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킹 양반, 사후 세계가 없다고요?
흥, 천만의 말씀!
최근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사후 세계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만들어낸 동화일 뿐”이라고 주장해 큰 논란을 불러왔다. 그런데 여기 그 사후 세계를 그린 이야기들을 책으로 엮어낸 과학자가 있다. 세계적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와 『네이처』에 논문을 게재한 올해 서른아홉의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David Eagleman)이다. 미국 베일러 의과대학의 신경과학과 부교수인 이글먼은 시간지각, 공감각 연구로 이력을 쌓았다. 현재 신경과학을 법학에 접목해 인간의 지각 및 행동, 결단을 연구하는 신경법학(neurolaw) 프로젝트를 지휘하며 학제 간 경계 허물기에 앞장서는 촉망 받는 과학자이다.
이글먼은 전 세계 독자들에게 『썸Sum』이라는 이 독특한 우화소설로 먼저 알려졌다. 『썸』은 상상의 내세라는 렌즈를 통해 ‘지금, 여기’의 우리 삶과 죽음의 의미를 들여다보는 마흔 가지 짤막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내세’라고 해서 종교적 간증이나 임사체험자들의 수기를 떠올리면 곤란하다. 백 퍼센트 저자의 머릿속에서 나온 이 이야기들은 그가 대학원 재학 시절부터 7년에 걸쳐 틈틈이 쓰고 고친 것이다. 2009년 출간 이래 지금까지 영국, 프랑스, 러시아, 터키, 이스라엘, 일본, 대만 등 23개국에서 출간되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글먼은 여덟 살 때 집 지붕 위에서 떨어지며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지는 경험을 한 뒤로, 삶과 죽음 곧 ‘시간’이라는 인류의 오랜 주제에 대해 깊이 사유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유를 바탕으로 이 책에서는 무한한 내세를 통해 역설적으로 유한한 우리 삶을 꿰뚫는 날카롭지만 유머러스한 통찰을 펼쳐 보인다.
“텔레비전만 껐어도 그 꼴이 되진 않았겠지!”
내가 조금만 덜 게을렀으면 될 수도 있었던
또다른 나를 내세에서 만난다면?
각각의 이야기는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일종의 ‘사고실험’이다. 하나 혹은 두 개의 전제를 놓고 자유연상으로 이야기를 펼친 뒤, 그 뒤에 따라올 결과들을 제시하는 식이다.
이를테면 내세에서 당신은 신이 미생물 크기이고 인간의 존재조차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또 어떤 내세에서는 당신의 창조주가 자신이 알아낼 수 없는 우주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인간을 설계한 우둔한 종족임을 깨닫는다. 당신이 다른 사람들의 꿈에 단역배우로 등장하는 내세도 있다. 신이 불화로 갈등하는 부부인 내세도 있고, 오직 당신이 기억하는 사람들만 살아가는 내세도 있다. 고래의 수많은 신들이 모여 사는 내세도 있다. 각기 다른 나이의 당신들이 공존하는 내세도 있고 당신이 될 수도 있었던 보다 나은 당신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 내세도 있다. 당신의 신용카드 기록과 인터넷 사용 기록을 통해 재현된 모습이 내세의 당신 모습이기도 하다.
얼핏 황당해 보이는 이런 이야기들 속에는 현실의 불확실하고 부조리한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내세에서도 인간은 무지하고 이기적이고 갈팡질팡한다. 질투하고 반목하고 급기야 전쟁까지 벌어진다. 이글먼은 우리의 무지와 아이러니를 꼬집는 촌철살인의 문장을 통해, 소중히 여겨야 하지만 놓치고 살기 쉬운 삶의 아름다움과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만한 질문을 던진다.
예컨대 당신이 기억하는 사람들만 살아가는 내세(「아는 사람」, 22쪽)에서 당신은 익숙하지만 왠지 모를 쓸쓸함을 느낀다. 늘 나를 둘러싼 삶의 배경으로 존재해 평소에는 생각도 못하던 사람들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내세에는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낯선 사람들의 아름다운 풍경이 없다. 어느 가족이 오리에게 빵가루를 던져주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단지 그들이 웃고 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슬며시 웃게 되는 일도 없다. (……) 만날 수도 있었던 그 모든 사람이 없는 내세의 생활을 불평”해보지만, 아무도 당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거나 공감해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곳의 삶은 결국 지상에서 당신이 살았던 삶과 한 치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때가 언제든 ‘죽음’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위로도 담겨 있다. “형태가 바뀌어도 원자들은 여전히 당신의 이름으로 존재한다. 육체가 사라지면 당신의 형태가 달라지는 것뿐이다. 이제 당신의 몸짓은 추켜올리는 눈썹, 숨 가쁜 키스 대신 곤충의 날갯짓, 갈대의 흔들림, 흰돌고래의 들숨이 된다. 당신의 기쁨은 부서지는 파도에 따라 춤을 추는 해초, 소나기구름에 흔들리는 깔때기구름, 알을 낳는 물고기의 파닥거림, 물살에 떠내려가는 반짝이는 조약돌이 된다.”(「자유」, 203쪽)
재치 있고 심오하며 우리 마음을 흔드는 이 이야기들의 바탕에는 과학적 상상력과 철학적 사유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크로스오버, 그리고 인간이라는 신비로운 존재에 대한 경이로움이 깔려 있다. 각각의 이야기는 각각의 생각할 거리들을 담고 있지만, 저자 이글먼이 이 책을 통틀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단순하고 강력하다. ‘당신의 인생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수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라’는 것, ‘삶은 유한하기에, 수많은 가능성이 있기에 아름답다는 것’이다.
★ 제목 ‘썸(SUM)’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명제의 라틴어 ‘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의 ‘sum’(I am)에서 떠올린 것이다. 둘째, 최상 또는 정상을 뜻하는 라틴어 ‘숨마 쿰 라우데(summa cum laude)’ 또는 영단어 ‘summit’에서 가져온 것이다. 마지막은 이 책의 핵심 메시지와 관련이 있다. 전체는 각 부분의 합(sum) 이상의 무엇이라는 것이다. 책을 읽어보면 각 이야기들이 상호배타적(서로의 핵심 메시지와 가치가 충돌)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전부 합한 것보다 더 큰 무언가가 드러날 것이다.
_데이비드 이글먼 인터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