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환상적인 이야기로 가슴 따뜻한 감동을 선사했던 『빅 피쉬』의 작가 대니얼 월리스가 다시 한번 마법과도 같은 환상적 세계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마술과 서커스라는 독특한 소재로 흥미롭고 미스터리하고 기이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그의 최신작 『미스터 세바스찬과 검둥이 마술사』. 생생하고 투박한 문장, 현실을 압도하는 특유의 상상력, 일상적인 것을 뒤집어 보여줌으로써 진실에 다가가는 전복적 글쓰기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대니얼 월리스는 이 작품에서도 이 같은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소설은 주인공 검둥이 마술사 헨리 워커가 마지막으로 몸담았던 ‘제러마이어 모스그로브의 차이니즈 서커스단’의 기인들이 돌아가며 자신이 기억하는 ‘헨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진짜 가족은 아니지만, ‘기인’이라는 이유로 평범한 가족을 가질 수 없었던 이들에겐 가족 이상이었던 차이니즈 서커스단에서 이들은 헨리를 진정 사랑했고, 자신들이 그 누구보다 헨리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서로 어긋나기도 하고 아귀가 맞춰지기도 하면서 헨리의 인생을 재구성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우리는 정체성과 운명, 진정한 사랑과 상실, 그리고 가족에 관한 이야기와 만나게 된다.
검둥이 마술사 헨리와 미스터 세바스찬의 운명을 건 한판 승부!
경제공황의 먹구름이 전 사회를 뒤덮었던 1930년대, 자기 회사를 경영할 정도로 잘나가는 회계사였던 헨리의 아버지는 한순간에 몰락하고 어머니는 병으로 세상을 뜬다. 그때 헨리의 나이 열 살, 여동생 해나는 아홉 살이었다. 호화롭던 저택마저 잃고 아버지가 최고급 호텔 프리몬트에 잡역부로 취직하면서 헨리와 해나는 호텔에서 살게 된다. 수많은 방과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화려한 사람들로 가득한 호텔은 어린 헨리와 해나에게 놀이터와도 같았다. 둘이 빈방을 찾아다니며 놀던 어느 날, 헨리는 702호실에서 피부가 기형적으로 새하얀 남자와 마주친다. 자신을 마술사 미스터 세바스찬이라고 소개한 이 남자에게 헨리는 한눈에 매료되어 마술을 배우기 시작하고, 절대 마술의 비밀을 발설하지 않겠다는 ‘마술사의 맹세’를 한다. 그 맹세가 이후 자신에게 어떤 운명을 가져다줄지 전혀 상상하지도 못한 채. 아버지가 마술에 푹 빠져 매일 702호를 찾던 헨리에게 미스터 세바스찬이 호텔을 떠날 것이라고 전해준 그날, 헨리는 카드 트릭을 연습하다 카드를 모두 놓쳐버리고 미스터 세바스찬은 그를 호되게 야단친다.
헨리는 일어나 미스터 세바스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아무것도 없어요.”
헨리는 거짓말을 했고, 미스터 세바스찬은 그게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당시에는 마치 이것이 이후에 전개될 모든 일, 즉 숙명의 라이벌, 우주적 반목, 맹목적 증오의 서막을 알리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은 훨씬 오래전부터, 그들의 전생부터 시작된 것임을, 필연적 운명이라 그들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임을 헨리는 더 나이가 들어서야 깨닫게 될 터였다. 두 사람이 손쓸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100~101쪽)
다음 날, 미스터 세바스찬과 함께 동생 해나가 사라져버린다. 헨리는 미스터 세바스찬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동생을 유괴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어떠한 단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술주정뱅이가 된 아버지와 호텔에서 쫓겨나 길거리에서 카드 도박 스리카드 몬테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던 헨리는 우연히 알게 된 마술사 매니지먼트 회사 대표 톰 헤일리를 만나 ‘검둥이 마술사’로 마술계에 데뷔한다. ‘콩고 오지에서 온 바카리’ ‘힌두의 고행자 아키 데 라자 왕자’라는 타이틀로 공전의 히트를 치며 순회공연을 다니던 헨리는 매니저 톰 헤일리가 예기치 못한 사고로 죽자 다시 백인으로 돌아와 때마침 터진 2차 대전에 참전해 프랑스 전장으로 간다. 그곳에서 군인들 사이에 헨리의 마술에 관한 소문이 퍼지고, 이 소문에 주목한 에디 카스텐바움이 종전 후 미국으로 돌아온 헨리를 항구에서 픽업해 마술 공연 계약을 맺는다. 그리고 여자 조수를 뽑는 자리에서 헨리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 보이는 메리앤 라플뢰르에게 운명을 느끼고 그녀와 함께 공연 준비를 한다. 삶과 죽음을 오갈 수 있는 메리앤의 특성을 이용한 마술 공연은 큰 성공을 거둬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지만,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삶과 멀어지는 메리앤 때문에 헨리는 공연을 더 하지 않으려 하고, 절망한 카스텐바움은 메리앤을 불러내 떠나도록 설득하다 이성을 잃은 나머지 ‘휠 오브 데스’라는 마술 기계에 묶인 그녀에게 칼을 날린다. 해나에 이어 메리앤까지 잃은 헨리는 이 모든 게 ‘악마’ 미스터 세바스찬의 소행이라 생각하고 그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떠돌이 마술사가 되어 전국 방방곡곡, 전 세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마침내 그를 찾아낸다.
