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의 대표작 『아Q정전』을 중국의 대표 판화가 자오옌녠의 사실주의적 판화와 이욱연 교수의 맛깔스러운 번역으로 만난다. 자오옌녠은 판화라는 새로운 표현 형식을 통해 꾸준히 루쉰의 작품을 새롭게 해석하고 형상화해왔다. 그는 중국 판화계에서 루쉰 작품을 가장 깊이 있게 연구한 작가로 특히 목각에서 가장 탁월한 예술적 성취를 거둔 것으로 평가받는데, “궁극의 목각은 흑백을 정통으로 삼는다”는 루쉰의 명언에 따라 작품 대부분을 흑백 목각으로 제작하며 중국 흑백판화 분야에서 선두 역할을 해왔다.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이 바로 『아Q정전』인데, 자오옌녠은 근대 중국 민중의 슬픈 자화상이라 할 수 있는 아Q의 욕망과 좌절을 흑백판화에 섬뜩하리만치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아Q정전』은 중국 인민문학출판사가 자오옌녠의 판화를 넣어 출간한 루쉰 작품집을 번역 저본으로 삼았다. 앞으로 이 작품집에 포함된 『들풀』과 『광인일기』 『새로 쓴 옛이야기』, 그리고 자오옌녠이 직접 이 네 권에 수록된 판화에 대한 예술적 구상과 목각 기법을 설명한 『루쉰 작품 도감』을 추가로 펴낼 예정이다.
중국 근대문학의 이정표와 같은 소설 『아Q정전』
더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루쉰의 대표작이다. 청조 말기, 신해혁명 전후의 중국사회를 아Q라는 시골 날품팔이를 주인공으로 삼아 그려낸 이 소설은 지역 유지와 그 가족들의 권세,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혁명에 대한 불안과 혁명의 소용돌이에서 희생되는 아Q의 허무한 인생을 코믹하리만치 현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아Q는 무기력하고 비겁한 인물이다. 작가는 이러한 아Q에게서 볼 수 있는 공허한 영웅주의와 그것과 표리를 이루는 불쌍한 패배주의의 현실을 비판하며, 자기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자기기만으로 호도하며 살아가는 이른바 ‘정신승리법’을 낡은 지식인과 중국인에게서 발견한다. 그들은 약자에겐 잔인하고, 강자에게는 아첨하며, 스스로의 책임을 남에게 미루고, 지난날의 영광을 부풀려 환상에 젖는다. 루쉰은 이를 당시 중국인이 지닌 노예근성과 자기위안으로 보았다. 아편전쟁 이후 모든 것을 잃었으면서도 옛 영화를 떠올리며 비굴하게 연명해나가는 중국인의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Q정전』이 세계문학사에 한자리를 점하게 된 것은 이른바 ‘정신승리법’이라는 독특한 인간 심성과 그 밑바탕이 된 시대성을 온전히 담아냈기 때문이다. 아무리 모욕을 당해도 저항할 줄 모르고 오히려 머릿속에서 정신적 승리로 소화해버리는 주인공 아Q를 보고, 당시 신해혁명의 쓰디쓴 좌절을 맛본 중국인들은 자신을 모델로 한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했다고 한다.
루쉰이 작품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참된 혁명은 단순히 정치적, 경제적 차원만이 아니라 사상과 가치관, 습관과 풍속, 인간관계 등 문명론적 차원에서까지 이루어지는 궁극적인 변혁이었다. 아Q를 묘사하면서 일말의 낭만적 허위도 허락하지 않은 것은 그러한 냉철한 현실인식과 중국 변혁에 대한 열망이 집약된 결과라 하겠다.
추천사
중국에는 아Q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일부 있는데, 그들은 언제고 자신이 승리하고 타인은 패배했다고 생각한다. 마오쩌둥(미국 작가 아그네스 스메들리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인의 본질을 깊이 해부한 책. 아Q의 부족함과 잘못은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다. 린지위(전 중국국가도서관장, 철학자)
이 풍자적이고 사실적인 작품은 세계 어디서나 통한다. 프랑스대혁명 때도 아Q는 있었다. 나는 고뇌에 찬 아Q의 얼굴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로맹 롤랑
그린이 자오옌녠(趙延年)
중국의 대표적 판화가. 1924년 저장 성 후저우(湖州)에서 태어났다. 1938년 상하이미술전문학교에 입학해 조각을 배웠고, 광둥성립전시예술관(廣東省立戰時藝術館)(광둥성예술전문학교 전신) 미술과를 졸업했다. 편집자이자 작가로 저장성 미술학교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중국미술학원 교수, 중국판화가협회 고문, 저장성미술가협회 고문, 저장성판화가협회 명예회장 등을 맡고 있다. 1991년에 중국미술가협회와 중국판화가협회에서 시상하는 ‘중국신흥판화걸출공헌상(中國新興版畵傑出貢獻賞)’을 수상하기도 했다. 작품으로 <나무를 진 사람(負木子)>, <루쉰 선생(魯迅先生)> 등이 있고, 『자오옌녠 판화선집』을 출간했다.
옮긴이 이욱연
고려대 중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고, 현재 서강대 중국문화전공 교수이다. 논문으로 「노신의 소설 창작과 기억의 서사」 등이 있고, 저서로 『중국이 내게 말을 걸다—이욱연의 중국문화기행』 『포스트 사회주의 시대의 중국문화』가, 옮긴 책으로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루쉰 산문선집』 『인생은 고달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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