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극작가
셰익스피어가 그린 우정과 자비, 복수의 이야기
셰익스피어의 천재성은 『베니스의 상인』에서도 단연히 드러난다. 1596년경 이 작품이 집필될 당시 영국은 상업이 강성하고 기독교인과 유대인은 반목했다. 이러한 사회분위기를 반영해 동시대 여러 극작가들이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와 ‘살 1파운드의 채무계약’ 이야기를 작품의 핵심 사건으로 활용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베니스의 상인』의 샤일록과 같은 인물을 창조하지 못했다. 문학평론가 해럴드 블룸은 샤일록에 대해 ‘괴물이 아니라 이런 인간이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셰익스피어의 압도적인 설득력, 그 자체’라 해석했다.
셰익스피어는 이 작품에서 샤일록과 법학박사로 남장한 포오셔를 법정에 세워 복수와 자비의 본질을 극적으로 펼쳐 보였다. 또한 불협화음이 가득한 현실세계를 대변하는 베니스와 환희와 화합의 공간인 벨몬트를 대비해 삶을 진정으로 풍요롭게 하는 우정과 사랑 그리고 연인에 대한 신의 등을 유쾌한 희극으로 그렸다.
국내 셰익스피어 연구의 최고 권위자
서울대학교 이경식 명예교수의 번역과 해설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두번째 셰익스피어 작품인『베니스의 상인』은 이미 『템페스트』(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번)로 셰익스피어의 원전에 가장 최적화된 번역을 선보인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이경식 명예교수가 맡아 번역하고 해설을 썼다. 이경식 명예교수는 셰익스피어 4대 비극 번역으로 1997년 한국번역대상을, 셰익스피어 비평사 저작으로 2003년 대한민국학술원상을 수상한 국내 셰익스피어 연구의 최고 권위자다.
본 번역의 원전으로는 셰익스피어 극의 원서로 가장 권위 있는 존 브라운이 편집한 『아든 셰익스피어 총서(The Arden Shakespeare)』를 썼고, 피터 알렉산더가 편집한 셰익스피어 전집의 내용도 참고했다. 약강5보격 무운시 운율의 운문 형식을 따랐고, 고유명사는 실제 발음에 가깝게 표기하고, 의역을 지양해 원문에 가장 충실하게 번역했다.
방대한 분량의 관련 자료를 평생에 걸쳐 연구 조사한 이경식 명예교수의 탁월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작품해설 또한 백미다. 작품 자체에 대한 해설은 물론, 본 작품의 판권 등록 역사를 설명하고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은 저작연대를 추정할 유력한 작품의 내, 외적 증거들을 두루 제시한다. 또한 셰익스피어가 이 작품의 출전으로 활용했을 다양한 작품들을 보여준다. 기원전 로마법의 근본 격인 12동표의 법률에서부터 동시대 극작가였던 크리스토퍼 말로의 극작까지, 『베니스의 상인』 이전에 이미 유사한 이야기가 무수히 있었음에도 셰익스피어의 작품만이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는 까닭을 증명해 보인다.
해외 서평
셰익스피어는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가 알고 있을 인간을 창조해냈다._해럴드 블룸
셰익스피어는 모든 작가들, 적어도 모든 현대작가들보다 상위에 있는 자연의 시인이다. 그는 인간의 세태와 삶을 비추는 충실한 거울을 독자들 위에 들고 있다. 다른 작가들의 작중인물이 개체에 머물고 있다면, 셰익스피어의 작중인물은 이른바 인류이다._새뮤얼 존슨(18세기 영국의 대문호)
본문 발췌
포오셔 자비의 본질은 강압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하늘에서 대지 위로 내리는
고마운 비와 같습니다. 이것은 이중의 축복으로
베푸는 자와 받는 자를 동시에 축복해줍니다.
이것은 가장 위력 있는 것 중에서도 가장 위력이 있습니다.(.....)
따라서 자비심을 발휘하여 처벌을 완화시킬 때에
지상의 권세는 비로소 하느님의 권세에 가장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이여, 비록 당신이 요구하는
심판이 정당한 것이기는 하나, 이 점을 고려해보시오.
즉, 심판하여 처벌하는 것만을 고집한다면
누구도 구원받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도 자비를 위해서 기도드리며, 이 기도는
또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4막 1장 (p.118~119)
설리어리오 그래도 그가 의무를 이행하지 못한다 해도 당신이 그의 살
을 취하지는 않을 것이라 확신하오. 살을 무엇에 쓰겠소?
샤일록 고기 낚는 데 쓰지요. 그 밖에는 아무 데도 소용이 없다고 해
도 그건 내 복수심은 채워줄 거요. 그는 나를 창피하게 만들었
고, 50만 다가트의 이득을 취할 수 없게 했고, 내 손해에는 만
족의 웃음을 지었고, 내 이득을 조롱했고, 내 민족을 경멸했…
고, 내 상거래를 방해했고, 내 친구들의 우정을 식게 했고, 내
원수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소. 그런데 그렇게 한 이유가 무엇
이었소? 내가 유대인이기 때문이었소.(……)
다른 모든 일에서도 당신들과 같은데 그 점에서
도 같을 것은 뻔하지 않소. 만약 유대인이 기독교인에게 부당
한 일을 한다면 기독교인의 겸양은 무엇이겠소? 복수요! 만약
기독교인이 유대인에게 부당한 짓을 행한다면 그의 관용은 기
독교인의 본보기를 따라 무엇이겠소? 당연히, 복수요! 당신네
들이 가르쳐준 악행을 나는 실천하겠소. 감당하기 힘든 어려
움에 부닥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교훈 이상으로 실천하겠소.
-3막 1장 (p.75~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