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증을 앓는 손자를 위해 쓴 편지를 통해 세상과 타인을 향해 마음을 닫아건 우리 안의 ‘샘’을 발견하게 해준 『샘에게 보내는 편지』, 시시각각 덮쳐오는 일상의 불안과 위기 속에서 자기만의 목소리를 지키고 두려움 없이 인생을 살아가는 법에 대해 들려준 『마음에게 말걸기』, 이 두 권의 책으로 수많은 한국 독자의 찬사와 공감을 자아냈던 대니얼 고틀립.
그가 이번에는 자신이 20년 넘게 진행해온 필라델피아 공영방송WHYY-FM의 장수 상담 프로그램 <가족의 목소리Voices in the family>에서 접한 청취자들의 다양한 사연과 자신의 경험을 통해 가족 안에서 상처 받은 우리의 마음을 다시 한번 따뜻하게 보듬어주기 위해 돌아왔다.
대니얼 고틀립은 가족상담사, 심리치료사이지만, ????가족의 목소리????에서는 그 모든 권위를 내려놓고, 자신의 명함에 새겨진 소개처럼 ‘사람Human’으로 다가온다. 그는 이 책에서 전문성을 과시하는 심리학 전문용어나 가족학, 인간행동 및 습성에 관한 통계도 전혀 제시하지 않고, 이혼, 학습장애, 콤플렉스, 사지마비 등 자신의 약점을 주저 없이 드러내며 심리치료사 대 내담자가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서 독자들과 풍부한 삶의 경험을 나눈다. 전문가라는 이름만 앞세워 무엇이 문제인지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희로애락을 모두 경험해본 인자한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고민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마음 깊이 공감하며 그들이 나름대로 옳은 길을 찾을 수 있게끔 돕는다.
심리치료사로서 나는 영혼과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순간에 일종의 안도감을 느낀다. 나는 내담자와 충만함에 대해서는 물론이거니와 그들의 슬픔과 상실감, 사랑과 두려움, 죽음에 대한 거부감 등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이야기한다. 내게 이런 언어는 생활의 언어일 뿐만 아니라 치료의 언어이기도 했다. 그것은 생각과 느낌 사이, 나와 타인 사이, 내 상담실을 찾는 이들과 <가족의 목소리>에 참여하는 청취자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였다. 나는 다른 사람들 역시 우리의 작은 지혜로 불가사의한 인간의 영혼에 가닿는 데 이런 언어를 사용하기를 바란다. 이 꿈을 이루는 데 말이 충분하지는 않겠지만, 종종 실마리를 제공해줄 수는 있을 것이다. -프롤로그 중에서
“당신이라는 사람이 있어서,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요.”
누구도 혼자가 아니다. 우리의 삶은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 아이들, 그리고 자기 자신과 만나면서 빚어지는 다채로운 경험 속에서 형성된다. 고틀립은 『가족의 목소리』에서 탄생과 성장, 죽음이라는 일련의 시간적 흐름에 몸을 맡겨 우리가 살면서 만나게 되는 그 어떤 사람보다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가족’에 대해 이야기한다. 태어나 죽을 때까지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큰 영향을 받게 될 수밖에 없는 부모, 서로 다른 가정에서 자라났기에 필연적으로 부딪히는 배우자, 자신과 배우자의 인생이란 초상화를 물려받은 아이,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감정의 언어’를 통해 들려준다.
