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프랑스의 이단적인 사상가인 로제 카이유와(Roger Caillois)의 대표적 저서 "인간과 성 Lhomme et le sacr"을 이화 여대 교수인 권은미씨가 우리말로 옮겼다. 현대인에게 있어서 성스러운 것, 다시말해 성(聖)이란 무엇일까? 물론 종교인에게 는 그들 각자가 믿고 있는 신앙이 그 성을 구현해주는 것이겠지만, 비종교인들의 경우에는 그들 삶에서 지고한 목적이 되는 것, 자신의 생명마저 희생시킬 수 있는 것이 성이 될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성은 저자의 말대로 “인간의 가슴을 뒤흔들고 매료시키는, 아니면 때때로 굴복시키는 모호하고도 거부할 수 없는 감동”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은 인간에게 두려움을 주기도 하고 욕망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와 같은 성의 양면성을 통해 성의 본질을 파헤치고, 인간과 성의 관계를 저자의 박 학한 지식을 바탕으로 풀어낸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종교학자 엘리아데의 이론을 한 차원 넘어선 프랑스 인문학의 첨단 흐름을 목 도할 수 있을 것이다.
창조적 힘의 원천인 성(聖)의 부활을 기대하며…… 카이유와는 성의 연구를 위해 다양한 민족지학적 지식과 사례들을 동원 하여 객관적인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그는 여러 원시공동체의 종교의식에서 나타나는 성(聖)과 속(俗)의 관계를 바탕으로 하여 성에 대한 사회학적 지형도를 추정해내고 있다. 성과 속은 서로 모순되면서 서로를 전제로 하는 관계이다. 성이란 인간이 지고한 가치로 여기며 숭배하는 것, 자기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바치게 하는 대상이며, 필요하다면 자신의 생명마저 그것을 위해 희생 시킬 수 있는 대상을 의미한다. 이러한 성의 세계와 대립되는 속의 세계는 ‘일상적인 용도』의 세계이다. 그것은 시간과 함께 마 모되고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되는 세계이다. 우리가 일상적인 삶을 존속시키기 위해 단지 현상유지에 힘쓸 때 일상적 세계는 그 자체 내의 원리인 소모와 손실에 의해 도리어 죽음에 이르고 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현상유지와 부동성을 깨뜨리고 주기적 인 갱생을 원한다면 속의 세계는 성의 세계에 도움을 청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 책은 성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데 그 의미를 지닌다. 카이유와는 고대사회에서 성을 보존하고 존중하기 위한 규율로 간주되는 금기이론, 성을 위반하고 파괴하여 속 의 창조적 갱생을 유도하는 축제이론 등을 통해 성과 속의 순환적 운동을 설명하고 이것이 세계를 진행시키는 근본적인 힘의 두 축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사회가 점차 세분화되면서 직선적 방향의 세계질서가 존중되고, 이것이 성과 속의 상호존중과 순환원리를 대신하게 되 었다. 그에 따라 성과 속의 개념, 순수와 불순의 개념은 분화되고 그 의미가 점차로 작아지고 약화되었다. 그럼에도 카이유와가 이 책을 통해 세계에 내재한 성의 속성들을 밝히고자 한 것은 바로 이 ‘성』의 에너지를 부활시켜 그 창조적 힘을 세계와 인간의 삶에 불어넣어주기 위함일 것이다. 그의 지적대로, 성의 가치가 하나의 공동체와 한 개인에게 삶의 이유처럼 제시될 때 성은 여 전히 힘(에너지)의 원천으로 존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