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이야기』 시리즈는 『로마인 이야기』 이래 저자의 최고 역작이라 불러 손색이 없을 작품이다. 15권에 이르는 『로마인 이야기』 이후, 저자는 ‘팍스로마나’ 이후의 세계와 사람들을 탐구해 왔으며 그것은 베네치아와 피렌체와 같은 지중해 도시와 그 도시에서 글로벌한 꿈을 꾸었던 마키아벨리와 체사레 보르자 같은 인물들, 그리고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 중세 시대의 시작과 끝을 관통해 오면서 우리가 미처 몰랐던 그들과 그들의 시대를 알려주어 왔다.
대한민국의 일반 독자들에게 ‘중세’를 물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기사도, 마녀, 수도원과 고딕 성당, 종교의 억압, 봉건제, 전설과 민담, 그리고 십자군 전쟁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까지의 역사 교육을 통해 얻은 관념과 이미지일 뿐, 실제로 기사와 마녀, 수도사, 로마 법왕, 봉건 군주와 제후, 전설 속에 등장하는 영웅, 그리고 십자군 전쟁에 참여 했던 수 많은 인물들이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고 그 각기 개성이 다른 인물들이 중세라는 역사를 어떻게 만들어 왔고 구체적인 사건들 속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거의 알지 못한다. 저자는 바로 우리가 너무도 몰랐던 그 시대 속 인물들을 전면에 내세워 그들의 이상과 의지의 위대함과 성공과 좌절의 명암을 다각도로 그려내고 있다.
저자의 『십자군 이야기』에는 중세 시대에 대한 기존의 역사서에서 보이는 그런 시각과 관점에 의한 왜곡이 없다. 서구 중심의 시각이나 이슬람 중심의 시각, 혹은 보수적 시각이나 진보적 시각이라 불리는 것들에서 벗어나 그 시각 때문에 왜곡시켜 보지 않는 강점이 있는 것이다. 또한 ‘십자군’이 가능했던 중세 시대의 물적 토대와 구조에 대한 분석은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지 않는다. 봉건제와 장원, 농노, 왕과 봉건 제후의 관계, 기사도, 비잔틴 제국의 그리스 정교회와 로마 법왕을 중심으로 한 카톨릭 교회의 갈등(비잔틴 제국의 성상 파괴 운동과 카톨릭 개혁 운동) 등 그런 것에 힘을 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가 그리고 있는 중세의 인간들은 어찌 보면 중세의 인간스럽지 않다. 어폐가 있는 말이지만 중세적이지 않다. 현대적이다. 그들의 신념과 이상, 욕망들이 그렇기에 생생하게 다가온다.
저자는 인간의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 이들 각각의 명암이 다른 매력을 발견할 줄 안다. 각각의 시기 속에 마치 맹아처럼 숨겨져 있는 다른 젊음의 빛을 발견하여 그 서로 다른 젊음의 매력을 싱싱하게 그려낸다. 물론 이 젊음이 비열함이나 야망일수도 있고, 용맹이나 이상의 힘을 믿는 무모함일 수도 있고 현명함과 상황과 인물에 대한 통찰력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저자가 그려내는 인물들은 마치 중세의 그림 속에서 뛰어나온 듯, 석관의 부조에서 먼지를 털며 뛰어나온 듯 각각의 인물의 개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중세의 고딕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의 장엄하지만 어두운 빛이 아니라 드넓은 평원에 내리쬐는 태양광을 광원으로 삼아 찬란하게 빛나며 독자들을 매혹한다. 더불어 신의 의지(“신이 그것을 원한다”)를 슬로건 삼아 시작된 전쟁이었지만 인간의 욕망과 의지가 만들어낸 장대한 드라마는 인간성에 대한 보편적 성찰을 이끌어내며 감동을 준다.
저자의 『로마인 이야기』가 로마 시대와 로마인에 대한 단순히 재미있는 야기가 아니라 인물들을 중심에 놓은 새로운 역사서로 읽히면서 큰 공감과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것과 마찬가지로 『십자군 이야기』시리즈 역시 중세와 십자군 전쟁에 대한 뛰어난 역사서임에 틀림없다. 아니 그 이상이다. 저자만큼 십자군 이야기를 이렇게 매력적으로 생생하게 쓰지 못할 것이다. 대한민국 독자들에게는 여전히 생소한 중세와 십자군 전쟁의 진면목을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역사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