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미는 한 마리 매처럼 위풍당당하다
지부 서기라는 지위를 이용해 동네 아낙네들과 시도 때도 없이 정사를 즐기는 아버지 왕롄팡. 내리 일곱 딸을 낳은 뒤 그토록 기다리던 아들을 얻고 살림에서 손을 뗀 어머니 스구이팡. 위미는 이런 부모를 대신해 동생들을 거두고 집안일을 건사하며 장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 동시에 아버지와 잠자리를 같이한 왕씨촌 아낙네들을 매섭게 단죄한다. 왕씨촌 사람들은 누구도 감히 위미를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그녀가 지부 서기의 딸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매사에 철저하고 본이 되는 그녀의 기품 있는 행동거지 때문이다. 이런 위미가 자신의 지위에 걸맞은 비행기 조종사 펑궈량과 약혼을 하고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워가는 사이, 사건이 터지고 만다. 아버지 왕롄팡이 잠을 ‘잘못 잔’ 것이다. 현역 혁명군인의 아내와 잠자리를 하다 들킨 왕롄팡은 즉시 자리에서 쫓겨나 권력을 잃고, 며칠 뒤 밤에 순회 상영 영화를 보러 나갔던 위슈와 위예가 동네 남자들에게 ‘보복성’ 집단강간을 당한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제보’로 이 사실을 알게 된 펑궈량은 위미에게 파혼을 통고한다. 집안의 몰락을 막아줄 마지막 희망이었던 펑궈량에게도 배신당한 위미는 이를 악물고 왕씨촌에 대한 복수를 다짐한다.
“남자 구해와.”
왕롄팡은 말이 없었다. 그는 위미에게 생긴 일을 알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한참 동안 일고여덟 개비의 담배를 연달아 피웠다. 한 입 빨아들일 때마다 붉은 담뱃불이 세차게 한 발씩 뒤로 물러났고 사방으로 담뱃재가 길게 날아올랐다. 위미는 얼굴을 들고 말했다.
“어떤 작자든 상관없어. 힘만 있으면 돼. 아니면 절대 시집가지 않을 테니!”(본문 118쪽)
위미는 현성에 거주하는 혁명위원회 부주임 궈자싱의 재취 자리로 들어감으로써 아버지를 대체할 권력을 다시금 손에 쥔다.
위슈는 요사스럽게 반짝이며 넘실댄다
예쁘고 깜찍한 외모에 타고난 애교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동네 소녀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던 셋째딸 위슈. 강간 사건이 있은 후 유일하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큰언니 위미마저 시집가버리고 나자 위슈는 동네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게 된다. 온몸을 까발리는 듯한 집단의 시선과 보이지 않는 야유를 더이상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무작정 언니 위미를 찾아 현성으로 온 위슈는 어떻게든 위미의 집에 빌붙기 위해 형부 궈자싱과 그의 딸 궈차오차오의 손발이 되어 비위를 맞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시장(市場) 공판사를 어슬렁거리다 친해진 탕 경리에게 주판을 배워 공판사 경리가 될 꿈을 키운다. 그러던 어느 날 궈차오차오가 아버지와 싸운 뒤 집을 나가버리고 궈자싱의 아들 궈주어가 뇌진탕에 걸려 공장에서 돌아온다. 매일 위미와 궈자싱이 출근하고 난 뒤 둘만의 시간을 갖던 위슈와 궈주어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이를 눈치 챈 위미가 슬며시 위슈에게 있었던 일을 궈주어에게 흘린다. 이에 ‘강렬한 질투심과 알 수 없는 불쾌감’에 시달리던 궈주어는 위슈를 범하고는 말도 없이 집을 떠난다. 그리고 위슈는 자기 몸에서 벌어지기 시작한 변화를 감지한다. 임신을 한 것이다. 절대 언니 위미에게 발각되어선 안 되었기에 배를 꽁꽁 동여매고 죽을 생각까지 하지만, 사는 것보다 죽는 게 어렵다는 사실만 확인했을 뿐이다.