이 책 속에는 가족 안에서 상처 받은 이가 수없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들은 ‘문제가 있는’ 가족의 일원이 아닌,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이들이다. 고틀립이 소개하는 우리 이웃의 평범한 모습 뒤에 가려진 문제들은 구체적이고 그래서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자기가 앞가림을 제대로 하지 못해 부모가 실의에 빠져 술에 손을 대고 폭력을 휘두른다고 생각하는 아이가 있다. 자식들이 자신을 보살펴주길 원하면서도 그것을 말로 표현하기보다 쉴 새 없이 안부전화를 하여 자식들에게 애정공세를 하는 부모가 있다. 자신이 어린 시절 갖지 못했던 부모의 사랑을 되찾으려 끊임없이 과거에 미련을 갖는 사람이 있다. 첫아이가 태어난 이후 아내가 자신에게 소홀해졌다고 생각하는 남편이 있다. 아이를 인정하지 않고 끊임없이 그를 비난하는 부모가 있다. 고틀립은 이렇게 상처 받은 모든 사람들을 소통과 공감을 통해 치유의 과정으로 이끈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 자신의 그림자를 지우지 못한다. 그림자를 떨쳐버렸으면 하는 소망도 모두 부질없다. 그보다는 그 그림자를 조심스럽게 양지로 이끌어 잠시나마 그것을 이해하고 끌어안는 편이 더 현명하다. 그리고 그 그림자를 다시 음지로 되돌려놓을 때 우리는 그것이 늘 뒤를 따라다니리라는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때 비로소 그림자에 대한 두려움과 부끄러움도 내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내면에 억압된 자신의 어두운 면을 완전히 떨칠 수는 없기 때문에, 그 그림자를 내 일평생의 손님으로 끌어안으면서 그것과 더불어 사는 법, 그리고 그것에 적절히 대처하는 법을 익혀나가는 것이 어쩌면 더 현명한 일일지도 모른다. - 323쪽
이 세상 어디에도 완벽한 가족은 없다!
우리 모두 자신만의 이상적인 가족상을 머릿속에 그린다. 그리고 자신의 가족이 그런 모습에 부응하지 못하면 실망하거나 분노한다. 신기루 같은 이상만을 좇다가 도리어 자신이 가진 것을 놓치고 살아간다. 고틀립은 그렇게 헛된 기대를 품고 좌절한 모든 사람들에게, 위험한 시도가 될 수도 있지만, 자신이 가족에게 바라는 모습을 솔직하게 표현해보라고 한다. 그는, 우리가 당뇨합병증으로 팔다리를 절단하고 고되게 살아가는 아버지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기를, 결혼을 하면서 자신이 품은 기대감을 서로에게 고백할 수 있기를, 건강한 성생활을 위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흉금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기를, 아이가 자신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아이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기를, 아이에게 섹스가 무엇인지 숨김없이 이야기할 수 있기를, 자기 자신의 분노와 슬픔, 죄의식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란다.
고틀립은 가족을 자신이 바라는 대로, 혹은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키려 애쓰는 우리에게, 그들을 지켜봐주고 곁에 있어주는 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진정한 자세라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존재를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뿐이라고 한다. 알코올중독자 부모, 폭력, 부모의 불화, 이혼 등 불안한 가정환경 속에서 상처 받은 모든 이에게 고틀립은 “대부분의 사람이 상처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많은 이들이 자신의 상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며, “자신의 상처를 부정하지 않는 나 같은 사람이 치유자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렇게 자기 자신을 치유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고 따뜻하게 위로해준다. 『가족의 목소리』는 그 어떤 위로의 말보다 진실하고 담백하게 가족 안에서 상처 받은 우리를 위로해주는, 우리가 그동안 무심코 흘려들은 우리 가족의 ‘진정한’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게 해주는, 고틀립의 따뜻한 손길이다.
나의 치유는 이런 곤경에서 사람을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저 치유의 환경을 만들 수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을 치유한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다. “당신을 변화시키고 싶어요”란 말은 무례하다. 그리고 나는 사람을 그렇게 변화시키겠다는 의도가 불안한 환경을 만든다고 본다. 만약 누가 내 상담실로 찾아와 “나는 변하고 싶어요”라고 말한다면 그건 “내겐 결함이 있어요”라는 말과 같다. 그리고 내가 그 사람의 얘기에 동의하면서 “좋아요, 당신이 변화할 수 있도록 돕겠어요”라고 할 때 내가 실제로 하고 싶은 얘기는 “그래요, 어딘가 상처를 받았군요”라는 것이다. 또한 정작 내가 하려는 말은 이런 것이다. “아니오. 견디기 힘든 구석이 있을 뿐이죠. 그리고 난 그걸 당신이 견딜 수 있게 도울 거예요. 하지만 그걸 쫓아내도록 돕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 식으로 사람들이 버리고 싶어하는 면은 사라지고 우리는 성숙해진다. -34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