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대부터 한 집안이 대대로 운영하던 시골 잡화점에서 커피 원두와 전통도기를 파는 아담하고 세련된 카페로 바뀐 작은 가게 ‘고쿠라야’. 소박하고 조용한 마을 고운초에 자리한 이 가게에서는 매일같이 향기로운 커피 냄새와 함께 이곳의 주인인 일흔여섯 살 스기우라 소우 할머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젊은 시절 이혼 후 세 살배기 어린 아들을 잃고 줄곧 홀몸으로 살아오면서도 주위 사람들을 챙기고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씨를 잃지 않은 그녀는, 가게를 찾아오는 마을 사람들에게서 심상치 않은 수수께끼들을 하나둘 발견하게 된다.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에 불안해하는 여고생과 주부들, 컴퓨터 과외를 해주는 착실한 대학생, 갑자기 고향에 나타나 소란을 일으킨 전직 야구선수, 기억에 어렴풋하게 남아 있는 옛 친구와 그의 가족 등이 얽힌 크고 작은 사건들. 이에 직접 지팡이를 짚고 나선 소우 할머니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증거를 확보하고 기억을 더듬어 엉킨 실타래를 풀며 사건을 해결하려 하고, 그와 함께 일견 평화로워 보이는 사람들의 숨은 사연들이 밝혀진다.
아주 평범하고 조금 지혜로운 할머니가 마을의 소문 속에서 찾아내는 인생의 진실
소소한 매력이 넘치는 일상 미스터리의 새로운 실력자 등장!
제43회 올요미모노 추리소설 신인상 수상작이자 작가 요시나가 나오의 데뷔작 『고운초 이야기』는 ‘할머니 탐정’ 소우와 주위 사람들의 에피소드를 연작 형식으로 묶어낸 소설집이다. 단정히 빗어올린 쪽머리에 커다란 검은색 우산을 지팡이 삼아 짚고 두툼한 솜옷을 입은 채 아침마다 마을의 사당에 들러 관음상 앞에서 죽은 아들의 명복을 비는 소우 할머니의 모습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추리소설 속 탐정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전쟁과 가난을 뚫고 오랜 세월 살아오며 꾸준히 쌓은 인생 경험과 몇 번의 쓰라린 실패에서 우러나온 삶의 지혜를 지닌 그녀는, 주위 사람들이 겪는 문제와 말썽거리를 예민하게 알아채고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해나간다. 뇌경색으로 고생하고 있는 절친한 친구 유키노 할머니, 그녀를 도와 고쿠라야에서 일하는 운동선수 출신의 씩씩한 아가씨 구미 등, 주변 등장인물 역시 여성 특유의 부드럽고도 강인한 성격을 지닌 친근한 사람들이다. 심사위원을 맡았던 작가 미야베 미유키가 ‘익숙함과 자연스러움’을 이 작품의 매력으로 꼽았을 만큼, 소설에는 마치 오래된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시종 친근하고 그리운 분위기가 감돈다.
이상하게도 책을 다 덮고 나면 실제 만난 적이라도 있는 양 ‘소우 할머니’가 자꾸만 주변을 맴돈다. 무슨 고민이 있어 골똘히 생각하고 있노라면 어느새 내 곁에서 그녀도 조용히 뒷머리의 대모갑 빗을 빼내어 흰머리를 빗으며 먼 하늘을 보고 있을 것만 같다. 실제로 그렇다면 그 존재만으로도 얼마나 큰 위안이 될는지……
_옮긴이의 말에서
신인작가의 데뷔작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풍부한 여유가 느껴지는 담담한 문체와 현대사회를 바라보는 관조적인 시선을 발휘하며 소우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어낸 요시나가 나오는, 이 『고운초 이야기』로 ‘일상 미스터리’의 새로운 실력자로 자리매김했다.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적나라함, 여운이 느껴질 만한 깔끔한 뒷마무리가 장점인 이 작품은 미스터리 소설을 통해 인생을 이야기하는 색다른 수단으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각 작품의 내용
「고운초의 소우 할머니」 마을 한편에 자리한 고급 신축 맨션. 동네 주부들이 동경해 마지않는 그곳 1층에서 밤마다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는 얘기가 사람들 사이에 나돈다. 미심쩍게 생각한 소우 할머니는 직접 맨션을 찾아가 102호 창문에 남아 있는 수상한 손자국을 확인한다. 의사 남편과 젊은 아내, 품위 있는 할머니, 모범생 아들이 사는 이 완벽한 집안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구와바라, 구와바라」 십여 년 전 가게를 리모델링하기 위해 오래된 저택의 목재를 인수하기로 한 소우 할머니는, 우연찮게도 그곳이 어린 시절 한 동네에서 자란 친구 구와바라 히데코의 집이란 것을 알게 된다. 옛날과 다름없이 심술궂고 고집 센 성격 때문에 아들 가족들과의 사이도 원만하지 못한 옛 친구의 모습과 새록새록 떠오르는 어린 날의 기억들. 그리고 지금껏 당사자들도 알지 못했던 구와바라 집안의 속사정이 밝혀진다
「0과 1 사이」 일주일에 두 번 소우 할머니에게 컴퓨터 개인교습을 해주는 공대생 시라이시. 평소 착실하고 친절한 그가 얼마 전부터 부쩍 수척한 모습을 보인다. 어느 날 가게 앞에 찾아온 그의 친구에게서 시라이시가 불량해 보이는 여고생과 함께 다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소우는 원조교제가 아닐까 의심하고, 시라이시의 언동을 유심히 관찰하는데……
「나쁜 남자」 언젠가부터 고쿠라야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중년 남자 오다케. 고등학교 야구선수로 활동하던 열아홉 살 때 주위 사람들에게서 돈을 꾸고는 그길로 자취를 감추었던 그는 마을로 돌아온 지 며칠 후 갑작스레 경찰에 체포되어버린다. 마침 노인을 노린 범죄가 연달아 일어났던 터라 사람들은 그를 의심하지만, 사건의 실상은 전혀 다른 쪽으로 전개된다.
「싸리를 흔드는 비」 정치가로 성공한 옛 친구 오타니 세이지의 갑작스런 연락에 그의 집으로 찾아간 소우. 그는 소우의 고향 친구이자 과거에 자신과 내연관계였던 스즈코가 죽었다는 소식과 함께, 대신 그 장례식에 참석해주고 자신의 핏줄을 이어받은 그녀의 아들을 도쿄로 데려와줄 것을 소우에게 부탁한다. 그러나 오타니의 부탁대로 교토로 간 소우는 예상치 못한 범죄 사건에 휘말리고 만다.
올요미모노 추리소설 신인상 심사평
주인공 ‘소우’를 첫 장면부터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존재로 등장시키는 것에 기분 좋은 놀라움을 느꼈다. _미야베 미유키
할머니 주인공이 갖는 심리의 그림자가 사건의 현대적 풍경과 대비되는 구조를 높이 사고 싶다. 데생력을 갖춘 문장을 쓸 줄 아는 사람이다 _후지와라 이오리
불만 없을 만큼 재미있다! 앞으로도 죽 탐정 소우의 활약상을 써주었으면 좋겠다. 그만큼 매력 있는 작품이다. _다카하시 가쓰히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