았습니다. 지금은 아일랜드에 정착하여 집필생활을 하지만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회의와 문학상 심사 등을 위하여 파리를 자주 방문합니다. 그가 이 책을 바친 알리스와 알렉상드르 두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발표한 『스페차이 섬』(1967)을 위시하여 『야생 당나귀』(1970년, 앵테랄리에 상 수상), 『보라색 택시』(1973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 수상), 『이탈리아에서 편지를 쓰노라』(1984년, 메종드라프레스 상 수상) 등 40여 권의 소설을 발표했습니다. 1978년에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 되었습니다. 이 그림책 『토마의 무한 여행』으로 유럽 문학 그랑프리(1976년)를 수상했습니다.
그린이 에티엔 들레세르 : 1941년 스위스 로잔에서 태어났습니다. 같은 도시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다가 프랑스 파리에서 2년을 보내고 1965년 이후 미국에 살고 있습니다. 현대의 가장 널리 알려진 일러스트레이터 중 한 사람으로 광고, 잡지, 영화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교육학자 피아제, 희곡작가 이오네스크와 함께 작업한 작품을 비롯하여 80권이 넘는 책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그래픽 대상을 두 번, 미국 일러스트레이터 협회가 주는 메달을 스무 번 넘게 받았습니다. 이오네스크의 『이야기 1번』 『이야기 2번』, 그리고 『생쥐와 나비들』 『생쥐와 독』 『생쥐와 소리』 등 그가 그림을 그린 수많은 작품들은 14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수백만 부가 발행되었습니다.
옮긴이 김화영 : 서울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쳤습니다. 프랑스 엑상프로방스 대학에서 알베르 카뮈론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30여 년 동안 고려대학교 불문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개성적인 글쓰기와 유려한 번역, 어느 유파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활동으로 우리 문학계와 지성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해왔습니다. 현재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로 있습니다. 『소설의 숲에서 길을 묻다』 『시간의 파도로 지은 城』 『바람을 담는 집』 『문학 상상력의 연구-알베르 카뮈의 문학 세계』 『소설의 꽃과 뿌리-나의 시대의 소설가들』 『행복의 충격』 『어린왕자를 찾아서』 등 10여 권의 저서와, 알베르 카뮈 전집(전 20권), 『섬』 『어린 왕자』 『마담 보바리』 『지상의 양식』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걷기예찬』 『프랑스 현대소설사』 『프랑스 현대시사』 『현대 소설론』 『발라아빌루』 『그 녀석 슈라에겐 별별 일이 다 있었지』 등 90여 권의 번역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