그곳에 그가, 미스터 세바스찬이 기다리고 있었다. 똑같은 남자. 똑같은 얼굴, 똑같은 미소, 똑같은 의자. 똑같은 의자.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헨리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랬다. 전부 똑같았다. 순간 헨리는 다시 꼬마가 되어 처음으로 악마와 마주하는 느낌이 들었다. (……) “해나를 생각하세요.” 헨리는 말했다. 그리고 평생 동안 갈고닦은 기술로 증오를 담아 칼을 날렸다. 그 칼은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방을 휙 가로질러 날아갔고, 세바스찬의 심장에 막히지 않았다면 맞은편 벽이라도 뚫었을 것이다. (……) “너는 좋은 제자였어.” 그는 마지막으로 헨리의 마음을 읽으며 말했다. “최고였지.” 그리고 그는 죽었다.(309~302쪽)
이후 차이니즈 서커스단에 들어가 한 번은 백인 마술사 ‘수수께끼 요술쟁이’로, 또 한 번은 흑인 마술사 ‘검둥이 대마왕’으로 마술 공연을 하던 헨리가 어느 날 사라진다. 그리고 자신을 사립탐정이라고 소개한 카슨 멀베이니라는 자가 헨리를 찾아와 서커스단의 기인들에게 깜짝 놀랄 사실을 전해준다.
긴 이야기의 끝, 밝혀진 진실의 여운
경제공황으로 사회가 불안정하고 흑인을 극도로 혐오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던 20세기 중반 미국 남부의 앨라배마 주에서 백인임에도 ‘검둥이’로 살아야만 했던 비운의 주인공 헨리의 이야기는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고 이야기에 이야기가 중첩되면서 하나의 ‘진실’을 향해 서서히 나아간다. 그리고 밝혀지는 진실에 독자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감동과 함께 연민을 느끼게 된다. 사랑하는 이들을 한 명 한 명 잃고, 자신이 백인인지 흑인인지, 헨리인지 ‘바카리’인지 ‘검둥이 대마왕’인지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그 모든 것의 원흉이 미스터 세바스찬이라 여기며 복수의 일념만으로 인생을 허비할 수밖에 없었던 헨리. 헨리가 진정 원했던 것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평범한 일상세계의 일원이 되는 것뿐이었다. 대니얼 월리스는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운명에 충실했던 검둥이 마술사 헨리의 안타까운 삶을 통해 지금 여기, 우리 주변 삶의 소중함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헨리는 환영을 보았다. 헨리는 이곳에 살았다. 이 마을에 살았다. 그의 눈앞에 자신의 삶이 펼쳐졌다. 무슨 일이든 상관없이 일자리를 얻고, 자기만의 공간을 구할 것이다. 앞뜰에 정원도 가꿀 것이다. 밤이면 잠자리에 들기 전에 오래 산책할 것이다. 지금 밖에서 펼쳐지는 삶의 퍼레이드에 동참할 것이다. 분명 처음에는 이방인이겠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누구나 처음엔 이방인이다. 그러나 다들 점점 변할 것이다. 그는 산책을 계속할 테고, 길에서 누군가를 만나면 멈춰 서서 이야기를 나눌 테고, 그러면 서로 친해져 환영해주고 따뜻하게 대해줄 것이다.(350쪽)
추천사
번쩍번쩍 빛나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은 소설. 코너마다 놀라움과 스릴이 기다린다. 새러 그루언(『코끼리에게 물을』 작가)
대니얼 월리스는 이상한 마법을 부린다. 마술이 모두 끝난 후 마술 도구를 구경할 수 있도록 무대에 초대받았을 때조차 그의 이야기는 여전히 예측 불가능하고, 경이로우며, 아름답다. 오드리 니페네거(『시간 여행자의 아내』 작가)
독창적이고 다층적이고 재치 넘치고 감동적이고 능수능란하며, 시작부터 끝까지 마음을 사로잡는 소설. 여기, 당신의 가슴에 마법의 각인을 새길 책이 있다. 팀 오브라이언(『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 작가)
미스터리로 가득한 교활하고 매력적인 이야기. 펜 질렛(마술사)
정신없이 빠져든다. 이 책에는 확실히 마법이 있다. 워싱턴 포스트
환상적이다. 다채로운 이야기는 굉장히 즐겁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유머는 실로 놀라우며, 독창적 결말은 넋을 빼놓는다. 진정 올해의 가장 매혹적인 책이다. 프레스 레지스터
반짝반짝 빛나는 소설. 월리스는 유려하면서도 역설적인 세계를 창조했다. 이 세계는 안타까운 판타지와 끔찍한 악몽과 예사롭지 않은 뒤틀림과 평범하지만은 않은 일상의 우여곡절로 가득 차 있다. 당신의 마음은 산산조각 난 뒤 마치 마법처럼 회복되어, 삶의 관계와 가능성을 제시하는 월리스의 최면을 거는 듯한 이야기로 풍요로워질 것이다. 북페이지
옮긴이 엄일녀
197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출판기획과 잡지 편집을 했으며,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함정』 『사라진 수녀』 등이 있다.
* 담당편집 : 류현영(031-955-8858, sanja95@munha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