위슈는 자신에게 명령했다. 뛰어내려! 뛰어내려! 뛰어내리면 모든 게 끝나. 그러나 뛰어내릴 수 없었다. 죽음의 공포가 엄습해왔다. 진작부터 위슈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누구나 뒤에서 자기를 밀어주다면 얼마나 좋을까. 위슈는 물속에 한참을 서 있었다. 모든 용기를 다 쏟았지만, 결국 다시 기슭으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절망이었다. 사는 것보다 절망스러운 것이 죽음이다. 그러나 죽음보다 절망스러운 것은 역시 삶이다.(본문 246~247쪽)
임신 사실은 숨겼지만 태어나는 아기를 숨길 방법이 없었던 위슈는 악을 쓰며 아이 아버지를 묻는 위미의 손에 이끌려 병원으로 가 아이를 낳는다. 자신을 유린한 왕씨촌을 떠나 새로운 삶을 꿈꾸었던 위슈의 도전은 이렇게 실패로 끝나고 만다.
위양은 평범하지만 들쥐처럼 예민한 감각을 지녔다
위미와 위슈가 왕씨촌을 떠난 지 십여 년, 아주 평범한 아이였던 막내딸 위양이 오직 자신의 공부 실력만으로 왕씨촌을 떠나 도시의 사범학교에 들어간다. 학교에서도 위양은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고 눈에 띄지도 않는 평범한 학생이다. 그러나 이런 위양의 평범함이 학생들의 일거수일투족까지 감시하기 위한 ‘정찰꾼’ 노릇을 할 학생을 찾던 웨이샹동 선생의 눈에 들면서 위양의 학교생활은 백팔십도 바뀐다. 이제 위양은 평범함 속에 자신을 숨기고 예민한 감각을 동원해 모든 학생을 감시하기 시작한다. 그런 위양의 눈에 포착되어 웨이샹동에게 ‘보고’된 두 인물, 사범학교의 촉망받는 인재였던 추톈과 팡펑화는 폭로된 사생활로 인해 심문을 받은 뒤 철저하게 무너지고 만다.
그러나 위양은 알지 못했다. 자신의 보고가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위양은 그저 자신의 평범함에 숨겨진 날카로운 감각으로 자기 임무를 완수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위양은 아무도 속이지 않았다. 그저 주어진 삶을 한 발 한 발 힘겹게 살아나갔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위양은 자신도 모르게 남을 밟고 배반하는 승자의 삶을 학습함으로써, 위미의 숙원인 복수를 완성했던 것이다.(‘옮긴이의 말’ 401쪽)
도시로 나와 보란 듯 성공한 모습으로 왕씨촌에 복수하려 했던 위미의 숙원은 위슈의 낙오로 잠시 좌절을 겪지만, 뜻밖의 인물 위양을 통해 완성된다. 그러나 이 완성은 기형적이다. 세 자매 모두 자신들이 꿈꾸었던 ‘어딘가 먼 곳’에 도달하는 데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삶이란 생기롭고 위대하지만 가슴 아픈 것!
비페이위는 위미, 위슈, 위양 세 자매의 힘겨운 삶의 릴레이경주를 통해 고통스러운 운명과 비극적 현실로부터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는 인간의 생존 양태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러나 작가는 이를 비참하거나 심각하게, 혹은 거칠게 묘사하지 않는다. 비페이위 특유의 여유와 해학성, 탄탄한 이야기 구성력으로 가볍지 않은 주제를 자연스럽게 서사 속에 녹여낸다. 비페이위가 술술 풀어놓는 이야기를 따라가 끝에 도달했을 때 독자들은 불현듯 ‘아하, 그런 거였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지난 1970년대 중국 사회를 관통했던 그녀들의 경주가 비단 그녀들만의 것이 아닌 지금 현재 한국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경주이기도 하다는 깨달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